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번민 속에 성장하는 기쁜 우리 젊은 날
젊은 날의 초상- 번민 속에 성장하는 기쁜 우리 젊은 날
  • 박경민 기자
  • 승인 2021.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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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어느 해보다 신년 분위기가 나지 않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코로나19 때문에 속칭 ‘잃어버린 1년’이 지나갔고, 백신과 치료제 소식도 간
간히 들려오니 바야흐로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를 새삼 되새길 수 있는 시기인 것도 같다.

이런 시기에 학창시절 즐겨 읽던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주인공 영훈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이른바 청춘의 시기가 배경이 되는 성장소설로 작가 본인의 자전적 내용이 담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81년 1쇄를 찍어낸 책이지만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문장이 유려하고 표현이 살아있다.

책은 ‘하구’ , ‘우리 기쁜 젊은 날’ , ‘그 해 겨울’ 등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주인공 영훈의 고뇌와 체험, 성장을 담고 있다. 첫 이야기 ‘하구’는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강진이란 지역을 배경으로 영훈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영훈은 낮에는 형의 강변 모래 사업을 돕고 밤에 대입준비를 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이어가는데, 공부도 힘들고 몸도 아파서 적잖은 고생을 한다. 책의 첫머리에서 영훈은 남들이 꽃다운 시기라고 부르는 열아홉, 이 때를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라고 회상한다.

지나간 2020년을 돌이켜 보면 주인공 영훈이 경험한 ‘하구’와 닮아있다. 그동안 맑고 좋은 강에서 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하구까지 내려왔는데, 완전히 새로운 환경과 성격의 바다, 코로나19 시대를 만난 격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기존의 방식과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영훈이 강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타산지석 삼아 삶의 지침을 정해갔던 것처럼 우리도 작금을 보내며 다른 나라, 다른 기업, 다른 사람의 사례를 보고 더듬거리며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야기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대학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온 영훈의 이야기다.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보겠노라는 의지를 다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공부도 사랑도 쉽지 않다. 내면의 욕구는 물론 가난과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현실의 벽에서 허덕거린다. 좋아하던 문학회 활동도 접고 급기야 절친 ‘김형’의 죽음 앞에서 영훈은 무너진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허무와 절망에 빠진 영훈은 “한때는 아픔이요 시련이었으되 이제는 다만 애틋함이요 그리움일 뿐인, 아 그 기쁜 우리젊은 날”이라는 말로 이때를 평가한다. 결국 도시와 학교를 떠나 경상북도 어느 산골의 술집에서 허드레 일꾼으로 일하는 영훈을 그린 이야기가 바로 ‘그 해 겨울’이다. 광부가 되고 싶었다가 어부가 되고 싶었다가 결국 정착한곳. 이도저도 아닌 영훈의 방황을 잘 보여준다.

짐짓 스스로의 근육으로 생활한다고 자신을 위안하던 영훈은 문득 ‘제대로 살고 있는 가’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을 방황의 늪으로 밀어 넣었던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라고.

주인공이 어려움을 마주하고 무너졌지만 고뇌와 번민을 반복하다 마지막엔 성장을 이뤄낸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일 것이다. 방황에서도 의미를 찾고 결국 중심을 잡는다.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1년은 분명 2020년과 는 다른 한 해가 될 것이다. 침체되었던 경기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전 세계가 지체된 1년, 그 이상을 극복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게 될 것이다. 고통과 번민을 두려워하고 움츠러들기보다는 오롯이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처럼 패기 있게 시대와 맞닥뜨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책의 마지막 구절을 옮겨본다. “활짝 갠 늦겨울의 오후였다. 열차는 어느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줄기 끝마다 빠알갛게 맺혀 있던 것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이었다.”

우리가 치열하게 견뎌낸 추운 겨울은 곧 지나간다. 머지않아 우리의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줄 봄은 더욱 따뜻하고 화려하게 피어날 테다.

박경민 기자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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