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이제는 작별할 때다
수명 다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이제는 작별할 때다
  • 조성봉 교수
  • 승인 2021.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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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를 보며

들어가며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계획)이 확정됐다. 이번에도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전력계획(안) 발표후 공청회가 열리고 정부에서 그 안이 확정될 때마다 의견이 분분해진다. 환경단체, 노동조합, 사업자, 신재생업계, 전문가들 모두 한마디씩 하고 언론은 이를 다시 확대 재생산한다.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담당 공무원들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차피 욕먹을 것, 빨리 해치워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역사로 만들어야 조용해질 것 같기도 하다.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자. 도대체 전력계획은 왜 만드는 것인가? 전기사업법에 명시된 것처럼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한 것인가? 그 결과 전력 및 에너지산업 그리고 관련 산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만드는가? 아니면 국민들에게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인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시켜 국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국제적인 탄소배출량 감축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만드는 것인가? 전력계획이 의도하는 편익보다 더 큰 불편을 초래한다면 이제 그 수명이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확정된 제9차 전력계획을 살펴보면서 과연 우리가 이모든 소란을 겪으면서 전력계획을 계속 입안해 나가야 하는지 점검해 볼 때가 왔다.

전력계획의 개관과 문제점

제9차 전력계획은 2034년의 최대전력수요를 102.5GW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비한 기준 목표 설비용량을 기준 설비예비율 22%를 반영한 125.1GW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한 전원믹스는 원전과 석탄이 46.3%(2020)에서 25.1%(2034)으로 줄고 동기간에 LNG와 신재생에너지는 각각 32.3% → 30.6%, 15.8% → 40.3%로 변화하여 신재생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연료전환으로 2030년 기준 전환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 1억 9,300만 톤을 달성할 계획이다. 분산형 전원의 발전량 비중도 2020년 약 12%에서 2034년 약 21% 수준으로 크게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비해 전력계통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보강 · 확대하기로 했다.

제9차 전력계획은 기한을 1년 넘겼다. 정부는 2019년에 발표했어야 할 계획을 1년 가까이 지체했다.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탈원전과 탈석탄 등 여러 상황 변화와 사정이 있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어차피 고려할 상황 변화와 요인은 언제나 새롭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15년 계획기간도 사실상 2021년부터 적용되는 셈이므로 14년으로 1년 모자란다.

제9차 전력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망과 정보의 신뢰성이다. 이 문제는 제9차 전력계획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계획에 참여하는 공무원이나 전문가의 책임만도 아니다. 필자가 참여했더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여러 차례 직 · 간접적으로 전력계획에 참여했지만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정부의 공식적인 계획이 갖는 한계와 무게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력계획이 정부의 공식적 계획이다 보니 공공기관의 공식적인 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성장률이다.

제9차 계획에서 전력수요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와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2020∼2024)와 KDI(2025∼2034)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사용했다. 그런데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및 국책연구원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실적치보다 전반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아무래도 민간 및 다른 전문가들의 전망치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전력수요 예측을 담당하는 경제학자가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공식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입력전제로 써야 한다는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정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입력전제로 활용한 결과 과거 전력계획의 전력수요는 실제보다 과다하게 예측 되었을까? 결과는 정반대다. 지금까지의 전력계획은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전력수요를 과소 예측해왔다.

일각에서는 제9차 전력계획에서도 원전건설의 필요성을 축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력수요를 적게 예측했다고 지적한다. 전력수요가 대체로 과소 예측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입력전제나 전력수요 예측기법 때문이 아니다. 필자가 알기로 전력수요 예측은 최고 수준의 계량경제학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전문성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전기요금이다. 전력수요는 사실상 전기요금 수준이 예측 당시로부터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전망할 수밖에 없다. 전망 이후에 나타나는 과도한 요금 규제로 물가를 감안한 실질 전기요금 수준이 하락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과도한 요금규제라는 제도적 요인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전력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발전량 정보의 누락이다. 제9차 계획에도 마찬가지이다. 몇몇 측면에서 발전량은 발전설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발전량 자료는 발전설비의 가동률과 그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다. 연료별 발전량은 또한 연료구입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초 자료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장기 천연가스수급계획은 전력계획이 확정된 이후에야 수립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전력계획에서 연도별 가스발전량이 확정돼야 발전용 LNG 물량이 결정되어 도시가스 LNG 물량에 더해져 총 LNG 도입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료별 발전량이 있어야 탄소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국가 온실가스 배출목표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연료별 발전량 자료이다. 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는 연도별 · 연료별 발전량 전원구성을 발표한다. 사실은 제5차 전력계획까지도 이와 같은 연도별 · 연료별 발전량 전망을 발표했었지만 제6차 전력계획부터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원전과 석탄발전은 기저 부하이기 때문에 발전량의 변화가 크지 않지만 가스발전소의 경우 연도별 발전량과 가동률의 편차와 기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전력계획의 구조적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

전력계획이 전기사업법에 규정된 것은 1989년이다. 원전과 석탄발전설비를 대규모로 건설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전력계획을 통해서 향후 15년간의 발전설비 건설계획을 세우고 또 발전설비 건설허가를 비롯한 여러 인허가를 통해 한꺼번에 의제처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전과 석탄 발전소는 오랜 건설기간을 감안해 미리 전력계획에 반영되어 건설허가를 받고 착공되므로 실제 준공시점의 전력수요와는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건설이 진행될 수 있었다.

반면 가스발전소는 건설기간이 3∼4년으로 짧기 때문에 준공시점의 전력수요를 감안해서 계획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 즉, 원전과 석탄발전소는 전력계획에 반영되어 다른 발전설비의 건설을 불확실하게 하는 선점효과를 갖는 셈이다.

선진국의 경우 미래의 전원별 발전량 구성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대적 비율을 유지하지만 국내의 경우 미래의 전원별 발전량 구성이 매우 불안정하고 들쑥날쑥해 사실상 예측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제6차 계획부터 정부는 아예 전원별 발전량 전망자료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고치기보다 문제를 못 보게 데이터를 삭제한 것이다.

전력계획이 원전과 석탄화력 등 대용량 기저설비 중심으로 입안되었기 때문에 LNG 도입량은 항상 적정 이하로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한국가스공사는 부족한 물량을 현물거래나 단기계약으로 급하게 도입할 수밖에 없어 도입비용이 증가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최근에 개별요금제를 도입한 배경도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천연가스 직수입 물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9차 계획의 특징 중 하나는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기를 점차 LNG 발전설비로 대체해 연료를 전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환계획 역시 발전량에 대한 세밀한 분석 없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석탄발전기와 가스발전기는 부하 패턴과 기동시간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탄소배출량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도 발전량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맺는말

전력계획은 향후 15년의 발전설비 계획이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산업부의 에너지 관련 계획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전력계획이 나와야 발전용 LNG 사용량, 열병합발전소의 열생산량,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알 수 있어서 장기 천연가스수급계획, 집단에너지공급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등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 전력계획의 가장 실용적 목적은 향후 2년 동안 계획한 발전설비 건설을 착공하는 일이다. 2년 후의 발전설비 건설은 어차피 큰 의미가 없다. 2년 후에는 다음 계획이 그 이전의 계획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후임 공무원이 담당하면 될 일이다. 이런 이유로 전력계획은 설비건설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전력계획은 정부 계획이므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전망, 정책, 로드맵 및 목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앞서 공식적인 경제 성장률 수치가 실제보다 높게 전망되는 문제점에서 지적 되었듯이 정부의 공식적인 자료는 정책적 입장과 목표를 중요시하므로 과학적 정밀성이 떨어진다. 현재의 전력계획은 정부 각 부처의 정책적 입장과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전력계획의 정확성을 낮춤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그 신뢰성도
저하시키고 만다.

전력계획의 목적은 법에 제시된 것처럼 전력수급의 안정을 기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부에서 제시한 여러 정책적 목표를 맞추려 하다 보니 전력계획은 많은 희생을 치룬 채 설비건설을 위한 요식절차가 되어 버렸다.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전력계획을 통해 관철하려 할수록 전력계획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

전력계획의 수명은 다했다. 이제 전력계획의 전망에 대한 역할만 남겨두고 자원배분 기능은 삭제해야 할 것이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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