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부문의 혁신은 가능한가
에너지부문의 혁신은 가능한가
  • 김창섭
  • 승인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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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섭
가천대 교수·전기저널 편수위원장

전력분야는 다른 산업에 비해 보수적인 DNA를 갖고 있다. 보수화로의 진화 원인은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으며 전력기술 자체의 혁신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전자기적 현상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에디슨 이후 기술의 원리가 수정되지 않았다. 테슬라가 살아 돌아와도 그 현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력 인프라는 통신 분야와 달리 기존의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더해지는 형식이어서 창조적 파괴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력분야의 경우 잘 해보려고 기기 하나 교체했다가 정전이라도 발생하면 그 곤혹스러움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정전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의 다양한 혁신들이 시도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부주도의 혁신 노력이었지만 우리는 불과 십여 년 전에 시도한 바 있는 전력IT 사업과 제주실증단지 사업들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지난 정부 하에서의 ESS를 둘러싼 신산업논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나름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결과는 그다지 소망스럽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혁신 시도를 더욱 견고하게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주도의 혁신 시도는 기본적으로 전력계 자체혁신 역량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시작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전력IT 사업이 2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한전의 구매와 연동되지 못해 기술개발이 한계에 봉착하는 문제를 발견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제주 구좌읍에 대규모 실증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력계 자체의 노력으로는 혁신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다른 산업계의 참여를 허용하기도 했다. 전력분야도 사실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애당초 전력에 ICT기술을 융합하는 것임에도 정보통신과는 하나의 과도 진입이 허용되지 못했다. 전력계의 폐쇄성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술 개발 성과가 구매로 연동되지 못하는 현상 역시 그러한 폐쇄성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라파고스에서는 어떠한 혁신도 발생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이 폐쇄성이 독점성에서 기인하므로 경쟁과 민영화를 통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년을 관통하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의 논리이다. 이에는 일정한 수준의 타당성이 있다. 혁신은 공공성의 원칙과 배치되지는 않지만 경영평가에 매달려야 하는 총괄원가주의의 독점공기업들에서는 기술혁신이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또한 이제 ‘조국과 민족’을 위한 명분으로도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본다. 이제는 각자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쁜 세상으로 변했다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인 세상으로 변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다.

혁신 동력의 확보를 위한 방안은 구조논쟁이나 공익논쟁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제 혁신은 커다란 담론이 아니라 혁신하는 이기적인 조직원에게 인센티브가 발생하도록 세밀한 규정과 제도화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투명한 기술논쟁은 그 중심에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정치인과 관료와의 친분이 개개인의 경쟁력으로 환치되는 또 다른 갈라파고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혁신은 포화되는 전력시장에서 전력계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혁신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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