나의 고전(古典) 읽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나의 고전(古典) 읽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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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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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역사’라는 서사를 만들어낸 사람은 서양의 헤로도토스(B.C. 484~425)와 동양의 사마천(司馬遷, B.C. 145~86)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필자는 매 학기 교양이나 전공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는 책은 바로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이다. 학생들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서 소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
하다. 이천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대사 연구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여전히 번역서로서 일반인들이 애독(愛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성경(聖經)이
인류 불멸의 고전이듯이 『사기』 역시 불멸의 베스트셀러이기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내면적 이유는 따로 있다. 『사기』가 쓰여진 지 이천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흥미를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처럼 전편에 흐르는 흥미진진한 전쟁 이야기의 전개도 아니요,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나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은 고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도 아닐 것이다. 이천년 전에 살았던 당시 인간들의 총체적인 삶의 과정이 첨단 문명사회인 오늘날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인간과 사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사기』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인간과 인간관계를 역사가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시대와 환경은 다를지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삶을 『사기』에 등장하는 그 시대의 인간상에 비추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는 총 52만여 자의 30권으로 구성된 통사(通史)이다. 그 시간적인 구성은 첫째 ‘신화(神話)로부터 인간의 시대’, 둘째 ‘주(周)나라에서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마지막으로는 ‘진한(秦漢)의 통일왕조 시대’이다. 황제(黃帝)부터 주나라까지, 주나라에서 공자(孔子)시대, 그리고 공자시대에서 사마천 자신이 생존하고 있던 한(漢)나라의 무제(武帝) 시기까지의 역사, 즉 중국 최초의 문명단계부터 사마천이 살고 있던 당대(한 무제)까지를 서술한 통사이자 현대사이며, 당시 중국인들에게 알려진 ‘천하’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한 인간들의 여러 활동과 그 결과를 망라하여 서술한 내용이다. 주요 구성은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본기(本紀)」 12편, 역사의 주체로서 정치·경제·문화 등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여 삶을 영위하는 개별적 인간을 중심으로 서술한 『열전(列傳)」 70편, 각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시간적 공간적 연관성을 표로서 작성한 「표(表)」 10편, 「본기」에서 서술한 제왕이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존재라면, 「세가(世家)」 30편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체 일정 공간을 차지하면서 그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28개의 별자리에 비유하여 그들이 통치하는 지역 내에서 전개된 사건들을 시대순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제왕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투쟁과 왕조의 흥망성쇠만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른 문물제도의 변화에 대한 이해 즉, 치수(治水), 경제 정책 및 제사와 정치의 관계, 역법 등의 변화를 서술한 「서(書)」 8편이다. 이러한 『사기』의 구성에서 사마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아마도 개인의 역사를 서술한 「열전」일 것이다. 더욱이 기원전 98년 사마천 일생일대의 가장 비극적 사건인 ‘이릉(李陵) 사건’으로 인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을 당하면서 “한(漢)의 역사를 정리하라”는 부친의 유명을 계승해야 했던 사마천에게 이 사건은 『사기』 저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만리장성 북방지역을 장악한 흉노(匈奴)는 한왕조와 군사적인 대립관계에 있었다. 이릉은 대흉노 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장군이었지만 기원전 99년 분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흉노에게 포로로 잡히자 다른 신하와는 달리 사마천은 이릉을 옹호하였기 때문에 절대 권력자인 무제에게 궁형(宮刑)을 당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사기』에서는 “태사공이 이릉의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혔다” 라고 간단히 기술되어 있지만, 당시의 심정을 친구였던 임안(任安)에게는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인간은 한 번 죽는데 그 죽음이 태산과 같이 커다란 것이기도 하고 혹은 기러기 털처럼 가볍기도 하다. (그 까닭은) 죽음으로 취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비조차도 자결할 수 있었는데 하물며 노비도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했겠는가? 고통을 참으면서도 구차히 살려고 똥더미[분토(糞土)]에 빠지는 것도 불사한 것은 사사롭게는 마음속에 최선을 다하지 못함을 한으로 여겼고 죽은 후에는 문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人固有一死, 死有重於泰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且夫臧獲婢妾猶能引決, 況若僕之不得已乎!所以隱忍苟活, 函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沒世而文采不表於後也.)” 사마천은 자신이 궁형을 선택한 명분을 마음 속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친의 유명과 문채를 통한 입신양명에서 찾고 있다. 즉, 『사기』의 완성에서 찾은 것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은 후, 2년 만에 자신에게 형벌을 내린 무제에게 부름을 받아 중서령(中書令)이란 관직으로 복귀하면서 그 이전보다 더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궁형을 계기로 사마천은 인간의 도덕과 현실에서의 화복(禍福)이라는 문제를 성찰하였다. 이릉을 변호한 죄로 불행을 겪고 다시 황제의 부름을 받는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열전」의 첫 편인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찾고있다. 사마천은 은주(殷周)교체기 주의 은 정벌을 비난하고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이들의 행적에 대한 서술보다는 왜 백이숙제와 같은 선인(善人)이 비참하게 죽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이 굶주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극악무도한 도척(盜跖)은 어떻게 장수와 부를 누릴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더욱이 자신의 비참한 경우를 대비하여 본다면 인간의 덕행과 화복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욱이 열전의 마지막 내용인 「화식열전」을 통해서 “천금(千金)을 가진 집안의 자식은 결코 사형당할 일이 없다”는 속담에 공감하면서 모든 사람이 부(富)와 리(利)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천의 인식은 부란, 인간이 배우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으로 신분
과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마천은 「열전」 70편을 통해서 역사상 위대한 공업이나 덕행을 통해 이름을 남긴 자들의 명성을 전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여겼다. 그래서 「열전」의 내용에는 시장에서 무력으로 활개친 존재는 물론이고, 장사하여 부를 축적한 사람들, 혁혁한 전쟁 공로를 세운 인물 등에 이르기까지 70부류의 다양한 인간상들의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그리고 맨 처음을 「백이열전」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을 「화식열전」으로 마무리한다. 이 의미는 아마도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사이를 쫓아다니는 당시의 인간상들을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상들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까? 『사기』의 내용은 모두 이천년 전의 이야기로서 현대 사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일까? 만일 내가 사마천과 같이 당대 21세기의 『사기』를 편찬한다면 나는 어떤 성격의 인간상을 맨 처음에 쓰고 마지막은 어떤 인물군으로 배치할까? 즉 무엇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다양성을 상실하고 무엇인가에 편중되어 획일화되어 가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인간상들을 만나며,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삶의 가치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천년 동안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문장이라도 읽는 사람의 소양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재해석되고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고전이다. 나에겐 『사기』는 읽어도 싫증나
지 아니하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삶과 지혜의 보고(寶庫)이고 철학서이기도 하다. 만약 독자 여러분들도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아마도 『사기』는 생명력을 잃
지 않고 날로 복잡해져가는 오늘날 현대 사회의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한 권의 고전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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