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산업과 새로운 시장
전기신산업과 새로운 시장
  • 안준호
  • 승인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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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한국전기산업연구원 기술정책실장

 

❶ 진단
1900년대 초반 사람들에게 다가온 전기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에는 정보통신, 데이터 기술 등 디지털 기반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전기에너지도 새로운 영역으로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와 –로 이루어진 전기에너지를 생각하면 전기의 발견 자체가 디지털 기술 진화의 시발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싶다.

현재 인류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은 아직 전통적인 방식을 완전히 넘지 못하고 있다. 나무에서 석탄, 석유를 활용하여 점차 높은 열량을 가진 재료를 기반으로 난방과 조리에 사용되던 에너지는 전기가 발견되면서 난방과 조리 외에도 조명, 통신,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으나 열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발전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과 같은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재생에너지나 수소의 높은 에너지를 원자단위에서 융합 또는 분해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미래 에너지 기술들이 점차 발달하면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새로운 시장의 변화가 촉발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전력IT 사업을 시작으로 2009년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등 전력시장에 ICT기술을 적용한 변화를 추진했고, 2016년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정책의 변화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력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변화를 선언한 정부는 관련된 여러가지 정책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1)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유지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2) 수요관리를 위해 수요반응(DR), 분산자원을 활용하고 3) 에너지자원의 거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재생에너지 3020이행계획’을 발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에 수요반응(DR),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를 통한 분산자원의 관리를 위한 연구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소규모 전력중개거래 및 전력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라 산업, 학계, 연구계는 다양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정보통신과 데이터 기술만 앞서고 있다. 이를 적용할 전기인프라 분야를 담당하는 전기산업계는 아직 융합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전기산업 분야가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집중하고 오랜 기간 축적된 관련 규정과 제도, 제한된 시장참여자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시장 속도를 쫓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산업계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안정적인 전력인프라 구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네트워크와 데이터만 움직이는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전체 에너지신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유사한 사례가 바로 제주도에서 실증했던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이다.

이 실증사업을 통해 우리나라는 스마트그리드가 새로운 전력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기술적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전력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규정의 미비, 네트워크와 전기설비들이 상호운영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들이 미약하여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❷ 활동 - 전기산업기본법

최근 전기산업계도 전기산업기본법을 통해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존 전기산업 부흥과 전기신산업의 육성을 위해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전기산업기본법은 부각되고 있는 스마트 에너지기술을 적용, 새로운 전기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최근 시범서비스 되고 있는 기술이 있다. 에너지 사용패턴을 통해 독거노인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로 단순히 전력사용 데이터를 활용한 기술이지만 적지 않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며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 데이터 신호를 어떤 주기로 확인해야 하는지도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마이크로초 단위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이 있다고 해도 사용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는 전기설비들이 그 주기만큼 반응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춰야 한다. 또 그만큼 짧은 시간동안의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기술의 진보에만 신경을 써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효율성과 경제성을 모두 갖춘 결과값을 얻는 노력이 부족했다. 전기신산업이 기존 전기산업과 비교해 발전되고 개선되어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전기인프라가 정보통신, 네트워크, 데이터 기술 등이 적용될수 있도록 인프라 부분에서 기획, 설계, 제조, 설치/시공, 운영, 유지보수, 안전관리 등 산업 밸류체인 내에서 이용이 가능하도록 일관된 규칙과 규정,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전기설비들은 생활안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규정들도 매우 세심하게 다뤄야 된다.

과연 지금처럼 다양하고 확장적인 에너지신산업의 기술들이 현재의 전기인프라에 적용되면 충분히 능력발휘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개발된 기술들을 현장에 적용하고 실증하여 문제없음을 검토한 후 스마트 에너지 기술들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R&D개발은 실증사업을 통해 기술적 문제점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취급한다. 그 결과 몇 년 동안 개발된 많은 스마트에너지 기술이 산업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축적은 이뤄냈지만 시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시장을 위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기술개발을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전기산업 분야가 대기업 중심의 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이란 점이다. 미국과 유럽의 에너지 서비스 관련 기술들은 대부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에너지 서비스 시장은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한 각종 제도와 규정으로 인한 규제가 많아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활약을 할 공간이 부족하다.

특히 전기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에너지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기인프라 구축이 선행되고 난 후에야 혁신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림 2는 전기산업의 밸류체인에 따른 전기신산업의 역할과 요구되는 부분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전기산업계 각 기업들은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전기신산업에 대한 기술개발과 전문성을 향상시켜 스마트에너지 시대에 맞는 기술 보유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춰야 다가오는 에너지전환 시대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❸ 다가오는 새로운 시장
에너지전환 시대를 맞아 전기산업이 미래 에너지신산업과접목되는 분야로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로 알려진 전력을 모아 거래를 할 수 있는 전력중개 사업자를 들 수 있다. 전력거래 중 하나의 모델인 소규모 전력중개거래 및 전력직거래는 사용자의 전력사용을 효율화하고 전기에너지를 거래하여 수익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다.

하지만 이 신시장은 사용자 또는 수용가 하나하나가 거래를 위한 정보를 습득하고 판단해 시장에 참여하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에너지 비용을 아끼고 수익을 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돕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거래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바로 중개사업자를 이용한 새로운 시장이다.

중개사업자는 사용자의 에너지 사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 에너지 사용량을 추적해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전력을 제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일일이 자신의 전력사용 패턴을 보고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AI(Artificial Intelligent, 인공지능) 기술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AI 기술을 이용하면 전기사용패턴을 분석, 사용량이 많은 시간대에는 가격이 저렴한 전력요금을 선택해 요금을 절약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고 사용자의 사용량을 무조건 줄이는 서비스는 오래 갈 수 없다.

사용할 때는 사용하지만 아낄 때는 아끼는 소위 ‘때를 아는 에너지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스마트 에너지기술이란 에너지의 상황을 알려주고 소비자를 반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에너지 효율과 수익을 발생시켜 주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량 추적과 함께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수집이 필수다. 기온이 오르고 내리거나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교통량이 증가하는 등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들을 연결시켜 에너지효율을 적용하는 것 역시 효율화의 한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에너지공급에 대한 효율화다. 최근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거래를 위해 전력망의 확충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한전이나 거래소에만 판매하게 되면 변전소, 전력망 확대가 불가피하다. 거기에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신재생에너지 특성을 감안하면 전력망을 운영하는 측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된 신재생에너지가 발전원 근처에서 소비되고 남은 전력이 전력망을 이용하게 되면 전력망 확충이나 간헐적 발전으로 인한 전력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한전 및 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는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미 개정된 부분도 있고 발의된 개정안도 있는데다 현재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 P2P(Peer to Peer, 프로슈머간 거래) 거래 등이 시도되고 있지만 규제 샌드박스만으로는 성패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양한 형태의 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규제 샌드박스로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 규모(1MW 이하)의 시장에 한해서는 지정된 시장관리자의 관리를 전제한 상태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이것이 소규모 중개거래, 전력직거래 시장이 될 것이다. 다만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력요금에 대한 현실화 방안이 함께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참여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이나 전력직거래와 같은 사업은 기존의 규제 중심의 전력시장에서는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기 매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해도 제도 및 규정을 완비하지 않으면 사업 수행 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관리자가 새롭게 제시되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의 시장적용을 위해 산업 내 밸류체인을 구성하는 시장 참여자들의 TF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제도와 규정 정비 및 자유로운 경쟁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표준 기반 기술개발 및 제도 정비가 필수적이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되더라도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없는 기술이라면 기술 및 시장 독점이 우려되고 수출화에도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제표준이 기반돼야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❹ 전기신산업의 미래

전기산업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전기신산업의 육성과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은 형성됐지만 전기신산업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에너지신산업 내에서 전기신산업이 어떤 위치와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기존 전기산업이라 하면 전기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산업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최근 융복합화된 전기에너지는 인프라 구축만으로 산업의 역할을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전기 신산업을 통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2차 산업에서 전기에너지 서비스라는 3차 산업으로 확대해 산업의 진흥과 미래가치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국제표준 기반의 기술을 적용한 일정 규모(1MW 이하)의 자유화된 전력시장을 통해서 스타트업 중심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면 전기신산업은 전력인프라 기반을 구축한 기간산업의 역할과 함께 전기에너지 서비스 기반을 구축한 에너지서비스 기간산업으로써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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