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속도의 시대
4차 산업혁명과 속도의 시대
  • 조정훈
  • 승인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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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전기신문 기자
변화와 속도의 시대.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더욱 잰걸음을 걸어야 하고, 남들보다 한걸음 더, 반박자 빠르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되는 곳. 필자와 독자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의 모습이다. 큰 맘 먹고 새로 장만한 PC와 휴대전화는 한 두 달 사이에 구형 모델이 된다. 사 실 필자는 매일같이 업데이트 되는 소프트웨어들이 도대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최첨단 기기를 들고 문명의 진보를 향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필자 스스로는 과거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 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 그들을 앞질러가는 속도의 쾌감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짜릿하지만 그 아찔한 속도에 취하다보니 내가 어디만큼 흘러 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기 일쑤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솜씨 좋은 조타수가 필요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소 무거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렀지만 전력산업 역시도 마찬가지다. 2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산업화 시기에 ‘시대 의 맹주’로 이름을 떨쳤던 전기는 3차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통신 등 다른 이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잠시 내줬던 경험이 있다. 뒷방늙은이 신세로 전락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무렵 혜성과 같이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은 전기를 새로 운 시대의 주연급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사람이 동력이던 시기에서 기계·전기가 중심인 시대로
인류가 지구에서 ‘주인’임을 자처하며 살아 온 오랜 시간 동 안 우리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살아 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 라 내가 살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았던 과거의 역사는 오히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늘날과는 괴리감이 드는 얘기지만 당시 ‘사람’은 곧 권력을 의미했다. 맨손으로 싸워야 했던 고대인들에게 있어 부족 원의 숫자는 집단의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였고, 전쟁 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 또한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사람’에게 의지해 온 문명의 흐름이 급변하기 시 작한 것은 18세기 1차 산업혁명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증기기관이라는 기계적 혁명은 사람의 노동력이 곧 권력이었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이후 19세기에서 20세기를 지나면서 ‘전기’를 동력으로 하 는 2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이는 대량생산과 산업화라는 문화적 충격을 불러온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2차 산업혁명을 경험했던 분 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것 같았던 2차 산업혁명은 ‘정보’ 앞에 허무하게 종언을 고하고 만다. PC와 인터넷을 매개로, 정보가 무기가 되는 3차 산업혁명은 자동화, 정보 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을 바꿔 놨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그날, PC화면에서 클릭 한번에 원하는 창이 열리기까지 3초를 참지 못하는 오늘날의 모습을 상상했던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인간의 두뇌를 대신할 기술혁명을 꿈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마주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은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으로 언급됐다. 당시 이 개념은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 산업, 물리학 등의 경계를 융합하는 기술혁명’으로 설명됐다. 3차 산업혁명의 기틀 위에 다양한 이종(異種)산업을 결합 함으로써 폭발적인 생산성 증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후 이 ‘생산성’이 새로운 부가가치로 치환되면서 4차 산업 혁명의 밑그림이 만들어지게 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는 독일이다. 지난 2011년 독 일의 민·관이 제조업 혁신을 목표로 내걸었던 슬로건인 ‘인더스트리 4.0’은 우리가 만날 4차 산업혁명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이란 최첨단·친환경·안전 등 인류 친화적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제조업 분야의 미래 기술을 뜻하는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변화의 모습은 아디다스 (Adidas)의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에서 힌트를 얻 을 수 있다. 아디다스의 독일 본사 인근 안스바흐(Ansbach) 시에 위치한 스피드 팩토리에는 6대의 로봇이 2개의 생산라 인에 설치돼 있다. 각 라인은 신발의 바닥, 덮개 등 부분별 공정만 진행하게 되는데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제품을 주문 하면 3D 프린팅 기술과 로봇이 4~5시간 만에 신발 한 켤레 를 만들어 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공장에서 사람은 관 리자 역할만 할 뿐 공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통신 망으로 연결하는 ‘초연결성’과 막대한 양의 정보를 취합·분 석하고 이를 새로운 가치로 재생산하는 ‘초지능성’이다. 이를 통해 너무나 복잡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사고 패턴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앞서 1~3차와 4차 산업혁명이 가진 근본적인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혁명들이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하고, 이로 인한 제약을 해방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진행됐다면 4차 산업혁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사람의 두뇌’를 대신하는 데 있다. 단순히 많은 정보를 취득하는 것을 넘어 모은 정보들이 어 떤 관계를 갖고 있으며, 여기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출 해 낼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준비 나선 선진국들…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독일을 필두로 미국은 첨단 제조업 구현을 위한 국가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중 국에서는 혁신형 고부가 산업 창출을 위해 ‘제조2025’ 등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스마트 제조 기술을 접목해 제조강국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차세대 정보기술과 전기차 등 유망산업 육성도 목표로 하 고 있다. 일본 역시도 지난해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을 내놓고 IoT, 빅데이터, AI 등의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선도전략에는 기술개발과 함께 경제 기반 구축, 인재 육성 등 다각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다. 해운과 철강, 조선 등 기존의 주력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돌 파구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이에 대비한 제 조업 혁신 3.0, 스마트공장 1만개 확산 등이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하지만 세계가 바라보는 우리의 경쟁력은 미비한 수준이다. 스위스 금융그룹인 UBS가 지난해 공개한 4차 산업혁명 적응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5위라는 초라한 성적 표를 받아들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제조업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자부심은 그저 자기위안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UBS의 박한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우리나라는 시스템을 적용할 여건은 잘 갖 춰져 있지만 IoT와 빅데이터, 센서 등 핵심기술 수준이 취 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기획설계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서도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고 나갈 코어(Core)가 부족하다는 것.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만드는 하드웨어적인 접근이 아니라 체계의 근간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창의성과 시스템 이 운영되는 근본을 꿰뚫는 ‘시스템 오브 시스템(System of System)’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기술과 산업, 정보,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소 간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사슬을 만들어 내는 개방형 플 랫폼을 통해 실현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시스템·서비스가 만드는 부가가치로 경쟁하는 시장 열릴 것
이러한 변화는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 가치였던 전력산업의 시장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의 개념도 모호해지고 있다. 각 유틸리티별로 사업자가 지정돼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는 한전, 가스는 가스공사 등 에너지원별로 경쟁구도가 형성돼 왔다. 가정용 난방을 전기로 할지, 가스로 할지를 고민할지언정 어떤 전기를 써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이들 유틸리티 기업의 경쟁 구도를 재편하고 있다. 실제로 에너지신산업 분야에서 과감 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한전의 경우에도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래 시장의 경쟁자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원별 경쟁이 아닌 시스템과 서비스가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로 경합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전력산업 내에서 이러한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발전과 송·변전, 배전 전 분야가 독립된 체계가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분야가 연결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무인항 공기(Drone)나 증강·가상현실(AR·VR) 기법을 전력설비 점검이나 발전소 정비에 활용하는 것이 어느새 익숙해지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산업간 경계를 나누던 시대를 끝내고 기술과 다른 분야가 합해져 만들어내는 변주곡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구성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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