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정전의 원인과 시사점
텍사스 정전의 원인과 시사점
  •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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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 텍사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이례적인 혹한이 몰아 닥쳤고 이로 인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정전의 원인에 대해서도 가스, 재생에너지, 전력망 운영 및 감시체제 등 다양한 해석과 진단이 제시되고 있다. ‘텍사스 전력신뢰도위원회’(ERCOT) 등 정전사태에 대한 평가도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텍사스 정전사태의 현상과 원인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후변화로 인해 변하고 있는 전력수요의 변동 그리고 에너지 전환으로 표방되는 우리의 전원믹스 변화와 전력시스템 운영에 대해 몇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텍사스 정전의 실태
지난 2월 미국 남서부, 중서부 및 북동부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쳤다. 비교적 온화한 기후인 미국 중남부에 겨울 폭풍이 몰아닥치면서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텍사스주는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수십년만의 기록적인 한파로 최저기온이 영하 22도까지 떨어졌고 10cm 이상의 폭설까지 내렸다. 텍사스주 ‘전력신뢰도위원회(ERCOT)’ 관할지역에서 한파와 폭설로 인해 천연가스(LNG) 파이프 라인, 전력망, 연료제약, 시장가격 기능의 마비 등이 초래되어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이러한 대규모 정전으로 인해 텍사스 주에서만 약 400만 명이 추위 속에서 전기 없는 불편을 겪었고, 일부 산업체에는 한달 가까이 전력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전 방지를 위해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전력공급 차단을 시행했지만 심각한 주파수 하락으로 전력망의 운영이 극한상황에 직면했으며 이에 대응해 수차례에 걸친 추가적인 공급차단이 이뤄졌다. 이번 사태로 ERCOT 관할권 내 발전용량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356개 발전설비가 순환정전(Rolling Blackout)이 진행되는 동안 강제로 탈락됐다. 주파수 또한 심각한 영향을 받아 4분 이상 제한치인 59.4Hz 이하를 기록했다. 결국 2월 15일에 시작된 부하차단 규모는 최대 2만MW에 달했고, 전체 시스템 부하를 복구하기 위해 70시간 이상 시행됐다(그림 2 참조).

텍사스 ERCOT 관할지역의 발전설비 용량을 살펴보면 전체용량이 10만 8,017MW에 이른다. 이를 전원별로 보면 가스발전이 5만 1,700MW로 약 47.5%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풍력발전이 3만 1,400MW로 28.8%, 석탄발전이 1만 3,600MW로 12.5%, 태양광이 6,200MW로 5.7%, 그리고 원전이 5,150MW로 4.7%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4만 6,500마일 이상의 송전망과 5,000개소의 변전설비를 통해 텍사스주 2,600만 수용가에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설비구성은 텍사스주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지역 내 부존자원으로 인해 가스발전설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아울러 텍사스 북서부지역의 풍부한 바람과 저렴한 설치비로 인한 풍력시스템도 급증하여 가스발전과 풍력발전이 텍사스 전체전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를 넘어서고 있다.

한편, 이번 정전에서의 전원별 공급지장 규모를 살펴보면 모든 전원에서 발생했다. 이중 설비용량의 많은 가스발전과 풍력발전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가스발전과 풍력은 거의 일주일 가까이 설비의 절반 이상이 멈춰 섰다(그림 4 참조).

 

텍사스 정전의 원인

이번 정전의 원인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특히 풍력발전의 문제를 들고있다. 재생에너지가 혹한이나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할 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파로 인해 공급망이 무너진 천연가스를 비롯한 기존 발전설비를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들은 정전 시 가스, 석탄, 원자력도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공급불능 설비의 용량이 재생에너지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텍사스주의 독립적인 전력망 운영방식과 취약한 송전인프라 문제도 거론된다. 크든 작든 모두 다 이번 정전의 원인에 해당한다. 이를 좀 더 구분하면 크게 공급설비의 부족에 기인하는 측면과 설비 및 시스템 운영의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즉,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일단 수십년 만의 한파로 인해 난방 등 전력수요는 증가한데 반해, 발전설비는 가동이 중단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발전설비 중 천연가스 공급의 차단과 풍력발전기의 정지로 인한 공급력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중단의 원인을 특정 전원으로 한정할 수 있는가이다. 정전기간 중 비록 설비규모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텍사스의 모든 전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를 수요와 공급측면에서 보면 먼저 수요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ERCOT의 수요예측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사태가 통상적인 수요 예측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이를 계기로 전력수요예측에 있어 기후변화에 따른 수요변화를 고려할 수 있는 방법론과 시나리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공급측면에서는 전력과 에너지설비의 관리에 있어서 극한 기후조건에 견딜 수 있는 파이프, 밸브, 터빈 블레이드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정전으로 인해 천연가스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에 따라 결국 가스발전소의 발전이 중단될 수 밖에 없었으며, 뿐만 아니라 정전으로 인해 상수도 및 하수도 마저 작동하지 않게 됐다. 공급설비의 원인을 다시 몇가지로 구분하면, 하나는 연료 기반시설 및 재생에너지(주로 풍력)를 포함해 혹한으로 인해 운영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ERCOT 시장의 구조적 문제다. 즉, ERCOT은 그동안 용량 시장의 도입 없이 ‘에너지 단일시장(Energy Only Market)’만을 운영해왔다.

이번 정전을 통해 용량시장의 필요성과 잠재적인 이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들어 PJM의 용량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용량시장을 통해 예비력이 부족한 비상시에 보다 확실한 안전판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기후조건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백업설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원적정성’(Resource Adequacy)을 담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운영측면에서는 텍사스주의 독특한 전력시장 운영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ERCOT은 미국의 9개 ‘독립시스템운영자’(ISO, Independent System Operators) 중 하나이며 이사회가 운영하는 회원사 기반의 비영리기업으로 텍사스 공공규제위원회(PUCT)의 감독을 받는다(그림 5 참조).

텍사스 주의회는 공공규제법(PURA)에 따라 ERCOT의 모든 활동을 규율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ERCOT은 ERCOT 관할지역에 대하여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인 FERC(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에서 승인한 지역기관인 텍사스 RE(Texas Reliability Entity)와 협력하도록 되어있다.

이번 극심한 한파 동안 ERCOT은 전체시스템의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정해진 ERCOT의 규정, 운영 및 시장제약 안에서 신뢰성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상시스템 측정은 전력망 전체의 정전을 방지하기 위해 부분적인 부하차단을 활용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ERCOT의 운영기준을 PJM과 같은 다른 ISO/RTO(Independent System Operator/Regional
Transmission Organization)와 비교한 결과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파에 따른 지침의 경우 PJM에서는 발전기 작동 요구사항은 상당히 안전, 교육, 인력 및 장비 준비 등이 세부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있다.

한편, 2005년 공포된 ‘에너지정책법’(EPAct 2005)에서는 공급신뢰도에 관한 새로운 조항을 추가해 ‘연방전력법’(FPA)을 통해 FERC의 역할과 관할권을 확장했다. FPA는 신뢰도 표준위반 시 대용량 전력망의 사용자, 소유자 또는 운영자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된 운영자인 ERCOT이 관리하는 송전망은 텍사스주에만 위치하며 미국의 나머지 지역과 동시에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ERCOT 내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송전은 특정 규정에 따라 연방위원회의 관할권을 따르지 않는다. 연방법은 NERC 신뢰성 표준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텍사스 RE’에게 규정 준수 및 집행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텍사스 발전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스발전과 풍력발전이라는 특정 전원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가스는 극한 한파에 대비하기 어려운 배관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되며 풍력은 낮은 기온과 강설로 인한 터빈 블레이드의 정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텍사스 정전의 영향

텍사스와 주변 주에서 2월 중순의 광범위한 전력공급 부족은 긴 정전과 거의 일주일 동안 지속된 높은 전력가격으로 이어졌다. 텍사스의 많은 지역에서 정전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수백만 명이 며칠 동안 춥고 어두움 속에서 공포에 떨었다. 전력공급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이번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요금청구서가 날아왔고 많은 소매업체와 협동조합(co-op)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재정적 피해의 정도가 분명해졌다.

전력시장에서의 도매가격은 최대 규제가격(Ceiling Price)인 $9,000/MWh까지 치솟았고 4일 동안 지속됐다.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하더라도 ERCOT의 에너지 단일시장은 비정상적인 추위에서
발전기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그림 6 참조).

높은 비용지불을 통해 발전으로부터 제공받고자 하는 서비스가 상실되더라도 공급 미이행에 따른 불이익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따라서 ERCOT은 판매부문에서 예측된 수요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획을 필요로 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파급효과도 있었다. 주지사, 규제기관, 텍사스 공공규제위원회(PUCT), 그리고전력망 운영자에 대한 비난과 정전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신뢰성위원회는(ERCOT)는 신뢰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고 텍사스 전력망을 북미계통과 분리해 섬처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논쟁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텍사스 주의 전력시스템 운영방식에 따른 문제와 바람직한 규제체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시사점

텍사스 정전사태는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등 변하고 있는 전력수급 환경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란 문제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전력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인가를 집어보고자 한다.

이번 텍사스 정전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한편에서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따른 전력시스템 운영의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후변동성의 확대하는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대응이라는 관점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텍사스지역의 지역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 전력설비의 기후변동성 확대에 따른 대응 능력이나 고립된 계통망 운영방식도 지적되지만, 이러한 부분은 이미 우리에게는 상수나 다름없어서 특별한 시사점을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먼저 전원구성의 다원화와 예비력 확보다. 전력자원은 기술적 특성이 달라서 기술간 상호보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장시간 일정한 출력에 적합한 전원이 있는 반면, 변동하는 수요에 대응능력이 좋은 전원도 있다. 재생에너지처럼 기상조건에 취약한 전원이 있는 반면, 기상에 영향을 덜 받는 전원이나 ESS와 같은 보완설비도 있다. 공급비용이 높은 전원과 상대적으로 낮은 전원도 있다. 이용률이 높고 대규모 발전이 유리한 전원이 있는 반면 이용률이 낮고 소규모 설치가 유리한 전원도 있다. 결국 여러 상이한 기술이 적절히 혼합된 전원믹스 즉, 상이한 기술적 특성을 갖는 여러 전원으로 구성된 적정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에너지 갈등이나 특정 전원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앞으로 전력시스템에서 요구되는 기술적. 환경적 니즈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전원구성이나 에너지믹스의 변화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
별 경로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공급과 수요의 분산이다. 전원의 지역별 편중, 대규모 융통은 예기치 않은 사고나 천재지변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수요지인 공장, 빌딩, 주거단지로 전원이 분산될수록 공급의 안전성은 높아지게 된다. 과거에는 공급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 집중공급방식이 유효하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변하고 있다. 지금은 공급기술의 발전으로 규모간 기술간 격차도 많이 줄었고, 이러한 격차는 앞으로 더욱 좁아질 것이다.  분산전원을 확대하고 자가발전을 늘려나감으로써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아울러 산업생태계도 새롭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급의 유연성과 견고성을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에너지를 전력으로 사용하는 전력화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냉방은 물론, 취사, 건조, 난방 등 과거 일차에너지가 담당하던 영역이 급격히 전기로 바뀌고 있다. 이로 인해 에너지원 간 융합과 변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남는 시간에는 전기나 열에너지로 바꾸어 저장하고 부족할때는 저장된 에너지를 전기로 바꿀수 있을 것이다. 설비도 여러 에너지원의 혼소나 교체가 가능한 유연설비로 바뀌고 있다.

이와 함께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Contingency)과 예비자원을 준비해야 한다. 비상시를 대비해 투입가능한 예비자원에 대해서는 용량보상이 필요하다. 에너지를 오직 경제성만을 따지거나 환경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공급안정과 신뢰성, 경제성, 환경성, 지역적 수용성과 같은 여러 가치를 같이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다양한 자원의 조합과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창호 가천대학교 교수(경제학 박사)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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