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살아 숨쉬는 ‘남산 둘레길’로 봄나들이 떠나자
역사가 살아 숨쉬는 ‘남산 둘레길’로 봄나들이 떠나자
  • 최빈 기자
  • 승인 2019.0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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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을 끝내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기예보에서 영하의 쌀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다. 이렇게 날은 풀어지고 있는데 방구석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자하니 답답하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나들이를 계획하였다. 일단 가깝고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선정하였다. 바로 남산이다. 남산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나 역시 남산은 몇 번이나 가본 곳이지만 왠지 봄의 싱그러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 다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사람들도 많이 있고, 꽃들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서울 전역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날씨는 따뜻하여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근래 심각해진 미세먼지 탓에 봄을 완연히 즐길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나 역시 착용하였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제아무리 있다하여도 일단 나들이를 나오니 기분은 상쾌해졌다. 남산을 가기 위해 명동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로  20여분 올라가니 남산에 금방 도착하였다. 전에는 케이블카로만 갔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버스를 이용하였다.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남산타워까지는 5분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이었다. 서울에 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아직까지도 남산이 인기 있는 관광지임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남산에 올라가니 봄의 기운을 느낄 채도 없이 '미세먼지가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산타워의 명물인 사랑의 자물쇠를 보고 있는데, 그 너머로 미세먼지가 자욱하여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겨우 보일 정도였다. 앞으로 야외 활동을 할 때는 미세먼지 농도를 꼭 체크하고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나조차도 한복을 입어본지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오래전 일인데, 외국인들이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반성이 되었다.  사랑의 자물쇠가 있는 곳도 가보았다. 나도 전에 자물쇠를 채워놓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된 자물쇠가 수없이 많이 있으니 찾을 일이 만무하다. 그렇게 남산타워 정상에서  30여분 돌아보고 하산하기로 하였다. 애꿎은 미세먼지 탓에 오랫동안 관람해도 크게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장충단 공원을 가기 위해 그 쪽 방면으로 하산하였다. 이번 나들이 때 장충단 공원을 가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이 곳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올 해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 많은 행사도 하고 텔레비전에서도 관련 다큐멘터리 상영을 많이 하여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얼핏 본 것이 기억이 났다. 장충단 공원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고종이 을미사변 때 궁궐에 침입한 일본군에 맞서다 숨진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고, 이는 조선 최초의 현충원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제에서는 장충단의 이런 성격을 없애기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다고 한다. 비록 해방 이후 철거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제의 있을 수 없는 만행이라 생각한다. 이런 역사의 아픔이 있다 보니 장충단 공원 내에는 독립 노력의 흔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준 열사의 동상이다. 이준 열사는  1907년 고종의 명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였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의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일제의 방해와 열강들의 무시 속에 이를 관철시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 울분을 참지 못해 타지에서 순국하였다. 이준 열사는 이 몇 줄의 설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고매하고 강직한 삶을 사신 분 같았다. 그리고 과연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반문해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독립 열사들의 노력이 하나, 둘 모여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같아 독립 운동에 헌신하신 선조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장충단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배도 채울 겸 길 건너편에 있는 빵집에 갔다. 태극당이란 빵집인데  1946년에 세워져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빵집이다. 태극당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창립자가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담기 위해 태극이란 이름을 넣었다고 한다. 태극당의 심볼 또한 무궁화 모습인 걸 보면, '이 집 주인이 참 우리나라를 정말 사랑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오래된 가게이니 만큼 내부에서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상당히 고풍스럽게 되어있다. 천장에 있는 샹들리에 또한 굉장히 크고 오래되어 보인다. 인테리어만 본다면  1920 년대 일제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그리고 그러한 면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요새 카페가 한 집 걸러 있다는데, 이런 인테리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독특하였다. 그리고 손님들 또한 노년층들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과거 서울에 놀이 공간이 많지 않았을 때, 장충단 공원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쉼터였을 것이다. 과연 내가 나이가 든다면 친구들과 어디를 가게 될까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홍대에서 많이 놀았었는데  30 년 후에도 그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옆 테이블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미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범람하는 이 시기에, 70년 넘게 빵집이 유지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극당은 그 이유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태극당에는 대표메뉴인 모나카에서부터 사라다빵까지  100가지가 족히 넘어 보이는 빵이 판매중이다. 이 중에서도 마늘빵과 모나카를 골랐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프랜차이즈의 가벼운 맛을 뛰어넘는 내공이 느껴진다. 마늘빵에 기름이 좔좔 흐르면서도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모나카는 우유맛 아이스크림 빵인데, 차 한잔하고 디저트로 깔끔하게 먹기 안성맞춤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남산 나들이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태극당에서 한껏 배불리 먹으니 그 기억마저 사라져 버렸다. 다음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 남산에 다시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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