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빈곤 확대 … 새로운 복지접근법 ‘필요’
에너지 빈곤 확대 … 새로운 복지접근법 ‘필요’
  • 이훈 기자
  • 승인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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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영향 … 에너지사용 불평등 가속화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대비책 사용 불가 … 새로운 대책 필요

2018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이 폭염을 재난으로 선포할 정도로 역대 최악의 더위를 기록했다. 기후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기후위기는 혹서기와 혹한기 에너지사용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폭염 대비책으로 마련된 공공시설 이용이 어려워져 에너지취약계층이 폭염 피해에 그대로 노출될 위기에 놓여있다.

에너지시민연대 제공
에너지빈곤층 대부분이 1970년대 이전 건축된 주택에서 주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시민연대 제공

 

에너지빈곤, 저소득 · 높은 에너지 비용 등으로 발생
에너지빈곤층 노인세대 가장 많아

에너지빈곤이란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에서 냉 · 난방 등 필수적인 수준의 에너지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영국에서 처음 개념이 도입될 당시 난방용 연료를 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냉방, 조명, 가전기기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서비스 전반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빈곤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황인창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에너지빈곤은 저소득, 건물의 에너지비효율성, 높은 에너지비용 등이 상호 영향을 끼쳐 발생한다”며 “가구의 가처분 소득, 소비지출 패턴, 에너지원의 가격, 에너지 이용기기, 주거 특성 등이 에너지빈곤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경우 정부 에너지빈곤 기준(소득의 10%이상을 냉 · 난방을 위한 에너지비용으로 지출하는 가구)에 따른 저소득가구 중 에너지 빈곤 비율은 1.3%에 불과하나 유럽연합에서 추천하는 지표(소득 중 에너지비용으로 지출하는 비율이 전국 중윗값의 2배 이상)를 기준으로 산정하면 에너지 빈곤 비율은 12.5%로 나타났다. 여기에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고려해 총소득에서 월세를 차감한 후 다시 산정하면 저소득가구 중 에너지빈곤 가구의 비율은 29.2%까지 높아진다. 특히 에너지빈곤층 가구유형 중 노인세대가 가장 많았다.

에너지 전문 NGO 네트워크인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6월 15일부터 7월 7일까지 서울, 부산, 광주, 대전, 전남 등 5개 시ㆍ도 6개 지역의 에너지 취약가구 298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인세대가 252가구로 전체 85%를 차지했다.

평균연령은 75.3세로 이는 2018년 71.2세, 2019년 71.5세 평균연령보다 높아, 매년 응답자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229가구(77%)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경제활동을 하는 가구조차 비정규직 비중(68%)이 정규직(32%)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월 평균 가구소득은 46만 5,000원이며, 31만~60만 원이 59%(175가구), 61만~90만 원이 11%(32가구)로 응답했다.

응답자는 평균적으로 약 44.3m2(13.4평) 정도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자의 거주 주택 38%가 1970년대 이전에 건축되었으며 2020년 기준으로 건축연도가 20년 이하인 주택은 단 8%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62%가 30년 이상 된 주택으로 거주 주택이 매우 노후화됨을 알 수 있었다.

주냉방시설로 선풍기 이용자가 262가구(88%)로 대다수였고, 선풍기 또는 에어컨 없이 부채로만 생활하는 가구도 5가구나 있었다. 2019년 하절기 무더위 쉼터 운영에 대한 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의 64%가 인지하고 있었고, 그중에서 40%만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금할인, 에너지바우처 등 에너지복지제도에 대한 인지경로는 공무원(71%), 사회복지사(12%)로 조사됐다. 수혜 여부(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전기요금 할인제도 수혜자가 46%(136가구)로 가장 많았으며 가스요금 할인(35%), 에너지바우처(21%)순으로 나타났다.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에너지 복지 수혜 가구의 특성상 유선 연락 등 비대면 방식으로 복지 제도 내용을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에 따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에너지 복지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무더위 쉼터도 축소된 만큼 냉방기기의 공공 렌탈 등 새로운 형태의 무더위 쉼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한 여름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 에너지빈곤의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연료비가 증가한다”면서도 “상위 소득구간과 하위 소득구간의 연료비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동절기의 연료비 평균이 다른시기보다 높다”며 “저소득층의 경우 등유와 연탄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공동주택 난방비와 가스, 전기는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낮다”고 설명했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수단 개발 필요
에너지빈곤 데이터베이스 기반 기준 정립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이성만 의원실 주최로 '폭염,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복지'란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성만 의원실 제공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에너지 소비지출의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은 “에너지복지 전달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관련 전담기관 및 중간지원 조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미국, 프랑스 등에는 에너지 복지와 관련된 연구 · 조사 · 지원 전문기관이 있다. 이 부소장은 “민관 거버넌스 기반에서 설립되고 운영돼야 제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영선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은 에너지복지에 대한 통계 · 연구기반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 사무총장은 “정책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분석을 통해 에너지 빈곤 원인을 구조화하고 기본 기준선을 정립하는 연구가 진행돼야 하지만 현실은 각 사업에 따라 지원대상과 지원내용이 결정되는 구조가 이어져오고 있다”며 “에너지빈곤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에너지빈곤 기준을 정립하고 복지정책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또한 저소득가구 에너지 소비 관련 현황조사 및 통계 자료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 사무총장은 “구체적인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 및 정책설계의 주요자료인 에너지 빈곤층의 통계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며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실태조사 후 적정 지원수준을 결정해야 최대의 정책 효과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훈 기자 hoon@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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