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전전압 단일화 사업과의 동행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과의 동행
  • 변우식 기자
  • 승인 2016.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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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재 前 한국전력 배전처장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배전전압의 역사는 위 제목과 같이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임정재 前 한전배전처장은 1970년에 입사한 이래 한전이 22.9kV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을 완료하기까지 배전 분야의 최전선에 종사한 실무자다. 대한전기협회에서 그를 만나 40여년간 진행된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자.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퇴직한지도 벌써 10년(2005년)이 넘는데 인터뷰를 한다니 부담도 되네요.(웃음) 1970년 1월 한전에 입사했고, 본사와 안동, 부산, 전남 등 지방을 오가며 근무했습니다.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은 본사 배전처로, 서울남부 지점장 시설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22.9kV-y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은 1970년대부터 2006년까지 사십년 가까이 진행된 국가적인 프로젝트인데요, 그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1960년대, 그러니까 제가 입사하기 이전부터 사용하던 3.3kV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효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22.9kV가 도입되기 이전에 6.6kV가 농어촌 등 일부 지역에 시범적으로 도입되기도 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당시의 선배님들과 정부 관계자가 우리나라에 ‘22.9kV 배전전압을 구축하자’란 결정을 내린 것이죠.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기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텐데, 어떤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는지요?
현실적으로 사업자금 조달부터 골치 아픈 부분이였습니다. 정부의 외환 사정도 넉넉하지 못해 전원개발이나 송배전 설비 근대화에 소요되는 기자재 수입을 위한 외화 재원을 주로 AID, ADB, 상업차관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는데 자금 사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보니 막상 공사현장에서는 수입 자재가 부족해서 손을 놓고 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거든요. 본사 실무자로 근무하면서 배전용 자재를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려고 애쓰던 기억이 생생하네요.(웃음)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따랐으리라 생각됩니다.
말씀하신대로 기술력 부족은 사업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였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이를 해결하고 그 해결책을 바탕으로 개선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추진했습니다. 아마 지금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기에는 어렵겠지만요.(웃음) 일례로 초창기에 알루미늄이나 동으로 만들던 가공선로로 인해 바람, 새 등으로부터 발생하던 사고문제는 1977년부터 시작한 절연화 사업을 시작, 조금씩 해결해 나갔지요. 초기부터 모든 절연피복을 수입했다거나, 반영구적인 알루미늄과 동만을 고집했다면 현재의 절연화 기술을 축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각종 보호 장치와 COS 등 개폐기류는 물론 기본적 자재인 애자류, 접속금구류 등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었지요. 1980년대 들어 기자재 국산화 비율이 점차 높아졌고, 현재는 기자재뿐만 아니라 시스템까지 해외에 수출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22.9kV-y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이 40여년에 걸쳐 진행된 사업이니만큼, 시기별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60년대 : 경전, 남전, 조선전업이 한전으로 통합되기 이전, 국내 배전전압은 3.3kV였습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개발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배전전압의 승격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국가적인 화두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까지 배전전압의 승압에 대한 검토와 시험선로를 이용한 실증연구를 통해 22.9kV-y(11.4kV-y) 공통중성선 다중접지방식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결정됐고, 1968년 3월에는 승압 추진방안에 대한 산·학·연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1970년대 : 제가 입사한 1970년대는 3.3kV 배전선로가 대 부분이지만, 6.6kV 선로도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었고 서울의 영등포 지역을 시작으로 22.9kV-y 배전계통을 막 건설하기 시작한 시점이였습니다. 여기에 11.4kV-y 계통도 도입 초기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건설됐으나, 1989년부터 비로소 22.9kV-y로 단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2000년대 : 1986년은 한전이 기존의 3.3kV와 6.6kV 계통을 22.9kV-y으로 승압하는 사업을 부분적이지만 완료하였습니다. 서울 중심부와 제주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의 승압을 완료한데 이어, 6.6kV로 남아 있던 지역까지 2006년에 승압함으로써 비로소 22.9kV-y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이 완료되었습니다.

22.9kV-y 배전전압 단일화 사업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22.9kV-y 배전전압 단일화를 이룸으로써 투자비와 보수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고, 승압 추진 과정과 이후의 설비운영 과정에서 기술적 노하우를 개발 축적함으로써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배전설비를 구축할 수 있었죠. 일본의 경우 4단계의 배전전압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3단계(220, 15.4, 22.9)만으로 전 국가의 전력망을 커버하는 것과 비교해 보시면 그 효율성을 쉽게 가늠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의 단계를 추가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시설, 인력, 관리는 물론 이에 따른 보상까지 단일화를 통해 얻는 유형, 무형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업계의 동료 및 선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아하시는 명언도 좋습니다.
한전에 들어올 운명이였는지, 운이 좋았는지 대학교 4학년 때 한전의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었고, 남들보다 좋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군대도 가기 전이라 입사 후에 군 경력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죠. 입사 직후에는 당연히 어느 발전소에서 근무하게 될 줄 알았는데 배전과 인연이 시작되어 평생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부분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은 일도 적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고 보니 아쉬운 부분도 많더라구요. 공자님 말씀 중에 군자는 화이부동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란 말마따나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일하되, 내 개성을 지키자’란 조언을 후배님들께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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