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터 추가설치, 무엇이 문제인가?
맥스터 추가설치, 무엇이 문제인가?
  • 정범진
  • 승인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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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월성 원전부지에 맥스터(MACSTOR)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과 관련해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논란이 있다. 이는 발전소의 부대설비이며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는 바, 굳이 원자력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고 전력산업계가 다소간 경험하게 될 수 있는 사회적 논란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둘러싼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❶ 맥스터 개요
맥스터는 원전에서 발생된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보관할수 있는 설비다. 모듈형 공기냉각 저장시설(Modular Air Cooled Storage)의 약자로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으로 보관한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수준의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므로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수조)에서 수년간(5년 이상) 보관 후 열과 방사선이 충분히 감소해 대기중 공기의 자연순환에 의해 냉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하면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한다.

월성 원전부지에는 이미 1992년부터 원기둥 형태의 캐니스터를 건설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왔고 2010년부터 조밀 저장시설인 맥스터를 건설해 운영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이 포화됨에 따라 추가로 건설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❷ 맥스터 추가설치 이유

월성 원전부지에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4기의 CANDU형 원자로가 있다. 이 원자로는 중수로(重水爐)로 농축하지 않은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에 적합한 원자로다. 국내 주종노형인 경수로의 경우 핵연료의 우라늄-235 함량이 4% 정도다. 그런데 중수로 핵연료의 우라늄-235 함량은 0.7%로 1/5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동일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핵연료의 양이 더 많아야 하고 당연히 사용후핵연료도 더 많이 배출한다.

물론 핵분열을 적게 했기 때문에 중수소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성 독성도 그만큼 낮다. 이는 석탄의 비중이 높은 연탄은 더 오래 연소하나 석탄의 비중이 낮은 연탄은 자주 갈아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안이 되는 문제는 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둘 공간이 부족해진 점이다.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하거나 중간저장을 하기 위한 부지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지 내에 임시보관시설의 용량이 초과하게 되면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임시보관시설의 증설이 필요해진다.

표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경수로 부지에 비해 중수로 원전부지인 월성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은 92.8%의 포화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월성 원전의 가동을 위해서는 사
용후핵연료 보관설비가 시급히 확충돼야 한다.

❸ 맥스터 건설 및 인허가 현황

한수원은 월성부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이 포화에 이를 것이 예측되고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및 중간저장을 위한 부지확보가 어려울 것이 예상됨에 따라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92년에는 원통형 캐니스터를 300기 건설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했고 2010년에는 보다 고밀도로 저장을하기 위해 7기의 맥스터를 건설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그림 1).

임시저장설비가 더 필요해지자 한수원은 2014년 맥스터를 추가 건설하기로 2016년 4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운영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2단계 맥스터는 2010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1단계 맥스터보다 지진대응 능력을 보강한 것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3년 3개월 동안 기술적 검토, 질의답변 등을 수행했고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지난 1월 10일 허가받았다.

1단계 맥스터와 동일부지에 거의 유사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2단계 맥스터의 운영허가 심사에 3년 9개월이 소요됨에 따라서 약 19개월이 예상되는 맥스터 건설은 당장 착수해도 포화시점까지 약 6개월의 여유기간 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시급히 건설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❹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개요

원자력계는 지난 30여 년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구하기 위해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에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다. 그때마다 번번이 반핵시민사회계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대단히 위험한 시설이라고 주민들을 선동했고 주민들은 폭동에 가까운 대응을 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제대로 지질조사조차도 해보지 못했다. 부지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한 지질조사에도 주민들이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반핵시민사회계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도 없이 원전 사업을 했냐고 지속적으로 원자력계를 공격하고 있다. 훼방을 놓았던 자신들의 행적은 쏙 빼놓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펌프와 같은 능동기기 없이 차폐벽과 자연력에 의해 방사선차폐와 열의 냉각이 이루어지는 피동설비가 위험한 시설로 인식된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난항에 부딪친 정부는 2004년 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 고준위폐기물과 중 · 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을 분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 결과 경주에 중 · 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은 여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구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다.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국민적 공감대’ 하에 마련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정부는 2010년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을 개정해 공론화의 근거를 마련했다.

산업부는 2013년 10월부터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15명의 민간위원을 대상으로 20개월간 약 40억 원을 들여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수행했다. 그 결과 2015년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도출했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은 다음과 같이 10개 항목으로 정리된다. 권고안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0년까지 지하연구시설(URL) 부지를 확보하고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 중간저장시설과 URL은 2030년에 가동할 것, 2051년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하는 것, 또한 이 일정을 맞출 수 없는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하였을 때 각 원전 부지 내에 단기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❺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새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과제에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가 반영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전의 공론화가 원자력계와 환경단체, 주민 등 서로 입장이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사전 조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2015년의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을 바탕으로 작성했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실 ‘충분히’라는 단어는 무한개념의 단어로 반대론자들이 애용하는 단어이다. 이에 제2차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고 2018년 5월 11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준비단’을 출범시켰다.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고시 제2019-85호(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설치 및 지원에 관한 고시)를 고시하고 재검토 위원회를 발족해 운영 중이다.

그런데 2016년 정부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계획으로 확정해 놓고서도 이번 정부에서 공론화를 다시 수행하겠다고 한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면 이전 공론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유일한 설명은 이전 공론화에서 반핵시민사회계의 참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처장과 녹색연합의 윤기돈 처장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조금 활동하다가 탈퇴해버렸다. 반핵시민사회계는 지난 30년간 공식적 논의의 장에는 참여를 거부하고 장외에서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

둘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재검토한다면 이전 공론화의 중요한 권고사항인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의 건설을 일정에 따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2020년은 권고사항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의 부지를 확정해야 할 해다.

셋째, 공론화라는 과정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정책의 권위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위원회의 독립적 권고안은 정부주도의 계획보다 권위가 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가 아님에도 굳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추진했던 것이 공론화인데 2013년에 수행된 공론화의 권위를 무너뜨려 버리고 새로운 권위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산업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다시 하겠다고 하였을 때, 이미 공론화는 망가지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재검토 위원회를 구성해 1년간 운영했다. 이번에도 반핵시민사회계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정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것을 따르는 것이 싫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논의의 진전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재검토위원회는 33인의 전문가로 전문가 검토그룹을 구성해 반핵시민사회계와 가까운 전문가 그룹을 논의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이들도 지난 1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입장문을 발표하면서 11명이 집단 사퇴해 버렸다. 산업부가 부실하고 조잡한 재검토와 요식적인 전문가 검토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가 하는 국가 차원의 방폐물관리위원회 설립 및 독립적인 의사결정체계 수립 등의 권고는 소모적이고 무한정한 논의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반핵시민사회계의 참여부재라는 재검토위원회 구성의 기본적 목표가 좌절된 상태에서 1년간 위원회를 운영해 온 정정화 위원장은 지난 6월 26일 4쪽 분량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위원장직을 사퇴해버렸다. 그의 사퇴의 변은 구구절절 반핵시민사회계의 불참과 불성실함을 지적하고 있다. 7월 1일자로 한국과학기술원 김소영 교수가 새로운 위원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❻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왜곡된 부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반핵시민사회계의 불참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이유를 들어서 출범할 때 많은 원자력계의 인사들은 이것이 현 정부의 탈원전정책(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서 원자력사업을 지연시킬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는 재검토위원회의 논의를 가속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위원장은 이러한 간곡한 제언을 무시했다. 예컨대 이전 공론화와 동일한 부분은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포화시기를 예측하는 것도 정확하게 한답시고 시간을 끌필요가 없다. 지난번 공론화에서 잘못된 부분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논의대상이 다르다면 전국공론화와 지역공론화를 굳이 따로 하지 않고 병행해서 추진하고, 월성부지의 맥스터 건설에 대한 지역공론화가 필요하다면 우선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모두 무시됐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재검토를 모두 찬성측과 반대측의 갈등관계로만 보고 양측논의의 결과를 합의 여부로 구분했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의 안전성과 같은 논의는 말로써 안전여부를 합의하기 어렵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결론을 낼 사안이므로 합의여부 방식의 논의에서 배재하자는 당연한 자연과학적 주문도 거절했다. 위원회는 마치 뇌가 없는 사람처럼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으려 하고 갈등관리의 일정한 틀에 논의를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지난 1년간 국민적 공감대가 얼마나 형성되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추진 중인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내적 논리에 따라서 분주히 움직였지만 정작 하라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하지 못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근거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련 정책은 국민적 공감대 안에서 추진한다’라는 의결이다. 그런데 월성 원전의 맥스터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설비일 뿐이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이나 영구처분시설이 아니다. 따라서 공론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재검토 위원회는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역공론화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대화의 장을 펼쳐 놓으면 참여하지 않고 항상 장외에서 시민들을 부추키는 이들을 어떻게 공론화라는 대화의 장에 불러올 것이냐 하는 것이 재공론화의 최우선적 과제였다.

지난해 이맘때 공론화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출범했지만 역시 탈핵시민사회계는 위원으로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정정화 위원장은 그때 사퇴했어야 했다. 1년간 논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놓고 이제와서 사퇴한 것은 당초 이 위원회가 원자력사업을 지연시킬 목적이었다는 의심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❼ 월성 맥스터 추가건설에 관한 지역공론화의 문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한 재검토위원회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해 월성 맥스터 추가건설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월성 원전의 맥스터(MACSTOR)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공론화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현 재검토위원회는 이를 지역공론화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논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갈등 해소보다는 갈등조장을 통해 갈등용역이라는 일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 2016년 4월 맥스터에 대한 운영 허가신청이 있었기 때문에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2010년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허가가 나온 이후 시급히 건설에 착수해야 하는 시점에서 지역공론화를 시작하는 우를 범했다. 전국공론화를 먼저하고 지역공론화를 나중에 한답시고 시간을 지연시킨 것이다. 같은 사안을 공론화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역공론화를 마치고 맥스터를 건설하게 되면 수개월의 공사지연만 발생해도 월성2 · 3 · 4호기를 세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 울산 북구의 경우 월성원전 부지에 비교적 가까이 위치한다. 이에 따라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비상계획구역(30km)에 해당한다. 그러나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법률(발주법)에서는 발전소 주변 5km 이내의 읍면동에 대해 지원하도록 규정돼 있다. 울산 북구는 그 밖이다. 즉 발주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접지들은 어느 분야에나 있다. 경계가 정해지면 그 바로 밖의 지역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범위를 넓히면 또 인접지역은 발생한다. 이러한 인접지의 경우 지역공론화의 대상이 아니라 전국공론화에서 이들의 의견이 제시돼야 하나 재검토위원회가 확실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자 탈핵시민단체가 임의로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부정적 결과가 나왔다. 특정 소수인접지에서 예상되는 상식적 결과다. 물론 이는 주민투표법에 의한 투표의 결과도 아니고 산업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투표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탈핵시민단체가 주관하는 주민투표의 결과가 나오고 나니 사회적 갈등이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울산 북구 주민들에 대한 임의투표 결과를 해당지역의 언론매체가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소수 특정집단의 의견이 마치 전체적 의견인양 호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넷째, 반핵시민사회계는 맥스터와 사용후핵연료를 위험한시설인 양 선동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년 9개월간 심사한 결과 안전성이 확인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가정, 거짓말, 선동적 언어 등을 구사하면서 위험한 설비인양 선전했다. 이에 대해 재검토 위원회도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사실을 확인시켜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서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방치했다.

이들의 전단지에는 어김없이 무모한 가정이 삽입된다. ‘고 준위핵폐기물 20초면 당신을 죽입니다’ ‘고준위폐기물 1g만으로도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바로 앞에서 서 있으면 엄청난 방사선 피폭을 받는’ 등의 문구들이다. 결과는 맞다. 그러나 가정은 틀렸다. 이런 논리라면 포항제철의 용광로 앞에 방호복 없이 서 있어도 위험하고 울산의 화학공장에도 1g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화학물질은 무수히 많다. 그런 가정을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지구가 절반으로 쪼개질만한 지진이 와도 안전하도록 원전을 만들라는 주장과 마찬가지이다.

다섯째, 현안이 되고 있는 월성 맥스터와 관련한 해묵은 논쟁은 ‘관계시설과 관련 시설 논쟁’이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면서 산업부는 중 ·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방폐물유치지역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 ‘사용후핵연료의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은 맥스터가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이 아니냐는 질의를 했고, 산업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련시설’이 아니라 원자로 ‘관계시설’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비슷한 말로 보이지만 실은 다르다.

원자로 관계시설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른 정의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한 운영을 위한 설비다. 또한 방폐물유치지역법에 동 조문을 넣은 이유는 경주 중저준위폐기물처분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를 맥스터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재검토위원회는 경주지역의 해묵은 논쟁에 대해 답을 주기보다는 다수결식 해법을 모색하였다. 이는 사실상 위원회가 갈등관리라는 절차만을 이행했을 뿐 문제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❽ 결론

새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재검토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고 재검토위원회를 운영한 일련의 과정은 사회적 갈등을 새로이 부각시켰다. 관리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고 국민적 공감대 또한 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를 만들어서 풀고 있는 것이다.

반핵시민사회계는 공적논의의 장에는 참여를 거부하고 장외에서 주민을 선동하는 행태에 변함이 없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시민사회계의 강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공서는 국민과 시민사회계를 혼동한다. 반핵시민사회계는 그런 주장을 가진 특정 집단일 뿐이지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또한 공감대 형성의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시민사회계의 목소리를 두려워하는 관공서의 입장이 민간위원회에 그대로 투영되어 오히려 국회라는 민주적 대표를 무시하고 시민사회계라는 임의집단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공포마케팅과 선동이 극렬했다. 이 가운데 지역이기주의가 조장됐다. 국책사업마다 손을 벌리는 형태도 변함이 없었다. 공론화나 재검토와 같은 사회적 논의가 국민을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성숙한 상태를 공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짜놓은 틀 내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전문가 역량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결국 위원장의 사퇴를 초래했다.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한 것 자체가 공론화의 역할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범진 keaj@keaj.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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