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 그리고 소중한 인연
우연한 만남 그리고 소중한 인연
  • 최우성
  • 승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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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한전 전력연구원 선임연구원

해외 연구기관과의 여러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미국 출장을 적지 않게 다니는 편이라 ‘2019 PGI(Power-Gen International)’ 참관 관련 해외 출장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PGI가 열리는 뉴올리언스의 경우 3년전쯤 개인적으로 여행을 했던 곳이기에 출발 전 더욱 담담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특히 이번 출장의 경우 여러 업무로 여유가 없이 다소 수동적으로 참석하게 된 상황이었다. 출발 몇 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짐을 꾸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뉴욕을 경유해서 뉴올리언스를 가는 일정이었다. 미국을 10번 넘게 다니면서도 뉴욕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터라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설렘이 앞섰다.

참관 기간동안 함께 할 40여 명의 참관단과의 우연한 만남도 반가웠다. 뉴욕에 도착함과 동시에 맨하탄으로 이동해 월가를 방문했다. 생기가 있지만 다소 삭막해 보이는 맨하탄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면서 제대로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던 회사 선후배 분들과 담소를 나눴다. 다른 전력회사 분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었다.

둘째 날에는 PGI가 열리는 뉴올리언즈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뉴욕현대미술관, 엠파이어 빌딩, 센트럴파크를 잠깐들렀다. 고흐의 작품을 만난 미술관 관람도, 한때 세계 최고 높이로 유명했던 엠파이어 빌딩 방문도 즐거웠다. 특히 짧은 시간만 들르게 된 센트럴파크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스포츠웨어를 입고 헤드셋을 착용한 채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하는 것이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Technical Tour, 한국인의 열정을 느끼다

뉴올리언즈에 도착한 후 첫 번째 일정은 Technical tour의 일환인 루지애나주에 위치한 롯데 케미컬(LCC) 견학이었다. 숙소에서 3시간 넘게 떨어진 곳으로의 방문인데 왕복 6시간 넘게 이동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롯데케미컬은 부지 30만평에 150만 톤의 증기를 생산하는 보일러를 보유하고 있으며, 70만 톤의 에탄올을 가공해 크래커와 EG(Ethylene Glycol)를 생산하는 곳이다. 설비 유지보수 관련 규제가 심한 한국과 달리 직원 200여 명이 자체적으로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다만 후속 책임에 대한 부담은 큰 편이다.

한편 롯데케미컬이 미국 50개주 중에서 세일가스가 많지 않은 루지애나주를 사업부지로 선정한 이유는 시사점이 크다. 주세가 낮고 외국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높다는 장점 외에 에탄올 수송관과 같은 파이프라인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며 타지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롯데케미컬 주재원들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함을 느꼈다.

PGI는 명실공히 발전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

아주 오래 전 PowerGen Asia에 발표자로 참석한 적이 있어 대략적인 느낌은 있었지만 직접 참관한 PGI는 명실공히 발전분야 세계 최대 컨퍼런스였다. PGI는 30여 년간 미국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300여 편의 기술별 논문이 발표된다. 또한 전시 참여업체가 1,100개 이상으로 매년 전 세계 110여 개국에서 2만명 이상 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컨퍼런스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지만 65개 세션, 200여 개 전문가 발표, 900개가 넘는 전시가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보통 국내에서 하는 기술전시회라고 하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큰 틀을 만들고 소수의 중소기업이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PGI에서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나아가 소형 기업까지 발전분야의 많은 부분을 아우르고 있었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다양한 회사의 제품들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필요했던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 및 협력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스터빈 및 디지털 기술 분야의 연구과제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컨퍼런스 중간중간 가스터빈, 신에너지, 디지털 기술 분야의 전문가 세미나에 참석했다. 가스터빈 분야에서는 최적 운전을 통한 비용 절감과 수소 터빈을 연계한 차세대 발전에 대한 발표가 주를 이뤘고, 가스터빈 압축기 성능 최적화 사례 연구는 실제 수행하고 있는 과제의 방향성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됐다.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는 ABB 등에서 AI 기술을 이용한 유지보수 및 일부 솔루션에 대한 제한적인 소개를 했다. 현재 전력연구원에서 발전 5개사와 수행하고 있는 IDPP(Intelligent Digital Power Plant)의 연구성과 및 사례가 보완되면 독립적인 세션으로의 홍보가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디지털 기술을 소개하는 세미나에서 소개된 ‘디지털 기술 활용 발전소 최적 운영을 위한 요소’ 발표자료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되고 분석하고자 하는 데이터의 품질이 좋아져도 현재보다 개선할 수 있는 비중은 약 30%라고 한다. 사람과 조직의 문화에서의 변화 없이 기술이나 데이터에 집착하는 것은 제대로 된 개선을 이루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발전소 운영 뿐만 아니라 기술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우리가 틈틈이 생각해 볼 고민거리다.

재즈의 본 고장에서 재즈를 느끼다

대한전기협회가 주관하는 PGI 참관 프로그램의 경우 세계 최대 발전분야 컨퍼런스 참석과 알찬 이문화 체험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PGI가 개최된 뉴올리언즈는 재즈의 본 고장 아니던가. 뉴올리언즈는 1718년 프랑스의 루지애나 총독에 의해 설립되어 프랑스 식민지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1764년 에스파냐령이 되었다가 1803년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다. 1803년 루지애나 매입에 의하여 미국의 영토가 되었고 1849년까지 주도(州都)로 있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도 프랑스 식민지시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으며 재즈의 발상지, 매년 2월에 열리는 마디그라 축제 등으로 유명하다. 잭슨 광장을 주축으로 세인트루이스대성당, 재즈 박물관, 프렌치 마켓 등에 매년 1,000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도시다.

컨퍼런스 기간 중에는 저녁 식사 이후 약 3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가야할 곳은 당연히 프리저베이션 홀이다. 뉴올리언즈에서 가장 전통있는 공연장으로 유명 재즈연주가들이 연주해왔던 곳이다. 공연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거의 못볼 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력연구원 일행들과 함께 짧지만 강렬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공연장 뒤쪽에 서서 숙련된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재즈의 선율에 우리 모두 눈으로, 귀로 그리고 몸으로 즐길 수 밖에 없었다. 올 한해 짧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뽑게 된다면 아마 그때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재즈 팟캐스트를 참관단과 공유하고 뉴올리언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뉴올리언즈를 떠나는 날 반나절의 시간이 있어 잭슨광장을 중심으로 세인트루이스 성당, 프렌치 마켓 그리고 톰소가 놀았다던 미시시피강의 한 자락을 눈에 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경유한 천사의 도시 LA에서는 그리니치 천문대, 다저스 스타디움, 헐리우드 거리를 숨가쁘게 지나치고 마지막으로 산타모니카 비치의 붉은 석양과 새우 요리를 즐겼다. 참관단 40여 명이 태평양 한가운데로 지는 석양을 함께 바라봤다. 일주일 넘게 서먹해하다 헤어질 때가 되서야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우연한 만남, 그리고 소중한 인연

사람냄새 나는 이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체험은 기분 좋은 설렘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의도하지 않을수록 만남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이번 2019 PGI 참관은 그런 설렘과 새로운 체험을 모두 맛본 좋은 시간이었다. 세계 최대 전력분야 전시회 참관으로 기술적인 시야와 견문이 넓어진 것이 첫 번째 감사한 점이다. 예상하지 못한 인연과의 소중한 만남, 그리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지친 일상 속에서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의 무게를 덜게된 것이 두 번째 감사한 점이다.

6박 9일동안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전력연구원 어벤저스팀, 사소한 것까지 다 준비해 주신 전기협회 관계자 및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 주신 참관단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으로 우리의 우연한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피천득의 ‘인연’ 중 좋아하는 글귀로 참관 후기를 마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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