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에너지복지의 방향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복지의 방향
  • 진상현 경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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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지금은 기후위기 시대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유럽이 기후변화 대응에 앞서 나가고 일본이 뒤이어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중국마저 2060년까지는 따라가겠다는 국가 목표가 제시되면서 우리나라도 국제적 추세를 거스르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한편으로는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강화 및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이 채택되자 이러한 입법부의 요구에 대통령이 호응했던 측면도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기후위기의 시대라고 해도 반론이 제기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이런 적극적 대응은 공짜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전세계 153개국에서 과학자 1만 1,258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의 긴박함을 경고했다. 기후비상을 선언했던 지식인들의 경고가 크게 기여한 셈이다. 실제로 영국 의회에서는 정치인들이 국가 차원의 기후비상선언에 동참하도록 요구가 이뤄졌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지금은 기후위기 비상선언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며 2020년 현재 28개국의 1,400개 지방자치단체들이 줄지어 선언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6월 5일 ‘환경의 날’을 기념해 226개 지자체가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선포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7월 7일에는 모든 광역자치단체들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으며 지방정부 실천연대까지 발족했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상사태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정책적 의지도 명확하게 표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기후취약계층이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즉, 여름철 폭염에 에어컨이 없어 열사병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과 겨울철 혹한기에 따뜻한 집 한 채가 변변치 않아 추위에 떨고 있는 저소득 가구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바로 현대사회에서 인류 생존의 필수적 재화로 자리 잡은 연료와 전기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에너지 빈곤가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시대에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타깃 집단은 바로 에너지빈곤층이어야 한다.

❷ 복지 딜레마에 빠진 우리나라

국제적 추세 속에서도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 복지확대와 관련해 국가 내부적으로 진퇴양란의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즉, 경제성장과 더불어 심화되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정책을 과연 얼마나 확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갈등으로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에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복지망국론을 주장했을 정도다.

당시 오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이 아니라 가난한 학생만을 대상으로 급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론을 제기했었다. 반면, 교육청에서는 선별적 무상급식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낙인효과로 남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교육의무와도 상충된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처럼 첨예한 주장과 반박 속에서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게 됐다. 결국 시장직을 걸고 발의했던 주민투표가 투표율 33.3%를 충족하지 못해 개표마저 되지 못한 채 무효로 처리되고 말았다.

물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오 시장은 사임했으며 보궐선거로 당선된 후임 시장과 교육감에 의해 무상급식은 전면적으로 확대됐다. 이후 2012년 11월에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진행됐다.

당시 SBS는 ‘착한 성장사회를 위한 리더십’이란 제목의 ‘제10차 미래한국리포트’를 통해 유력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복지확대에 대한 화두를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복지확대와 경제성장, 증세와 감세,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상반된 입장이 대립하는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우리나라가 국정운영의 신뢰를 회복하고 투명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복지예산만 무분별하게 확대한다면 당시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경고했다. 따라서 복지지출의 확대만큼이나 정부 거버넌스의 수준이 함께 개선돼야지 북유럽 같은 모범적 국가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제안이 이뤄졌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국민행복시대’라는 슬로건 하에 무상 보육 및 교육뿐만 아니라 맞춤형 복지의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물론 민주당 후보도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으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도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복지 및 보편 복지 시스템 구축이라는 방향을 설정했다. 이처럼 당시 모든 대선 후보들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동일한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대통령 당선자에 의해 국민행복시대의 맞춤형 복지가 추진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시대를 맞이해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확대되는 에너지복지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❸ 에너지 빈곤 및 복지 정책의 개념 및 역사

국제적으로 에너지 빈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됐던 계기는 1970년대 석유파동이었다. 당시 산유국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생산자 동맹을 결성해 석유라는 자원을 서방세계에 대한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으로 전쟁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세계 석유시장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게 됐다.

이러한 충격은 비단 석유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현대 산업사회의 검은 황금이자 검은 핏줄이라고 불리는 석유 수급의 문제는 경제 산업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다. 미국 자동차 운전자들은 주유소마다 재고가 없다는 안내문에 낙담했으며 우리나라처럼 자국 내에서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 소비국들은 한 방울의 석유라도 아끼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만 했다.

이처럼 석유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는 취약계층은 가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영국에서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때 영국 정부는 지원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연료 빈곤이라는 개념을 ‘거실 온도 섭씨 21도와 침실 온도 18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정의내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우에도 가구소득 중에서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10.9%와 6.5%를 초과할 경우 각각 에너지 부담이 높은 가구와 중간 정도인 가구로 분류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빈곤을 정의 내리려는 작업이 시도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라는 개념 정의를 통해 전체 국민의 6.8~8%에 해당되는 107~108만 가구가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에너지 빈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에너지복지 정책은 국내에서 ‘모든 국민이 소득에 관계없이 기초적인 에너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 혹은 ‘에너지 빈곤
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제도’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❹ 우리나라 에너지복지 정책의 역사 및 개요

에너지복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려면 과거 국내 정책의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에너지복지 정책이 체계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한지 어느 덧 청년기에 접어들 정도로 제법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본격적인 출발점은 2005년이다. 당시 경기 광주에서 여중생이 화재 사고로 사망하게 됐던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 가정은 전기요금 납부가 연체되는 바람에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공급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가 여중생이 잠든 사이에 촛불이 넘어지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공기업인 한국전력에게 ‘요금 몇 달 연체됐다는 이유만으로 생존에 필수적 재화인 전기를 끊어서야 되겠냐’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정부는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담 조직으로 ‘한국에너지재단’을 설립했다. 다만, 설립 당시 재단은 한국전력, 가스공사,지역난방 같은 공기업뿐만 아니라 에너지 관련 민간 기업들
도 함께 출연해 2차 공공기관으로밖에 출범할 수 없었다. 이처럼 공기업이 설립한 2차 공공기관이어서 공식적인 정부출연기관으로는 간주되지 않았다. 이후 십여 년이 훌쩍 지난 2018년에 들어서야 기획재정부가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서 이제는 어엿한 국가 출연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처럼 15년에 걸쳐 에너지 빈곤 관련 공식적인 전담기관이 자리 잡게 되면서 에너지 복지를 개선하기 위한 세부 시책들도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었다.

물론 국내에서 에너지복지 정책 수립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단전 문제도 지금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다. 덕분에 이제는 가난한 저소득 가구가 설사 전기요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전력이 마음대로 전기를 끊지는 못하게 됐다. 즉, 전기요금이 연체되더라도 전류제한공급 장치가 설치됐기 때문에 필수적인 가전제품의 사용은 허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초창기에는 전류가 220W로 제한됨으로써 TV, 냉장고, 형광등 등 필수 가전제품을 사용하기 위한 전기가 최소한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지금은 용량이 확대돼 에어컨을 제외하면 상당한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도시가스를 대상으로도 유사한 정책이 마련됐으며 마찬가지로 요금 체납이 발생하더라도 동절기에 한해서는 공급중단을 유예시켜주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공급을 담당하는 부문의 단전 · 단가스를 유예시켜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혹한기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등유, 연탄, 지역난방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특히 낙후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 가정은 연탄으로 겨울철을 버티는 경우가 많다. 이에 정부는 연탄쿠폰을 지급하고 있으며 민간부문에서도 사랑의 연탄배달 같은 사업을 통해 상당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혹한기나 긴급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상당한 규모의 에너지가 요금할인 방식으로 지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요금 할인이 이뤄지고 있으며 도시가스의 경우에도 수급자 및 차상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도 산업용 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할인이 이뤄지고 있다. 지역난방의 경우에도 기본요금을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저소득 가구에 대한 요금이 할인되고 있다.

심지어 연탄의 경우에는 서민 연료라는 명분으로 저소득 가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가격 보조가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에서 추진됐던 주택단열개선 사업이 국내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WAP(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이라는 명칭으로 낡아서 단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노후 주택의 성능을 개선함으로써 저소득 가구의 거주 여건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비용을 절약해주는 사업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연방정부 산하의 에너지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예산을 마련한 뒤 실제 사업은 지방정부를 통해 집행되는 분권화된 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Warm Front와 Decent Home 등의 사업들이 동일한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영미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주택효율개선사업은 국내에서 환경단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즉 199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환경개발센터에서 독립한 환경정의에서 이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유기농 먹거리를 공급하는 한 살림의 본고장일 뿐만 아니라 의료생협으로 유명한 강원 원주에서집수리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처럼 민간에서 먼저 주목 받았던 주택효율개선 사업은 현재 한국에너지재단에서 본격적으로 전담하고 있으며 한국가스공사의 경우에는 도시가스 수용가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벽체 단열 및 바닥 난방을 교체해주는 ‘온누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끝으로 국내에서는 주택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의 효율을 개선해주는 사업들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전력은 저소득 가구 및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저효율 조명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해주는 사업을 무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역난방공사의 경우에도 취약계층의 월동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에너지시설 개선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너지재단의 경우에도 난방기기 및 가전제품의 효율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❺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등장

앞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에너지복지 정책들이 다양하게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에너지 빈곤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중앙정부가 최근 들어 새로 도입한 제도가 에너지 바우처다. 쉽게 말해서 바우처 혹은 쿠폰이라고 불리는 이용권을 지급함으로써 취약계층이 선호하는 에너지원을 스스로 선택해서 소비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도입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시기는 2010년이다. 당시 정부는 과거 5년 동안 축적된 에너지복지 정책의 체계를 정리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도입하려는 에너지 이용권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에너지복지법(안)’을 상정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기획재정부가 신규 복지사업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전담기관으로 고려됐던 한국에너지재단이 공식적인 공공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사회복지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2012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자 중 한 후보가 에너지 바우처의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즉,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하는 당시 정부의 에너지 부문 대선 공약으로 에너지 바우처 사업이 포함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당선 이후 공약사업의 일환으로 에너지바우처가 본격 추진됐다.

다만 이전에 실패했던 별도 법안을 신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우리 사회에서도 에너지 바우처가 2015년부터 도입됐다. 역시나 한국에너지재단이 아직까지공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유관기관인 한국에너지관리공단(現 한국에너지공단)이 업무를 맡는 것으로 역할 조정이 이뤄졌다. 물론 당시에도 기획재정부는 기초생활수급가구에게 이미 지급된 광열비(光熱費)와 중복된다며 반대했다. 이에 주무부처였던 산업통상자원부는 일 년 내내 지급되는 광열비와 달리 에너지 바우처가 겨울철에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추가 지원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맞섰다.

이후 2018년 발생했던 기상관측 이래 사상 초유의 폭염은 에너지 바우처가 겨울철에 국한되는 바람에 취약계층이 여름철에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해 고생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2019년부터는 하절기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기간이 늘어나고 금액이 증액됐다. 결과적으로 현재 에너지 바우처는 5 · 6 · 10 · 11월을 제외하고는 1년 중 8달 동안 사용 가능한 지원금으로 자리 잡게 됐다.

❻ 가전기기 효율개선 사업과 반등효과

우리 사회에서 지난 15년 동안 도입된 각종 에너지복지 정책들에 대해 살펴봤다. 에너지 비용과 관련된 지원금들은 바우처, 요금할인, 긴급지원 등의 다양한 명목으로 지급되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상황을 개선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 에너지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반면, 가전제품 효율개선 사업의 경우 에너지빈곤의 구조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낮은 효율성의 문제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대응일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 폭염이 극심해지고 겨울철 추위가 혹독해지는 상황에서 주택과 가전제품의 효율이 개선될
경우, 장기적 · 지속적으로 에너지 비용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다만 이처럼 일거양득의 후회 없는 정책으로 여겨지는 효율개선 사업의 경우에도 ‘반등효과(Rebound Effect)’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기존의 저효율 제품을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게 되면 공학적인 측면에서는 효율을 개선한 만큼의 에너지절약 효과를 얻는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가전제품의 효율개선은 결과적으로 에너지 서비스 비용의 하락이라는 경제적 편익을 가져오게 된다. 즉, 과거에는 100원의 비용으로 이용했던 조명 서비스를 이제는 효율개선 덕분에 50원의 비용만으로도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효율개선을 가격의 하락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의 하락은 추가적인 수요와 에너지 소비의 증가를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효율개선 사업을 통해서 기대됐던 공학적 에너지 절감분 가운데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늘어난 에너지 소비를 반등효과라고 한다.

게다가 반등효과는 0%에서 100% 이내로 국한되지 않으며 100%를 초과할 경우에는 아무런 절감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효율개선 이후에 생활패턴의 변화 같은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켜 오히려 에너지 소비량이 과거보다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반등효과가 100%를 초과할 경우에는 에너지 절감효과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별도로 ‘역효과(Backfire Effect)’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정책적인 측면에서 반등효과는 정부가 효율개선을 추진할 때 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서 사업을 설계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에너지복지 정책과 관련해서 이처럼 반등효과를 제대로 고려한 경우와 그렇지 못했던 두 가지 경우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들 흥미로운 사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너지관리공단(現 한국에너지공단)은 2010년 143억 원을 투입해 농촌 지역의 노인정과 같은 사회복지시설들을 대상으로 고효율의 냉장고를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주요 가전제품 가운데 효율개선이 비약적으로 이뤄진 대표적 제품이 바로 냉장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1980년대 냉장고에 비해 최신형 냉장고는 첨단 열교환기와 펌프 시스템을 통해 전력 소비를 비약적으로 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낡은 노후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회복지시설에 1등급 냉장고를 제공할 경우 그만큼의 전력소비 절감이 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추정은 단순한 공학적 기대효과일 뿐이며 냉장고의 용량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반면 현실에서는 예전 구형 냉장고에 비해 최신형 냉장고는 양문형에 용량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즉, 단위 용량의 냉각 성능은 대폭 개선됐지만 냉장 용량 자체가 커지면서 전력소비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한국에너지관리공단은 이러한 반등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최신형 냉장고를 무조건적으로 공급했다. 게다가 제품을 수령하는 복지기관과의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면서 민원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수령 직후에 바로 되팔아서 현금화 시키는 도덕적 해이까지 발생했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에너지재단은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냉장고 효율개선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반등효과까지 고려해 사업을 설계했다. 저소득 가구의 낡은 냉장고를 최신형 냉장고로 교체해주기는 하지만 규격을 키우지 않고 동일한 용량의 냉장고를 공급해 반등효과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다만 최신형 냉장고의 납품을 담당했던 전자업체는 국내에서 양문형의 대용량 냉장고만 생산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중형 냉장고를 납품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너지재단의 냉장고 교체사업은 저소득 가구의 저효율 가전제품을 고효율 제품으로 교환해줌으로써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다.

또한 반등효과를 고려해 추가적인 전력 소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한 덕분에 온실가스 감축효과도 얻을 수 있어서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부가적인 성과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한국에너지관리공단의 냉장고 교체사업 관련 문제가 언론에 의해 지적되면서 국회는 해당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 동일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유사 기관에서 진행된 유사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에너지재단의 냉장고 효율개선 사업도 함께 중단시키고 말았다.

특히 그림 6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냉장고의 반등효과는 83~109%에 달한다고 한다. 즉, 냉장고라는 제품의 특성상 소비자의 대용량 선호로 인해서 100%를 초과하는 역효과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냉장고의 반등효과는 133~161%여서 일반 가구보다도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저소득 가구의 냉장고 효율을 개선해줄 때에는 일반 가구보다도 큰 반등효과를 보다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따라서 유사한 냉장고 효율개선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반등효과를 적절히 고려한 한국에너지재단이 바람직한 성과를 거둔 반면, 공학적 절감효과만을 고려했던 한국에너지관리공단은 부작용만 경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같은 논문에서는 텔레비전의 효율개선 관련 반등효과가 일반 가구와 저소득 가구 모두 0%인 것으로 확인됐다.

즉, 텔레비전의 효율개선사업을 추진했을 때에는 반등효과라는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의 경우에도 가전제품 가운데 효율이 급격히 개선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과거 브라운관 형태의 저효율 텔레비전에 비해 지금의 LCD 및 OLED 형태의 최신형은 전력소비를 급격히 줄일 수 있었다.

텔레비전의 경우에도 과거에 비해 화면의 크기가 대폭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구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화면 크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효율개선의 효과가 컸기 때문에 추정된 반등효과가 모두 0%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의 경우에는 반등효과라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도 효율개선사업을 손쉽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부 지원금으로 텔레비전의 교체까지 해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앞서 냉장고의 경우 저소득 가구의 의식주 가운데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에 생필품으로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 논란이 없는 편이다.

반면 텔레비전의 경우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제품이 아니라 단순한 오락거리일 뿐이기에 정부가 사치품까지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단, 몇몇 저소득 가구의 경우에는 텔레비전이 필수품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실외활동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집안에서 생활하는 경우 텔레비전이 유일한 즐거움이자 사회와의 소통 창구일 수 있다. 이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의 효율개선사업은 반등효과가 전혀 없어서 최신형 제품의 효율개선만큼 에너지 절감효과를 100%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장애인 가구에 대한 텔레비전 효율개선사업은 저소득 가구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는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고 국제적으로는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긍정적 환경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에너지복지 정책의 확대를 검토할 때 장애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효율개선사업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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