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고래’ 보러 간다
난 오늘 ‘고래’ 보러 간다
  • 변우식 기자
  • 승인 2019.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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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에너지공단 울산 본사 가는 길

※ 본 연재는 독자들이 전기·에너지 기관이나 설비를 방문할 때 근처에 있는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 등을 함께 들러볼 수 있도 록 주변 관광지나 맛집 등을 소개하는 신규 코너이다.

지난 8월 중순, 인터뷰 때문에 한국에너지공단 울산 본사에 갈 일이 있던 차에, 이번 전기저널 9월호부터 연재될 새 코너인 ‘에너지, 풍경을 품다’를 위한 취재도 같이 진행하고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이 서울역에서 멀지 않아 울산에 갈 경우 웬만하면 KTX를 이용하는데, 이날은 울산에 가볼만 한 곳 3~4군데 정도 들려야 해서 아침 5시 30분쯤 차량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 잠깐 들른 것을 빼고는 옆길로 새지 않고 쭉 내려왔는데도 울산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5시간 가까이 이동해서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울산시 남구에 위치한 ‘장생포고래마을’. 울산에 내려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가볼만한 곳 몇 군데를 찾아봤는데 여러 유명한 관광지들이 중복되는 가운데서도 단연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 곳이 이 고래 마을이었다.

필자는 ‘고래’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왠지 꿈을 찾아 나서는듯한 그 느낌이 좋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부터 가수 김수철이 부른 ‘고래사냥’을 참 많이 듣고 불렀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응원가로 목이 터져라 불렀었고, 대학 시절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고민하며 한풀이하듯 취기에 동기들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고래’가 우리의 ‘꿈’을 의미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장생포 고래박물관

아무튼, 전용주차장에 내리면 우측에 바로 장생포고래박물관이, 중앙에는 포경선 제6진양호가, 좌측에는 고래생태체험관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등지고 길을 건너 조금 걸어가면 고래문화마을이 조성돼 있다.

가장 먼저 고래박물관을 들렀다. 박물관에서는 왜 장생포가 고래와 관련이 있는지 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식들은 물론, 실제 고래골격이나 고래잡이와 관련된 유물 등을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에 따르면 장생포가 고래잡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장생포에 설립했을 때부터인데, 이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포경업을 독점해 전국에 있는 포경기지를 정비하면서 장생포가 포경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래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흑등고래 골격표본
고래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흑등고래 골격표본

박물관 2층에는 실제 고래골격들과 고래잡이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눈길이 간 것은 흑등고래 골격이었다. 길이 약 7.5m 정도의 흑등고래 골격표본은 2003년 12월 경 고래문화마을에 매장된 것을 2007년 발굴해 제작한 것으로, 3년생 정도로 추정된다. 7.5m 크기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데, 최대 16m까지 자란다는 흑등고래 앞에 인간이 서게 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두려움을 넘어 경이로움이 느껴지지 않을까….

고래생태체험관
고래생태체험관

이어 고래박물관을 나와 생태체험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생태체험관에는 박물관과 달리 살아 있는 고래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물론 돌고래들이지만 말이다. 해저터널을 지나며 돌고래, 바다거북, 각종 열대어 등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참 많았다.

또 입체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는 4D 체험관도 있는데, 인기가 많으니 조금은 서두를 필요가 있다. 하루에 3번 고래 생태 설명회도 진행되는데 필자는 시간이 안 돼 가보지는 못했지만, 후기를 보니 나름 유익한 프로그램 같아 보인다.

다음 간 곳은 고래문화마을(장생포옛마을). 박물관으로부터 약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했다. ‘다음에 갈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가보면 후회할 것 같아 일단 발길을 옮겼다. 고래문화마을에는 장생포의 옛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는 개(그만큼 번성했다는 의미)부터, 연탄가게, 구멍가게, 학교 교실, 당시 아이들이 놀던 모습 등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장생포에서 팔고 있는 고래빵
장생포에서 팔고 있는 고래빵

특히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포수의 집이다. 고래 해체장의 모습을 재현한 곳인데 잡혀와 해체되는 고래도, 먹고살려고 해체하는 사람도 둘 다 짠해 보이는 건 왜일까. 이곳저곳 둘러보다보니 오후 1시가 넘어버렸다. 2시 인터뷰 약속이라 요즘 유행하는 ‘혼밥’의 여유는 부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 박물관 앞에서 고래빵을 좀 샀다. 붕어빵이랑 같은 개념으로 만드는데 달달하니 맛이 꽤 좋았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에너지공단으로 이동했다. 고래박물관에서 에너지공단 본사까지는 차로 약 30분 정도. 참고로 에너지공단 본사가 위치한 울산 우정혁신도시에는 에너지 경제연구원, 한국동서발전, 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관련 기관들은 물론, 산업인력공단, 근로복지공단, 안전보건공단,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등 많은 공공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

태화강
태화강 대공원 전경 모습. 넓은 부지에도 정돈이 꽤 깔끔하게 잘 돼 있다.

이후 인터뷰를 잘 마치고 나서 에너지공단에서 차로 약 7~8분 거리에 위치한 태화강대공원에 있는 십리대숲으로 이동했다. 태화강은 ‘울산의 한강’ 정도 되는 곳으로 강 주변이 굉장히 정리가 잘 돼 있었다. 특히 그 면적이 아주 넓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장소는 십리대숲이었다. 사실 뙤약볕이라 그늘 있는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십리대숲은 십리(十里, 2.5리=약 1km), 즉 약 4km 정도 길이로 뻗어있는 대나무숲이란 뜻이다. 태화강대공원에 주차를 해 놓고 십리대숲으로 향했는데, 그 초입까지 가는 것도 더워서 그런지 꽤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십리대숲에 딱 들어선 순간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대나무 숲길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다. 한낮이라 사람도 거의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큰 숨 한 번 들이쉬고 쭉 걸었다. 그냥 걸었다. 천천히 한 40분쯤 걸었나. 끝까지 갔다가는 다음 행선지를 가보지 못할 것 같아 중간에 빠져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 아니 나이 들고 나서는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매일 오늘 할 일을 챙기고, 내일 해야 할 일을 걱정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해 후회하며 살지 않나. 한 시도 머릿속이 조용한 날이 없는데, 이날은 너무 더운 날씨에 시원한 대나무 숲을 걸어서 그런가. 순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다시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까’ 할 정도로….

대왕암공원
대왕암공원

좋은 기분을 뒤로 하고 다시 대왕암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에너지공단에 들렀을 때 누군가가 부산의 태종대와 견줄 만하다며 대왕암공원은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얼마나 절경이면 그럴까 궁금해 하며 차로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대왕암이 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가야 했다. 나중에 그날 가져온 관광안내도를 보니 대왕암을 가는 길이 4가지나 있다. 필자가 간 길은 주차장 인근 상가에서 시작한 사계절길이었고, 이외에도 대왕암계단에서 출발하는 전설바위길, 슬도라는 곳에서 출발하는 바닷가길, 송림사이로 걸어가는 송림길 등이 더 있다. 소요시간은 사계절길이 15분 정도로 가장 짧고, 나머지는 30~40분 정도 걸린다.

울기등대 모습.
울기등대 모습.

사계절길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안개, 가을에는 상사화, 겨울에는 동백이 피어 특색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 길 옆으로는 1만 2,000여 그루의 송림이 우뚝 서 있어 걸어가는 내내 심심치는 않았다. 아울러 대왕암을 가다 보면 인천 팔미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1906년 두 번째로 설치된 울기등대를 볼 수 있다. 이 등대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대한해협에서 해상군 장악을 목적으로 설치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즉 선박안전용이 아닌 군사전략용으로 세워졌다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다.
이 울기등대를 지나자마자 시원한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그 바다와 경계를 이룬 웅장한 대왕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왕암에는 전설이 내려온다. 삼국통일을 이끈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평소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돼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문무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하게 되자 유언에 따라 동해구(東海口)의 대왕석(大王石)에 장사를 지내니 용으로 승화해 동해를 지키게 됐고 그의 왕비 또한 세상을 떠난 뒤에 용이 됐다는 전설이다. 그 뒤 사람들은 그 대암을 대왕바위(대왕암)라 했으며,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어떻게 보면 기암절벽과 해송만으로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죽어서도 나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더해져서 그런지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신비로움을 마지막으로 이날의 일정을 마치고자 했지만 너무 허기가 져서 저녁을 먹고 올라가기로 했다. 근처 맛집을 찾아보는데 하루 종일 땀을 좀 많이 흘려서 그런지 갑자기 삼계탕이 눈에 들어왔다.

대왕암공원에서 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칠○○○삼계탕 집으로 옮겼다. 식당에 들어서서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 보니 나름 동네 맛집이라고 소개돼 있어 안심이 됐다. 메뉴도 기본삼계탕에서부터 한방, 옻, 들깨, 송이, 전복 등 다양했는데 오랜만에 들깨삼계탕이 눈에 들어와 주문을 했다. 고추, 닭모래집볶음, 깍두기 등 기본 찬과 함께 본 메뉴도 금방 나왔다. 맛은 좋았다(사실 워낙 배가 고파서 뭘 먹어도 맛있었을 듯하다).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었던 일산해수욕장 모습.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었던 일산해수욕장 모습.

식사를 마치고 바로 운전하고 올라가려니 좀 졸릴 것 같아, 바로 앞에 있는 일산해수욕장으로 내려가 커피 한잔 들고 산책 삼아 모래밭을 걸었다. 여름 성수기인데 정말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하긴 울산에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긴 하다. 하지만 나름 물도 깨끗하고 사람도 없어서 극성수기에 오붓하게 즐기기에 는 안성맞춤 같았다.

모래밭길을 이런 저런 생각하며 걷다 오후 7시가 넘은 것을 확인하고는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올라오는 내내 이번 코너의 글은 어떻게 써내려가야 하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한다고 사실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출장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십리대숲이다. 생각을 비운다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볼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울산에 갈 일이 있으면 십리대숲에서 생각을 비우고 한 번 걸어보시길….

1980년 설립된 한국에너지공단(이사장 김창섭)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이용 증진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촉진, 온실가스 저감 유도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준정부기관이다. 에너지효율 향상을 비롯한 에너지신시장 창출,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 2015년 한국에너지관리공단에서 한국에너지공단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은 올 2월 본사를 기존 경기도 용인에서 울산 우정혁신도시로 옮겼다. 신사옥은 2만 1,234㎡ 부지에 지하 3층·지상 8층 규모로 건립됐다. 건축물 에너지효율 등급 1++와 녹색건축인증 최우수등급,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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