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력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1) 규제·경쟁의 시대
글로벌 전력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1) 규제·경쟁의 시대
  • 허준혁
  • 승인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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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일반연구원
1. 규제의 시대
가. 등장 배경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력산업은 경제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로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기에 적합한 형태의 산 업구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 중심 이었기 때문에 전선 인근지역에서만 전투가 발생된 반면, 2차 세계대전은 전격전 형태로서 전후방을 불문하고 전투 가 진행되었고, 또한 유럽(영국~러시아) 및 아시아(필리핀~ 일본) 전역의 산업시설이 전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종전 이후 전 세계에서 파괴된 인프라의 복구수요가 발생하였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동유럽, 중국 등 공산권 국가 의 부상으로 부각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체제 경쟁 하 에서, 양 진영은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촉진하였고 산업인프라 및 생산설비 수요가 확대되었다. 또 한 석탄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고 저장이 용이한 석유가 개발되고, 자동차·비행기 등의 운송수단 발달로 대규모 생 산-대규모 소비가 가능한 글로벌 물류시스템이 확산되었다. 아울러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전자제품 보급 확대에 따라 전체 에너지소비 중 전력사용 비중이 OECD 국가 기준 1960년대 7%에서 1990년대 13%로 지속 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원인에 따른 전력수 요 증가로 대규모 전력을 충족하기에 적합한 형태의 산업구 조가 형성되었다.
 

나. 전력산업 특성 : 독점과 총괄원가 규제의 시대
전력산업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목표 하에, 대규모 중앙집중형 수직통합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전력산업 목표는 산업생산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을 제공하고, 정전 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방지하기 위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전력산업 구조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력생산과 공급비용을 절감하고(대규모), 대형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 기를 송·배전망을 이용하여 공급하며(중앙집중형), 전력공 급설비 건설, 운영의 최적화를 위한 단일기업 체제를 형성 하였다(수직통합). 전력산업은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고정비용)가 높고, 상대적으로 운영비(한계비용) 가 낮으며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비용이 하락하는 특성 을 보인다. 만약 신규 진입기업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기존 기업에 비해 높은 한계비용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 악화로 시장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 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배경에 의해 전력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자연독점이 발생하였고, 정부는 최적 규모 의 전력공급 설비를 확보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독점을 인정하였다. 요금 측면에서 정부는 전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한 전력회사의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되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과도한 수익을 제한하고자 총괄원가제도를 도입하였다. 총 괄원가란 전력공급에 소요되는 총 원가와 투자에 따른 적정보수의 합산액으로, 정부 혹은 규제기관이 전력회사의 투자보수율에 대한 제한을 설정하고 전기요금은 전력공급과 관련된 총 원가를 충분히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정부는 총괄원가를 통해 전력회사의 대규모 설비투자 이후 장기간의 비용회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미래 수익 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전력회사의 장기적인 설비투 자를 유도하는 동시에 독점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고 전기요금 상승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다. 유틸리티 전략 : 국유화·대형화를 통한 국가대표 유틸리티 등장
정부는 경제성장에 따라 빠르게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충당 하기 위해 유틸리티의 설비 공급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었 다. 하지만 대규모 전력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 는 원전, 석탄발전과 같은 대형 발전소의 설계 및 건설에는 대규모 투자비용이 투입되는 반면, 비용회수에는 수십 년 의 기간이 소요되어 중·소규모의 유틸리티는 장기적인 인 프라 구축사업을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수백· 수천 개의 지역기반 전력회사를 국유화하고, 발전-송배 전-판매부문을 수직 통합한 대형 전력회사를 육성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프랑스의 EDF, 독일 RWE, 이탈리아 Enel, 미국 Duke Energy, 일본 도쿄전력(TEPCO) 등의 국가대표 유틸리티가 탄생하였고, 이들은 통합 이후 전쟁으 로 피해를 입은 송·배전 시설 복구와 수력·석탄발전, 댐 건 설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2. 경쟁의 시대
가. 패러다임 전환 배경 
1) 전력산업 환경 변화(영국 전력산업 사례 중심) 세계에서 산업화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진 영국에서는 1970 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전력소비 량 증가율이 둔화되는 디커플링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영국의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북해 가스전 개발로 전기 대체제로서의 천연가스 수요가 확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성장과 전력수요의 디커플링 심화에도 불구하고 유틸리티들이 전력설비를 지속적으로 투자하여 설비공 급이 지나치게 과잉된 것이다. 전력회사는 설비투자를 통해 손쉽게 이익을 보전받는 총괄원가보상제도를 활용하여 물량확대 중심의 투자 행태를 반복하였고, 이로 인해 영국 에서는 30여 년간 최대수요 대비 설비예비율이 20~30%에 달할 정도로 설비 과잉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심화되었다. 한편 전력공급이 수요를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오일쇼크, 광산파업으로 인한 석탄가격 상승 등의 에너지수급 불 안정 요인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오히려 상승하게 되었다. 1970~80년대 영국의 전기요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유가가 하향 안 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었다.


 
2) 신자유주의의 태동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은 정부 정책 영향으로 시장의 역할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기조가 확산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케인즈주의에 대한 반대이론으로 등장한 시장중심주의 경제이론으로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 입에도 불구하고 스테그플레이션, 재정 적자 등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화되면서 입지가 점차 확대되었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정부의 시장개입이 왜곡과 비효율 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무역, 노동시장,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마가렛 대처의 노동당 정권은 전력, 수도, 가스, 철 도, 통신 등의 국유 기간산업을 민영화하고 공공부문에 시 장경쟁 체제를 도입하였다.

3) 글로벌 에너지 시장 확대 한편 구소련의 개방정책이 촉발한 공산권의 몰락과 동구권 시장 개방, 아시아·남미 등의 신흥국 부상에 따라 국내사 업에 머물러 있던 유럽과 미국의 유틸리티가 새롭게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시장이 확대되었다. 구소련의 개혁·개방정 책(Perestroika & Glasnost), 베를린 장벽 붕괴로 대표되 는 공산진영의 몰락 이후, 동구권 국가들은 시장경제 체제 로 빠르게 이행하면서 높은 경제성장을 보였다. 1970~80년대에는 아시아, 남미 등의 신흥국이 제조업과 자원 수출을 기반으로 새롭게 부상하였으며, 특히 1990~2000년대 BRICs(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국가가 거대한 국내시장과 부존자원을 이용하여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력수요가 확대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WTO로 상
징되는 ‘세계화’기조 확산으로 유틸리티의 해외 진출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결론적으로 국내 대규모 전력인 프라 구축을 통해 사업기반을 다진 유틸리티들이 고성장 지역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는 우호적인 여건이 마련되었다.
나. 전력산업 특성 : 시장경쟁 체제 도입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라 규제의 시대 주요 전력산업 체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독점과 총 괄원가제도가 사회적 편익을 감소시켜 비효율을 초래하므 로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하여 효율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일방적으로 재화를 공급받던 소비자들 은 점차 개인의 권리를 인지하고 다양한 선택을 통해 개인 효용을 향상하고자하는 욕구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전력산업의 새로운 목표는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서 ‘효율향상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 로 전환하게 되었고 전력산업 구조는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개편되었다. 정부는 기존에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던 전력산업을 경쟁 부문과 독점부문으로 구분하고, 자연독점 성격이 강해 경쟁을 통한 효율향상이 제한적인 송·배전부문은 독점 체 제를 유지하는 반면, 경쟁을 통한 효율 향상 여지가 큰 발 전, 판매부문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였다.  또한 정부는 국가 소유의 수직통합 유틸리 티를 발전-송전-배전-판매 부문으로 구분하고, 통합되어 있던 대규모 발전 및 판매부문을 다수의 기업으로 분할하 였다. 단, 송전 부문은 신규 진입기업의 비차별적인 접속을 보장하기 위해 사업을 인위적으로 분할하지 않고 독립적인 독점 형태를 유지하였다. 요금 측면에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발전 부문(도매시장)에 서는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 발전사가 전력가격과 전력량 을 도매시장에서 입찰하게 되었으며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도매가격이 결정되었다. 쌍무계약 방식의 경우에 발전 사와 판매사간 협상과 직거래를 통해 가격이 결정됐다. 판 매부문(소매시장)의 경우 개별기업이 전기요금을 재량적으로 설정하되 규제기관이 특정 기업의 시장지배력 확대, 판 매기업간 담합으로 인한 요금 급등을 방지하기 위해 요금 체계를 검토 후 승인하는 시스템이 조성되었다. 송배전(독점)부문은 기존의 총괄원가체계 요금규제 방식을 유지하되 일부 국가에서는 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성 향상을 유도하 도록 요금구조가 설계되었다.
 

 

다. 유틸리티 전략 : 대형화, 세계화, 사업다각화
1990~2000년대 선진국에서 주로 촉발된 발전·판매부문 의 시장 자유화는 동종 혹은 유사업종 유틸리티 간의 인 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 전략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의 대형 유틸리티는 자국 혹은 인접 국가의 중소형 전력회사를 인수·합병함으로써 신규 시장에 손쉽게 진출하였다. 영국, 독일에서는 지역기반 소규모 유틸리티들 이 M&A를 통해 분산되어 있던 국내시장을 과점화한 이후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형태를 보였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대형 유틸리티(EDF, Enel, Endesa, Iberdrola) 는 대규모 기업의 독점적인 입지가 미약했던 북유럽 및 동유 럽, 혹은 신흥국 시장 진출에 중점을 두었다. 미국 전력회사의 경우 1990년대에 이미 시장이 상당 수 자유 화된 영국과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남미·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유틸리티들은 M&A를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울 뿐 아니라 사업다각화에도 적극적이었는데 대다수가 사업특성이 유사한 가스산업에 진출하여 사업 저변을 확대하였고, 이를 통 해 비용절감, 교차 판매, 신규고객 확보 등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였다. 2000년대 일부 유틸리티들은 중동의 자원무기화 현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급등에 대응하여, 자원을 직접 개발하고 연료를 자체 조달하는 탐사·개발(E&P) 사업, 혹은 연료가 격 변동성을 흡수하고 공급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트레 이딩 사업에 진출하였다. 결론적으로 경쟁의 시대 대형 유틸리티들은 다양한 확대 전략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하며 글로벌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현대 전력산업이 탄생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IEA Electricity Information Statistics
·European energy industry business strategies, A. Midttun, Elsevier
·Reshaping European Gas and Electricity Industries, Finon, Elsevier
·전력경제 Review ‘전력산업 패러다임 변화’,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World Bank Databank
·UK 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 Ofgem
·S&P Capital IQ ·각 기업 사업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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