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37%, 과연 독인가 약인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37%, 과연 독인가 약인가!
  • 배성수 기자
  • 승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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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수 기자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에 관하여 37%의 국가감축목표를 표명하였다. 이는 1차 INDC(자발적 감축목표)의 국제적으로 합의된 협약에 근거하여 제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37%의 목표는 전문가그룹이 합리성에 근거하여 도출한 것이 아니었고 또한 이해관계자들의 공감대하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재도 그 정당성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즉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 그룹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시절의 30% 목표는 그나마 절차적인 측면이나 전문성의 측면에서 일정 요건을 만족시킨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37%를 이미 국제사회에 공언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회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3가지가 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과연 3가지 옵션 중 어느 옵션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성 있는 태도인가는 논외로 보고, 어느 옵션이 가장 국익에 부합되는가를 고민해 본다. 물론, 국익이 무엇인가는 또 다른 복잡한 논쟁을 유발할 것이다.

 

특히, 당면한 과제인 37%의 목표가 우리사회에 ‘독’인가
‘약’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차 NDC(국가감축목표)는 새로운 양상에서 논의될 것이고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단 논외로 한다. 당연히 있었어야 하는 사회적 논의가 생략된 채로 지난 정부가 결정한 이 목표는 우리사회의 계륵이 되어 버린 상태이다. 우선 대다수가 37%는 국가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과도한 목표설정으로써 ‘결국 독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에 진짜 독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이는 특히 트럼프의 등장으로 힘을 얻고 있다. 독이지만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는 무시할 만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결국 독이건 가짜독이건 무시해야 하거나 할 만 하다는 판단이 존재한다.

한편, 약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가능하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는 기후협약은 지구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약’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나라가 지구를 위하여 선제적인 희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동력원이 현재로서는 37%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룹도 있다. 이러한 경우 에너지전환에는 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보면 약인지 여부가 달라진다. 원자력, 석탄, 가스, 석유, 신재생 등 발전원별로도 입장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37%는 여전히 딜레마인 것이다. 그래서 모두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며 보면 볼수록 복잡하다.

우리사회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까.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옵션 1이나 옵션 2 모두 선택 가능한 정책임에 분명하다. 다만 옵션 1과 2의 공통적인 핵심은 해외감축분 11.3%에 대한 실천방안을 부분적으로라도 제시한 것이다. 원안대로 해외 구입을 위한 주체의 설정 등 실행방안을 제시해야 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를 국내조치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실천여부는 차치하고 이러한 구체화된 실행 안이 필요하다. 다만 실질적인 실천의 여부가 옵션 1과 2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11.3%는 차치하고 37%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옵션 3의 상황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일부는 무기력하게 체념한 상태로 보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적인 논의의 회피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의 능동적인 전략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혹 소소한 약속이라도 국제사회에 약속한 사안을 아무런 전략적 고민과 의지 없이 방치하듯 지켜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와 같은 모호성과 무기력함은 결코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

조만간 2차 NDC를 제출해야 하며 우리는 그 간의 노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우리의 노력은 비중 측면에서 원전 줄이기와 석탄 늘이기로써 오히려 고탄소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수요가 줄어들어 감축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이 가능한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좋은 변명거리가 아니다. 국제사회의 도덕적 비판이 실질적인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그다지 큰 위협으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규제가 갖게 될 장구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무언가 일관된 국가의 입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가까운 시기에 기후규제가 실질적인 힘을 가질 것으로는 보여 지지 않는다. 파리협약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 기후규제로 더 큰 이득을 기대하기에는 에너지기술의 혁신이 더딘 측면도 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개별 국가의 강력한 선제적 기후규제를 통하여 다소 억울해할 산업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굳이 기후규제에 대한 제제강도를 논의할 개연성도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학술적인 논의는 가능하겠지만 무역규제와 연동된다는 객관적인 상황도 발생하고 있지 않다.

결국, ‘가짜 독’일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갈등만 유발할 37%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은 불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다수의 솔직한 속내라고 본다.

그러나 37%에 대하여 나름 기후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3년 동안 우리사회가 노력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잘 살펴서 국제사회에 설명할 필요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용적인 진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배출권거래시장은 부실하고 석탄발전은 확장 중이며 세제개편도 부진하다.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2030 로드맵은 계속 지연 중이다. 서류상으로도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목표달성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노력조차 부족하다. 기후협약은 다소 퇴보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앞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국제적인 약속의 틀이다. 일희일비할 사안이 아니다. 언젠가는 다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국익을 위하여 기록을 잘 남겨놓아야 한다.

한편, 과연 기후대응이 독이기만 할까.

기후대응은 크게 보면 효율화, 믹스조정, 신기술 등의 대응 옵션으로 구성된다. 각 옵션들은 기후규제와 무관하게 한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산업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덕목들이다. 그래서 기후대응은 통상 ‘No Regret Policy’인 것이다. 비용은 수반되지만 지불할 가치들이 있는 것이다. 기후대응은 우리나라의 한등 끄기 운동이나 기술혁신과도 연동되어 있는 고전적 가치의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동력자원부 시절 가전제품에 대한 효율등급제 시행과정에서 관련 업계와 상공부 관련 부서는 격렬히 반대하였다. 국내 산업의 붕괴를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기술규제가 현재 백색가전의 국제경쟁력 원천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신용 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조치는 관련 산업계의 진흥을 위한 조치였지만 결국 에너지가격 왜곡으로 이어져 난방에너지가 전기로 순식간에 이동함으로써 에너지믹스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바 있다. 게다가 이는 전력대란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결국 에너지절약의식의 약화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이는 모두 지불할 비용을 지불한 결과에 따른 성공사례이고 한편, 지불할 돈을 내지 않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실패사례 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낼 돈은 내야 하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과연 요금 혹은 비용을 낮추어주는 정책이 합당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가격을 누가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는 에너지정책과 규제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다. 에너지산업구조개편 논의도 결국 누가 가격을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산업계의 비용저감을 위한 낮은 에너지요금정책이 과연 시장원리에 부합되는 것인지 그리고 산업경쟁력의 동기를 부여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오히려 무조건 요금을 낮추어 주겠다는 정부의 시그널은 산업구조의 왜곡과 통상외교에 장애로 작동할 개연성이 크다. 정부가 산타클로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요금정상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스마트팩토리와 같은 AI 기반의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것이 정부의 올바른 시그널이자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정책일 것이다.

기후는 독이다. 그러나 잘 사용하면 약이 된다.

독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지혜가 동시에 필요하다. 독을 약으로 바꾸기 위한 매직의 원천은 기술혁신이다. 기후규제를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기술혁신으로 대응 할 수 있다면 기후규제는 우리 산업경쟁력을 위한 훌륭한 약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기후대응의 본질은 기술혁신이어야 한다. 발전연료의 전환이 아닌 에너지 생산과 소비 전반의 포괄적인 전환이 필요하며 그 전환을 기술혁신의 방식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4차 에너지기술개발 10개년 계획’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상황을 감안할 때 37%의 독을 약으로 쓰자는 생각은 다소 낭만적인 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산업의 상황을 볼 때 오히려 필요성이 강조될 수도 있다. 게다가 경직성이 심화된 에너지산업의 경우 지금처럼 수익구조가 불안정하거나 에너지산업의 수요가 포화되고, 인프라망이 포화된 상태에서는 에너지기술혁신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산업의 변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셰일가스와 같은 축복은 없다. 끝없는 기술혁신만이 살 길이다. 이 때 경직된 현 생태계 조건하에서는 혁신이 어렵다. 그런 면에서 37% 규제는 변화를 촉발할 동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정도의 독이 필요하다. 그 정도로 경직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옵션 1은 반드시 기술혁신과 연동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옵션 2는 옵션 1을 추진할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2차 NDC에 대비한 전략을 준비해야 하며 11.3%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37%와 관련한 어려움은 실무적인 차원에서 비롯된다.

결국 부문 간 할당의 이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각종 통계와 숫자들을 운영할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 있게 정책을 수 립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노력에도 부문 간 한계비용, BAU 예측, 감축잠재량, 기술적 가능성 등과 관련한 전문성의 부족은 여전하다. 오히려 퇴보한 측면도 있는 듯하다. 한편, 숫자들 간의 정밀한 정합성은 필요하나 기후정책 수립에서 필수는 아니다. 어차피 국내 부문 간 할당은 부족한 정보 하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간의 합의가 어렵다면 높은 레벨의 협상으로 부문간 할당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보다는 보다 큰 원칙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1.3%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단의 문제이지 숫자나 전문성의 문제는 아니다.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고 원칙이 필요하다. 이것이 실무를 선행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사회가 기후와 관련하여 어느 길로 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기술혁신은 쉽지 않다. 실패할 가능성이 큰 옵션이라는 것도 사실이며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현실적인 선택도 필요하다. 2018년은 그 노선을 선택하는 해이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 기후기본계획, 2030 기후로드맵, 4차 에너지기술개발 10개년 계획 등 중요한 정부계획이 시작된 상태이다. 따라서 이제는 폭 넓은 고민을 열린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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