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쉼표 양평 두물머리
일상생활의 쉼표 양평 두물머리
  • 최빈 기자
  • 승인 2018.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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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역대 최고의 무더위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최고 온도 경신 소식이 다뤄졌고, 밤새 무더위가 지속되는 열대야 현상이 흔해 에어컨을 끄고 잠을 자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나 무더웠던 8월이 지나고, 9월이 막 시작되니 조금은 선선해진 기분이다. 고작 하루 차이인데도 달력의 앞자리가 바뀌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주말에 화창할 거라는 일기 예보를 보니, 더위 때문에 여름내 가지 못했던 가까운 근교로 나가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평소 가보고 싶어 했던 양평 두물머리로 향했다.

 

 

두물머리라는 이름은 들을수록 참 예쁜 것 같다. 지명의 대부분이 한자로 표기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글 이름이다. 두물머리라는 명칭은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가 하나로 만나 한강을 이루는 뜻깊은 곳이라, 옛 어른들께서 큰 물줄기 둘이 머리를 맞대는 곳이란 의미로 두물머리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양평 두물머리는 본래 나루터였다. 현재는 완전히 중단된 상태지만 1990 년대까지는 운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를 정박했던 곳과 같은 나루터와 관련된 것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마을의 나루터였던 곳이 유명 관광지가 된 데에는 뱃사공들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양평 두물머리는 사진동호회 사람들에게 최고의 출사지로 불린다. 서울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눈길이 닿는 곳곳이 절경을 뽐내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날에도 큰 렌즈를 겹겹이 장착한 사진동호회 분들이 많이 보였다. 또한,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인 ‘허준’과 ‘첫사랑’이 촬영된 곳이라 하니 두물머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추측해볼 수 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도착해 여유가 있을 줄 알았지만 주차장은 벌써 만차 일보 직전이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차를 한 후 두물머리로 향했다. 좀 걷다 보니 세미원이란 정원이 보였다. 물과 꽃의 정원이라는 이 곳은 많은 연꽃을 비롯해 수많은 조그마한 개울 위에 많은 식물들이 펼쳐 있었다. 두물머리만 생각하고 온 곳에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니 예상 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세미원은 한강을 맑게, 아름답게, 풍요롭게 하자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난 오래된 식물원인 줄 알았는데 10년 전 상류에서 내려오는 쓰레기들이 가득하여 수질이 악화된 것을 정화하기 위해 탄생된 곳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식물원인 만큼 수생식물 중 수질과 토양 정화 능력이 탁월한 연꽃을 주로 식재하여 수질정화에 힘쓰고 있었다. 식물원 탄생 배경이 관상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환경에 기여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식물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오니 무성한 녹음이 우리를 반겼다. 버드나무가 흐드러지게 펴있는 모습과 하늘 높게 뻗쳐 있는 소나무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마치 시골길을 걷고 있는 마냥 펼쳐있는 모래길도 정감 있어 보였다. 도시의 아스팔트에 익숙해져 신발의 흙이 어색하였지만 그래도 그냥 좋았다. 아직 무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으니 가을이 성큼 올 것만 같았다.
두물머리로 가는 길은 생각했던 것 보다 꽤나 멀었다. 그래도 그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은 건 바로 수많은 꽃과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길가에 있는 단조로운 가로수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30여분을 걸으니 강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두물머리 상징인  400 여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또한, 액자 모양으로 되어있는 틀에 강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을 기다리며 사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나은 거 같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을 수는 없다. 탁트인 하늘 아래 거대한 강줄기와 산 그리고  400년이 된 느티나무가 어우러져진 모습은 우리나라를 다 돌아다녀보진 않았지만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인 것 같다. 언제 다시 두물머리에 다시 오게 될까하는 생각에 천천히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처음 두물머리를 보러 바삐 걸었지만 이렇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곳까지 와 왜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느림의 미학을 집에 돌아갈 때야 느끼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은 외부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살고 있다.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새로운 뉴스를 접하며 일어나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등 거의  24시간 외부 세계에 갇혀 있다. 그런데 여기 두물머리에 와 보니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달리 너무나 한적했다. 쉬엄쉬엄 걸어도 재촉하는 사람 하나 없고 나무 그늘 아래서 바람에 날리는 구름을 보며 앉아 한참을 있어도 된다. 이런 점이 두물머리의 진정한 멋인 것 같다.  400년이 된 느티나무가 아닌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 말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물머리에 있지만 북적되거나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 오는 사람들 모두 두물머리와 하나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듯 싶었다. 이번 주말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꼭 한번 양평 두물머리에 들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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