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설비 전자파에 얽힌 감성적 불안 떨쳐내야
전력설비 전자파에 얽힌 감성적 불안 떨쳐내야
  • 배성수 기자
  • 승인 2018.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성수 기자

전자파가 암 유발한다는 단정적 넘겨짚기 우리사회 팽배
국제암연구소(IARC)서도 2B등급 … 확정적 발암물질 아냐

 

최근 언론에서 지중 송전선로 전자파에 대한 유해성 보도 등을 통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사실과 오해 등을 가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력설비 전자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공학과 의학, 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지중 전자파와 관련한 왜곡된 정보는 무엇인지, 전자파의 건강 영향과 보호기준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전력설비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요.

김남 충북대 교수(이하 김남) 통상 전기장과 자기장이 결합한 것을 전자파라고 하는데, 전자파는 굉장히 다양하고 대역이 넓습니다. 전력설비의 전자파는 60Hz이며 ELF(Extremely Low Frequency), 극저주파라고 하죠. RF(Radio Frequency)와 ELF는 주파수 대역대가 다를 뿐 아니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다릅니다. RF의 경우 노출되면 생체의 온도가 올라가는 열적효과가 나타나지만, ELF는 유도되는 전류에 의한 자극작용(비열효과)이 주 영향이죠. 생체 온도가 올라가거나 하지 않아요.
 

 

민석원 순천향대 교수(이하 민석원) 일반인들이 전자파를 구분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요새는 언론에서도 일반 전자파가 아닌 저주파가 주는 영향을 열적효과로 보도하더군요. 가령 최근 날씨가 더우면서 손에 쥐고 다니는 작은 선풍기에 대한 보도에서도 전문가라는 이가 나와 열적효과를 손 선풍기의 영향으로 설명하는 식이에요. 손 선풍기 같은 건 저주파 기기인 만큼 열적효과가 아닌 비열효과를 얘기해야 하는데 말이죠.

명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부원장(이하 명성호) RF와 ELF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파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주파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유도돼 멀리 전파되지만 60Hz인 전력설비의 전자파는 전계와 자계가 따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고 멀리 퍼져나가지 못해요. 거리에 따라 급격히 감소하고요.

 

전력설비 전자파 때문에 소아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홍승철 인제대 교수(이하 홍승철) ELF로 인한 소아백혈병 발생논란은 1979년에 소아백혈병과 송전선로 자계노출과의 상관성을 제시하는 최초의 역학연구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이후 ELF 노출이 암 발생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시행됐죠. 1979년 이뤄진 연구는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자계의 영향을 받았을 수준이 실제적
김남 충북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교수으로 계측되지는 않았지만 거리별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추정치로 놓고 연구가 진행됐어요. 아예 영향을 받지 않은 곳과 비교할 때 역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은 것이지만 이런 경우 질병의 분포가 높았다는 것이지, 이 수준에 도달했다고 무조건 암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주지에서 자계 환경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소아백혈병과 같은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역학연구 결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팩트(fact)지만 이것이 마치 그 수준이 넘으면 바로 백혈병이 발생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무송 울산대 교수(이하 이무송) 사실 역학연구라는 것이 상당히 부정확하고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1979년의 워츠하이머 & 리퍼의 역학 연구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건 WHO의 리포트에서도 언급됐습니다. 당시 연구에선 자계 노출이라는 게 개인별로 계측된 것도 아니었고, 연구 대상 선정도 편향되게 이뤄졌어요. 또 중요 노출 정보를 측정하지 못했다는 것도 한계입니다. 더해서 해당 연구가 자계에 노출되면 소아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면 생물학적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개연성도 찾아내지 못했고요. 따라서 상당히 방법적으로 한계가 많은 연구임에도 ELF 논란 시 유일한 근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전력설비 전자파(극저주파 자계)를 2B로 분류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전력설비 전자파는 발암물질인가요.

홍승철 국제암연구소의 1등급은 발암물질을 의미합니다. 2등급 중 2B는 현재까지의 과학적인 증거로 판단 시 발암물질로 분류하기엔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특히 2B는 2A와 비교할 때 정말 가능성이 아주 적을 때, 2B로 분류되는 것인데 대중은 무조건 2등급에 포함되면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라 오해합니다.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차이가 명확하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또 매스미디어에서도 두 단계의 차이에 대해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끔 위험의 크기에 대해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윤실 이화여대 교수(이하 이윤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확률이 아무리 적더라도 자신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염려를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정확한 지식을 전문가들이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과학은 늘 역사적으로 오류가 발견되고, 그 오류를 수정하면서 보완이 되는 것이므로 1979년의 연구 방법이나 결과에 오류가 있다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연구 결과가 필요하겠죠.

이무송 국제암연구소의 발암물질 등급표는 소아백혈병이 발생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척도이지, 국민이 소아백혈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 정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남 전력설비 전자파(자계) 노출이 어느 정도 수준일 때 위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일부 언론에서 제게 WHO에서 전력설비 자계 노출에 대한 영향을 언급했다고, 이를 아냐고 물어보는데 WHO에서는 전력설비와 같은 낮은 자계 노출이 인체에 영향이 있다고 인정한 바가 없습니다.

 

전력설비 전자파 건강영향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입장은.

김남 국내 일부 언론 등에서는 WHO에서 3~4mG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라고 인정했다고 하는데, WHO는 이렇게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말하자면 WHO는 1996년 인터내셔널 EMF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ELF를 먼저 연구했습니다, 2002년도에는 나온 연구결과에서 ELF가 소아백혈병과 관계된다는 얘기가 나오니 이 논란에 대한 판단을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 넘겼어요. 국제암연구소에서 암과 ELF와 관계되는지 그 등급을 정한 게 2B고요.

명성호 덧붙이자면 WHO에서 국제 공동연구로 해당 연관 관계를 12년 동안 조사 후 이를 종합 정리해서 Factsheet로 내놨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Factsheet에 ‘WHO에 따르면 3~4mG의 전자파가 소아백혈병 발병률을 높인다’, ‘WHO에서 사전주의 정책을 선택했다’는 내용이 실렸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러나 해당 보고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런 얘기가 전혀 없습니다. 논의되는 과정에서 나오던 말들이 그대로 언론에 흘러들어가 오해를 일으킨 것 같아요.

김남 맞습니다. Factsheet 보고서를 보면 3~4mG에 대한 내용이나 사전주의 얘기는 없습니다.

명성호 누가 잘못된 얘기를 전파했는데 이 같은 내용이 검증 없이 돌아다닌 것이죠. 의심 없이 인용을 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이를 잘 모르고 그대로 갖다 쓴다거나 인용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이뤄진 연구는 있나요.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무송 우리나라에서도 소아백혈병 이슈가 있어서 안윤옥 서울대 교수님이 ELF와 소아백혈병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했는데, 송전선 자계와 소아백혈병은 관련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내 연구 내용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1979년 방법론에서 문제가 많았던 해외 연구만 자꾸 언급되는 상황이죠. 왜 해당 자료가 신뢰성 있는 근거로 이용되는지, 학문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지식이 대중에게 퍼져 있는지 학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민석원 자계가 소아백혈병에 영향이 없다는 연구결과를 놓고는 언론이 다루지 않는 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무송 맞아요. 다들 ‘WHO에서 이미 판단이 나왔다는데 왜 연구를 또 하지?’하고, 전자파 노출이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 연구는 퍼블리시(출판)가 안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김남 건강과 ELF 간 상관관계에 대해 이뤄진 역학연구가 1979년 워츠하이머 연구 이후에도 엄청 많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만 해도 95% 이상의 연구가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내놨어요. 미국의 전력설비 전자파 대규모 연구였던 RAPID 프로젝트에서도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2002년 국제암연구소에서는 이를 2B로 분류하더군요. 2013년 다시 이를 평가할 때도 2B 등급을 유지해서 사실 놀랐어요.

민석원 사람들이 국제암연구소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위험하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과학적인 사실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감성적인 가치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영환 아주대 교수 국제암연구소의 발암등급 중 2A 이상은 발암물질로 간주하고 조심해야 하는 물질이죠. 커피 같은 경우 2B였지만 얼마 전 여기서 제외됐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물질이 속하는 등급은 변할 수 있습니다. 2010년 ICNIRP에서 전자파 노출 (가능) 기준을 완화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 했던 걸 보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전자파와 관련된 판단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전력설비 전자파에 대해선 사회적 오해가 많으므로 전문가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WHO는 전자파 기준으로 2~4mG를 권고했으며, 국내 기준인 833mG는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게 설정됐다는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는.

민석원 WHO에서는 자의적인 낮은 기준은 정당하지 않다고 발표했어요. 선진국들은 낮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선진국 대부분도 WHO의 권고기준을 따르고 있고요. 네덜란드의 경우는 신설 가공선로에만 일부지역에 한해 4mG를 적용하고 있죠. 스위스에서도 신설 송전선로에 한해 10mG를 적용하지만 여기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습니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낮추되 재정적 여건 등이 맞지 않으면 노출이 높아지더라도 이를 인정하도록 돼있는 거죠.

홍승철 네덜란드 4mG, 스위스 10mG 기준에도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진 것이죠.

민석원 현재 (국내) 전력설비 전자파 기준설정은 비열효과인 안내섬광에 근거해 과학적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현 전력설비 전자파 기준은 단기적 노출만을 고려했으므로 장기적 노출 시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지요.

명성호 WHO에서도 ‘long term effect’라는 말은 있지만 ‘long term guideline’은 없습니다. 장기적인 기준은 따로 없다는 것이지요.

민석원 일부에서 말하는 3~4mG는 장기노출 기준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장기노출 기준을 세워놓지 않았어요.

김남 장기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가 낮은 기준을 적용한 것은 사회적 합의, 정책적 결정에 의한 것이죠.

전자파 갈등해소 위해선 ‘중립적 관리기구’ 신설해야
국민들 우려 불식 위한 정부·학계·사업자 노력 필요

최근 지중 송전선로 전자파로 인해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인가요.

홍승철 154kV 송전선로에 345kV 송전선로를 추가 설치하면 499kV 규모의 전자파가 더 나온다는 주민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명성호 그렇지만 전력설비 전자파(자계)는 벡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상호 감소되기도 합니다.

김남 지중 송전선로를 매설하되 주민들의 걱정을 감소시키기 위해선 기술적으로 전자파 노출량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명성호 지중 송전선로 전자파 민원해결을 위해서 차폐 설비 등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적용시 다른 지역으로의 파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민석원 지중 송전선로 전자파 측정값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지중 송전선로 측정방법은 IEC 62110 국제 표준에 의거해 측정해야 합니다.

전력설비 전자파 논란이 사회적 갈등이 되다 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립적인 기구 설립 등 갈등을 해소할 방안이 필요할 텐데요. 효과적인 방안이 있을까요.

김남 과기정통부는 전자파 갈등조정 위원회를 만들어 RF 전자파 갈등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ELF와 관련한 갈등 역시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윤실 이미 세계 여러 연구에서는 ‘ELF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사실 해외에서는 ELF 건강영향 관련 연구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국토를 가진 나라는 지중선로 등과 관련한 이슈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갖죠. 이 때문에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정부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명성호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과학적으로 설정된 기준인 전자파 노출기준인 833mG를 가지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WHO에서도 전기사업자는 최대한 자기장을 줄이는 정책을 펴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전력사업자는 자발적으로 전자파 노출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겁니다. 또 전자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자파 중립기구도 꼭 필요해요. 별도의 기구가 힘들면 위원회와 같은 협의체가 먼저 설립돼야 할 겁니다.

김남 동의합니다. 일단 중립적인 위원회가 생겨야 해요. 중립적인 전자파 기구 설립을 위해서는 정부나 국회가 나서야 할 것이고요.
이윤실 전자파 논란 해소를 위해 과학자들은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WHO에서 정말로 언급한 사실이 무엇인지 등 팩트를 가지고 주민과 소통해야 합니다. ELF 건강영향 관련 연구도 우리나라에서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하고요.

민석원 중립기구 설립에 대해선 여기 계신 모두가 찬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립기구를 통해 현재 가장 큰 문제인 전자파의 왜곡된 정보도 줄일 수 있고요. 우리나라 전력설비 전자파 논란에는 정부와 전력회사에 대한 불신, 재산 가치에 대한 영향, 건강에 대한 리스크, 소음, 절차의 공정성 등 사회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전력회사는 설비 지중화, 비용부담 등에 대한 장기 플랜을 갖고 이를 제시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