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과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새로운 미래
RE100과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새로운 미래
  • 김승완
  • 승인 2019.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승완 충남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❶ 개요

RE100(Renewable Energy 100%) 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국가 전체 계통의 발전량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고, 전력소비기업들의 소비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의미의 민간주도 캠페인을 뜻하는 단어이다. 정부정책도 아닌 민간주도의 캠페인이 보여주는 파괴력에 전 세계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누적 195개의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들이 이 캠페인에 가입했고 점점 더 적극적으로 재생 에너지 조달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애플, 구글 등은 자신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전 세계의 공급업체들에게도 RE100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배터리 등 관련 분야 기업들이 이와 같은 재생에너지 조달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제품 및 부품 수출에서의 협상력이나 경쟁력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국가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연구자로서 RE100 캠페인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은 2018년 하반기였다. 해외의 RE100 동향을 보면서 그 속마음이야 어쨌든 기업들 스스로 자신들의 에너지소비원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현상이 흥미로웠다. RE100 이슈를 통해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환기하고 답보상태인 전력산업 개혁 작업을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의 RE100 이행을 지원하는 제도 설계를 깊이 고민하다보면 2000년대 초반 중단된 구조 개편, 재생에너지 관련 보조금 정책, 전력시장 개혁 등 모든 관련된 이슈들이 줄줄이 엮어진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전력산업 종사자이지만 최근에야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진 사람, 비전공자 혹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RE100 이슈의 주요 내용들을 정리하고 필자의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❷ 본론

가. RE100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 조달의 이론적 방법

전력소비기업이 재생에너지로부터의 발전량을 조달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자가발전을 통한 소비, 인증서구매를통한 인증, 녹색요금제(Green Pricing), 기업 직접구매계약(Corporate Power Purchase Agreement; CorporatePPA, 이하 기업PPA)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전력소비기업의 자가발전소비 방식은 기업이 자신의 사업장 내 유휴부지나 건물의 지붕 등을 활용하여 자기자본 투자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얻은 발전량만큼을 재생에너지 조달로 인증 받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별도의 제도적 지원 없이도 기업이 당장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기업 스스로 발전설비에 대한 운영 및 유지보수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인증서구매를 통한 인증방식이란 전력소비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는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대한 인증서만 직접 개별 발전사업자나 시장을 통해 구매하고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조달을 인정받는 방식이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대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발급하는데 이는 별도의 제도개선 없이는 전력소비기업이 사용할 수 없어 소비 측 인증서를 새로이 만들거나 제도개선을 통해 공급인증서를 범용인증서로 바꾸는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녹색요금제는 한국전력공사와 같은 판매사업자가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인증서 가격에 준하는 그린프리미엄을 붙여 별도의 요금제를 구성하고 이 요금제에 가입하는 전력소비기업에게 재생에너지 조달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이 1kWh 당 100원이고 인증서 가격이 1kWh당 20원이라면 녹색요금제에 가입한 고객들은 kWh 당 120원을 내고 재생에너지 조달을 인정받게 된다. 이 때 그린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20원은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재투자로 활용되어야 한다.

기업PPA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소비기업이 전력시장 밖에서 직접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경우 표준화되지 않은 다양한 계약의 형태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분투자와 병행될 수도 있고 다른 가격 외적인 요소들이 계약에 반영될 수도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의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력소비기업과 협력하여 다양한 방식의 금융 기법들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업 PPA를 체결하는 기업 소비자는 대규모 프로젝트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다른 조달방식보다 저렴하게 전력조달과 재생에너지 사용량 인정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망 이용요
금 등 장외거래 주체들에게 부과되는 각종 요금들을 정당하게 지불해야 한다.

또한 녹색요금제와 기업PPA가 혼합된 형태로서 Green Tariff 혹은 Sleeve PPA 방식도 존재 한다. Green Tariff 방식은 판매사업자가 재생에너지 발전원과 기업 소비자를 중개한다는 점에서 녹색요금제와 유사하지만 개별 건수별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에서는 기업PPA와 비슷한 구조이다. Green Tariff에 가입하는 기업 소비자들은 주로 기업PPA를 스스로 체결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다.

한편 기업PPA의 파생 형태로 중개사업자들이 소규모 발전자원을 집합해 하나의 단일 전력소비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반대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자원을 소규모 기업들이 모여 단체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 지방정부가 양자 간 계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나. RE100 이슈에 대응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

우리나라 전력산업 환경에서 전력소비기업들이 RE100 캠페인에 동참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구조적, 제도적 어려움이다.

과거 우리나라 정부는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00년대 초반에는 발전부문을 분할해 다수의 사업자를 만들어 이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첫 번째 단계의 구조개편을 진행했다.

그 결과 발전부문에는 6개의 한전 자회사 형태의 발전공기업이 존재하게 됐고 다수의 민간발전회사들의 진입이 촉진됐다. 이어서 전력계통과 전력시장의 공정하고 중립적인 운영을 위해 전력거래소가 설립됐고 발전회사들은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전력시장을 통해서 판매사업자인 한전과 전력을 거래하도록 전기사업법에 규정됐다.

구조개편 중단 이후로 이 구조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작은 규모의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한전에게 직접 전력을 공급하고 도매시장가격과 공급인증서 가격을 합친 수준의 특정한 고정가격으로 정산 받는 PPA 제도(이하 한전 PPA)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발전사업자들은 전력시장을 통한 장내거래만 가능하다.

한편 공장이나 대규모 상업용 부하 같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전기소비자는 직접구매자 제도를 통해서 소비전력을 조달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전력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사실 상 직접구매자라고 하더라도 시장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특정 재생에너지 발전원과 직접계약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력시장의 형태를 강제 풀(Compulsory Poo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동부의 PJM 전력시장은 거래소를 통한 장내거래 외에도 발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 간의 시장 밖에서의 장기적인 쌍무계약, 전력회사의 자체발전을 통한 전력조달이 허용되는 자발적 풀(Voluntary Pool) 형태를 가지고 있다.

영국 전력시장의 경우 시장 밖에서의 장기 쌍무계약을 통한 전력거래가 95%에 달할 정도로 거래소를 통한 장내거래의 비중이 매우 작은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전력산업구조 하에서 국내 전력소비기업들의 선택지는 매우 좁았다. 자가발전소비 방식 밖에는 RE100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녹색요금제 관련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기업의 선택지는 하나 더 늘어나게 되지만 여전히 기업PPA나 다양한 형태의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한 자유로운 계약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7월 김성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생에너지원에 한정 발전사업자와 전력소비기업 간의 직접 거래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전기사업법에 큰 구조적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위와 같은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 바람직한 RE100 이행방안 설계 방향성

RE100 이행방안 설계를 위한 제도 논의에 참여하다보니 각자 다른 관점에서 제도를 이해하고 제안하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력산업과 전력시장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행방안 설계 시 고려해야 할 방향성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오랜 고민의 결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들이 제도설계에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지었다.

❸ 결론

RE100 캠페인의 특징은 정부가 강제하는 정책이 아닌 전력 소비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RE100 이행을 위해서는 모든 기업들에게 헐값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에게 정부의 인센티브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RE100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들은 다양하지만 국내 환경에서는 당장 실행 가능한 것과 일부 행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을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도입 가능한 방법,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방법들로 난이도가 구분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도들이 순차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처음 도입된 제도를 통한 재생에너지 조달 가격이 다른 제도의 기준 값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녹색요금제의 그린프리미엄 수준이 너무 낮게 설정된다면 향후 다른 제도들이 가능해진다고 할지라도 기업들이 보다 순증효과가 큰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조달을 연구하기 보다는 가장 저렴한 방식에 매몰되어버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제도 간의 형평성을 염두에 두고 초기 단계의 제도들을 정교하고 유연한 구조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RE100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의 수요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산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정부당국이 RE100 대응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의 산업경쟁력을 유지시키는 데만 집중하고 실제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날 것인지 이에 대한 행정적인 집행이 용이하고 감독이 가능한 것인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RE100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RE100 이행을 위한 제도적인 자원이 재생에너지 확산에는 효과적으로 기여하지 못해 단순히 기업들의 무역 지원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유화된 전력산업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RE100 대응을 위한 제도설계와 이를 막는 구조적인 한계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치열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기에 상당히 경직된 구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RE100 이행을 위한 방안 중 가장 도입이 어려운 기업PPA가 실제로 구현된다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기업PPA제도가 만들어져도 재생에너지 단가가 비싸다보니 제대로된 계약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히려 기업PPA를 통해 대규모 물량체결과 창의적인 계약구조가 가능해진다면 재생에너지 단가를 빠르게 떨어트리는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PPA의 도입은 장내거래를 원칙으로 설계된 현재 전력시장의 유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기업PPA를 체결해야하는 사업자들이 응당 지불해야 할 망 이용요금 및 기타 계통운영 관련 비용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산정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같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RE100으로 시작된 논의가 기업PPA의 도입을 발판으로 건설적이고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길 고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