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들어내 최고의 피조물, 울산바위
자연이 만들어내 최고의 피조물, 울산바위
  • 최빈 기자
  • 승인 2017.0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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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opia 기자단 최빈 기자

평소 가고 싶었던 설악산 등산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었다. 아직 녹음이 우거지거나 단풍이 화려한 계절은 아니지만 울산바위를 목표로 가는 산행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적어 산행에 여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설악산 여행을 다녀올 것이라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니, “설악산 입구에 신흥사라는 절이 있는데, 가서 꼭 절하고와” 라고 하신다. 설악산에도 절이 있구나. 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설악산에 대해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여행이라고 다를 바 없다. 오색찬란한 도자기나 진귀한 그림도 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그저 하나의 술병이고 삼류 화가의 작품이라 한들 누가 알 수 있을까.
차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지만 설악산을 오르기엔 부족하다. 등산 전 배를 든든히 하기 위해 강원도 대표 음식인 메밀막국수와 감자전을 먹으러 갔다. 역시 현지 음식은 현지에서 먹어야 맛있다. 서울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메밀의 쫄깃함과 구수한 감자전 내음이 설악산에 왔음을 알려준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에 아직 눈이 보인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지난지 오래지만, 설악산은 눈을 간직한 채 나를 바라본다. 그래 올라가보자. 매표소를 지나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불상이 하나 보인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신흥사다. 신흥사를 상징하는 이 불상은 통일대불로 높이 14.6m, 무게 108톤에 달하며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지난 1997년 조성되었다. 엄숙한 기운에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평온한 산행이 되길 기원하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은 신흥사-계조암-흔들바위-울산바위를 거쳐 하산하는 경로로, 왕복 7.6km의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7.6km면 등산 초보인 나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거리이다. 화려한 등산장비를 갖춘 사람들 틈에 청바지에 운동화, 가벼운 차림이다. 아직은 평탄하기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난다. 산세를 휘젓는 다람쥐며, 이제 막 잎을 피우려는 나무들이 보인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위로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이 분다. 저 멀리 보이는 울산바위가 점점 다가온다. 그럴수록 산세는 점점 가팔라진다. 약수물 한 모금에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힌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푸르른 하늘을 보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몸을 추스르고 산행을 이어간다. 저 계단만 오르면 흔들바위다. 그러나 막상 오르니 흔들바위 보다 눈길을 끄는 건 계조암이다. 흔들바위는 워낙 유명하여 많이 들어봤지만, 계조암은 처음 들어보아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마주보고 있는 거암을 보고 있으니, 계조암 쪽으로 눈길이 더 간다. 훨씬 더 커서일까, 아님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계조암은 큰 바위 속 조그만 사원이다. 어떻게 바위 속에 부처를 모실 생각을했을까, 천년도 이전인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굴삭기도 없었던 그 시대 순수하게 사람의 손으로 이리 아름다운 사원을 만들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계조암을 보다 엄숙하게 만든 건 거대한 바위 위 새겨진 수많은 한자들 때문이다. 두뇌를 풀가동하여 드문드문 아는 한자를 찾아 읽어 나가지만, 한자를 읽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계조암에 대한 옛 선인들의 노고와 헌신이 몸소 느껴진다. 흔들바위는 생각보다 작아 보인다. 저 정도면 밀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정말 밀리면 어떡하지 하는 호기로운 생각을 품으며, 수백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도전한 흔들바위 밀기에 동참했겠지…. 수백만 명의 실패자에 한명을 더한다. 흔들바위가 밀리지 않는 이유가 간판에 자세히 적혀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지면에 적은 부위만 닿기에 밀리기 쉬워 보이지만, 흔들바위도 바위인지라 무거워서 밀리지 않는 것 같다. 흔들바위와의 씨름을 뒤로한 채, 울산바위로 향한다.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흔들바위까지는 약간의 오르막이 있을 뿐 크게 힘들지 않다. 하지만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어려운 코스다. 1km 남짓한 거리이지만, 전부 가파른 오르막이다. 주변 자연경관을 둘러볼 틈도 없이 가쁜 숨을 참으며 오른다. 외투를 벗은 지는 오래고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손수건을 꺼내 닦는다. 허리춤을 추킬 겸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대청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보인다. 망원경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울산바위 반대편 산세가 한눈에 보인다. 대청봉 부근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걸 보니 설악의 정상은 아직 겨울인가보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울산바위로 향한다. 거대한 기암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숨은 점점 차오르지만, 내려오는 등산객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을 내어본다. 등산의 또 다른 즐거움은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철제 계단으로 이루어진 오르막을 몇 차례 지나고나니 드디어 울산바위가 눈앞에 보인다. 나도 모르게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2시간여의 고된 산행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장관이다. 울산바위를 실제로 보고나니, 그 웅장함은 사진으로 오롯이 담을 수 없고, 그 아름다움은 어떠한 언사로 형언하기 힘들다. 한 폭의 그림으로 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암석들이다. 정교하게 깎은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거암들이 만들어 낸 환상의 조합이다. 푸르른 나무들 위에 민둥성이 바위라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제주도 여행 때 본 주상절리 생각이 난다. 주변 환경과 동떨어져 보이는 기괴한 암석의 모습이 닮아 보인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주전부리할 약과와 한라봉을 꺼낸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조금 쉴 겸 앉아있으니, 울산바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의문이 떠오른다. 강원도에 위치한 설악산에 울산바위라는 명칭이 붙여졌을까. 이는 지명과는 무관하게 바위를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려 ‘우는 산’이라 부르던 것이 울산바위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이를 되새기며 바람소리를 듣노라니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가 우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정상에서 한동안 쉰 후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고은의 시 그‘ 꽃’이 떠오른다. 하지만 가파른 산을 내려오기엔 그럴 여유가 없다. 툭 튀어나온 돌 뿌리에서부터 일정치 않은 경사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바닥을 주시하며 내려왔다. 울산바위를 지나고 계조암을 지나니, 평탄한 길이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비로소 꽃, 나무, 개울, 다람쥐들. 산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자연물이 보인다. 신흥사에서 다시 들이키는 약수물 한 모금과 함께 멀어져가는 울산바위를 바라본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늠름하게 서있는 모습이 우아해 보인다. 저 바위에 내가 올랐구나. 뿌듯한 마음과 아름다운 설악산의 풍경을 간직한 채,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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