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당연한 것은 없다
데미안 - 당연한 것은 없다
  • 박경민
  • 승인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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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한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코로나19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지친 마음을 위로할 ‘마음의 방역’을 한번 시도해보기 위함이 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희노애락을, 철학을, 사랑을 생각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불편함과 피로함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첫 책은 호기롭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정했다. 성장소설의 대표격인 데미안을 통해 내면의 성장과 세상을 사는 지혜를 함양해 보겠다는 호기로움의 발현이었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어린시절도 비슷했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잘 정돈되고 모범적인 밝은 세계와 난잡하고 요란스런 어두운 세계로 양분돼 있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싱클레어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호승심에 그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사소한 시작이었지만 점점 커진 거짓말은 결국 싱클레어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싱클레어를 채근하고 협박하며 돈을 요구하는 프란츠 크로머라는 친구는 정신적, 육체적 괴롭힘을 계속하다 급기야는 싱클레어의 누나를 데리고 나오라고까지 한다. 불안과 초조 속에 휩싸인 싱클레어에게 남은 것은 지옥같은 현실 뿐이었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등장한 구세주는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전학을 온 데미안의 등장으로 싱클레어의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밝은 세계로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데미안은 그간 싱클레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 특히 종교나 도덕, 관습 같은 ‘밝은 세계’의 가치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내가 그동안 믿고 따르고 받아들인 것들이 맞는지, 그건 누가 정한건지, 도대체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등 내가 거나하게 취했을때나 했을 생각을 10대의 싱클레어는 감당해낸다. 사랑을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비로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 없이도 마음 속 참담함을 당당히 마주한다. 결국 내면을 들어다보고 스스로의 성숙을 이끌어낸다.

‘비판적 사고를 하라’는 말은 자기계발서나 TV강연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실제 생활에서 이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비판은 필연적으로 불편과 비효율을 야기한다. 그동안 해 왔던 익숙함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괜찮은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가. 당연한 건 당연한 것.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의 논리가 편하고 편리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데미안의 명구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알에서 나올 수 없다. 대세를 따르고 흐름에 몸을 맡기고 관행을 중시하게 된다.

사실 그냥 그래도 잘 살았는데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꿔놓았다. 편안하게 외식을 할 수도 없고 직장동료와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렵다. 아픔을 참고 나와서 공부하고 일하던 사람을 수식하던 ‘성실’이란 단어는 ‘민폐’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당연했던 것들과 얼마나 더 이별하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거리두기를 핑계로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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