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자발적 혁신, 기회는 이번 뿐이다!”
“전력산업 자발적 혁신, 기회는 이번 뿐이다!”
  • 이상복
  • 승인 2018.08.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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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복
이투뉴스 기자

최근 전기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답변자들은 에너지공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혁신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학계, 언론계, 법조계, 민간기업, 공기업, 시민사회계 등 각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상복
이투뉴스 기자

 

1) 들어가며

전기저널 500호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신문·저널은 관점이 담긴 기록이자 역사입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기자가 연차가 쌓이면 펜이 무거워지듯 전기저널도 앞으로 매호 새로 발간될때마다 사유의 폭과 깊이가 확장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를 정하는 일이 시작이자 반입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기저널로부터 ‘전환의 시대, 혁신은 어떻게’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을 받고 난뒤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민은 곧 고뇌가 됐습니다. 할 말이 차고 넘칠 줄 알았는데,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니 ‘한국 특성상 혁신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2) 혁신을 위한 제언

잘 아시다시피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입니다. 스스로 가죽(革)을 벗겨 새(新) 가죽(살)을 돋게 하는 행위입니다. 어지간한 동기부여가 아니면 결심조차 어려운 일이며, 과정은 고통 그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출혈이나 감염을 초래해 목숨까지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혁신의 대상이 진정 혁신을 간절히 원하는지, 가장 큰장애물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혁신의 방법을 도출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경우 전력산업계의 자발적 혁신은 요원해 보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이 움직이려는 관성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력산업과 시장의 8할 이상을 과점한 공기업 부문이 그렇습니다. 수세적이며, 변화보다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어쩌면 다가올 변화의 파괴력을 잘 알기에 아주 느린 속도의 도태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진영에 자기혁신을 요구하는 건 애초 한계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전력산업의 ‘절대 규제자’를 자임해 온 정부는 어떨까요. 관료사회를 보면 정부의 단면이 보입니다. 정부와 관료의 권위는 애국심과 탁월함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관료들은 유독 사심이 많고 유능하지 못한데다 소신도 과거보다 한참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부는 현장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종종 고시·시행령·시행규칙과 같은 규제로 군림하려 듭니다. 이러니 정부가 산업·시장 왜곡을 부추긴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겁니다.

이런 행위에 공기업 등을 수시로 동원한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엄연한 상장사를 정부 정책관철 수단으로 경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혁신의 주체와 감시자 경계도 사라집니다. 모든 영역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있지만, 전력부문은 정부나 공적영역의 능동적 혁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결국 전력분야의 혁신은 이런 저항이 급격한 외부 환경변화로 무력화 될 때 시작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안팎으로 변화의 물결은 거셉니다. 외형적으론 우선 전력수요 증가율이 줄고 있습니다. 일찍이 경제성장률을 하회하더니 최근 수년간 성장판이 닫히듯 증가율 0%를 향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산업용 수요 및 비중 감소 등의 영향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경제성장과 전력수요간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고, 머잖아 우리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잔치가 끝나 술과 음식이 떨어지면 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마련입니다. 호황 때와 불황 때 시장참여자 행동 및 인식은 180도 달라집니다. 제로섬 생존게임이 본격화 되면 전원별·전원간 경쟁이 한층 격화되고, 시장운영도 정책적 통제에서 가격기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대형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거기서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메이저 전통에너지 전력기업들의 몰락이 국내 전력회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수동적이던 전기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 프로슈머로의 변신도 파괴력이 적잖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전기의 가격뿐만 아니라 가치를 따지는 소비자가 됐습니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을 유발하거나 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석탄화력·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정수준 비용 상승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3만여 명에 육박하고, 설비용량은 매년 GW단위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전력시장 참여자가 한전과 발전자회사 뿐이던 시절과 정책이나 규제가 같을 수 없습니다.

다시 화두로 돌아가 정리하자면, 이대로라면 우리 전력산업은 자발적 혁신 대신 앞으로 상당기간 현 체제를 고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필연적으로 언젠가 외부에 의한 강제 혁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물론 이미 그때는 자기선택권이 저 멀리 달아난 뒤일 겁니다. 지금 여건에 안분지족하며 시간을 끌고 최대한 버틸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던질 각오로 스스로 파괴적 혁신에 나설 것인가 전력산업 전반이 중대기로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앞서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선낡은 제도부터 수술대에 올려야 합니다. 전근대적인 에너지산업 구조와 운영시스템을 이대로 가져가는 것은 결코 국민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존 경제급전을 온실가스 감축에 부합하는 온전한 환경급전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밀하고 정교한 제도 설계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 1차 에너지가격 변동요인이 2차 에너지인 전기가격에 충실히 반영돼 최소 ‘콩보다 두부가 싼’ 왜곡현상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차피 공기업 재정부실은 시차를 두고 국민에게 돌아오는 청구서입니다. 전기요금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소비자대표가 포함된 독립 에너지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지금처럼 형식적인 거버넌스 확대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지속적인 대국민 소통작업과 설득잡업을 펴야합니다. 지금 필요한 캠페인은 에너지절약이 아니라 제 값을 지불하고 에너지를 쓰자는 캠페인입니다.

정부가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공기업 경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습니다. 과거처럼 전기소비자(국민)가 지불한 요금을 정부가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일도 결코 반복되선 안됩니다. 에너지신산업 육성이란 명분으로 과거 한전을 통해 수행된 각종 사업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밖에 현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의 경우 단순한 재생에너지 비중 제고가 아닌 내수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통합계획 수립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갈 길은 멀지만 속도보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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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2018-09-01 22:58:02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의 전기전자산업이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