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탈석탄과 공정한 전환
우리나라의 탈석탄과 공정한 전환
  • 한빛나라
  • 승인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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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월 ‘사람 중심의 청정에너지전환을 위한 글로벌 위원회(The Global Commission on People-Centred Clean Energy Transition)’를 발족하고, 지난 3월에는 IEA-COP26 넷제로 정상회담에서 ‘사람 중심의 전환’을 넷제로 이행을 위한 7가지 원칙 중 하나로 채택했다. ‘사람 중심의 전환’은 에너지전환이 개인과 커뮤니티에 가져오는 사회 · 환경 · 경제적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포용적 전환의 실현을 강조한다. 사람 중심의 전환, 정의로운 전환, 공정한 전환 등 그 표현은 다양하지만 내용은 같다.

2018년 폴란드에서 개최된 제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연대와 공정한 전환에 관한 실레지아 선언’을 채택하면서 공정한 전환은 글로벌 기후논의의 주류 담론으로 발전했다.

유럽연합은 2019년 말 ‘공정한 전환 메커니즘’을 포함한 유럽 그린딜을 발표했고 미국은 청정에너지혁명과 환경정의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탄광 및 석탄발전소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공정한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대통령이 충남 보령화력발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누구도 일자리를 잃지 않고 새로운 시작에 함께할 수 있는 공정한 전환’을 선언한 데 이어,
국회는 그린뉴딜을 통한 공정한 전환을 위해 에너지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공정한 전환은 더 이상 노조 중심의 계파적 이익을 위한 주장이 아니며, 바야흐로 정치계 · 산업계 · 환경계 · 여성계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이 지지하는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의미에서 공정한 전환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순조로운 전환의 성공을 도모하는 가장 호소력 있는 전략이다. 얼핏 생각할 때 탈석탄을 위해 뛰어넘어야 할 가장 높은 허들이 석탄발전업계 및 발전소 노동자의 비협조일 것 같지만, 사실 탈석탄의 가장 큰 도전은 탈석탄의 스케줄에 있다.

먼 훗날 어느 시점에 탈석탄과 탄소중립을 하겠다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온실가스 배출 없는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석탄발전산업이 자연 도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석탄발전업계와 노동자, 그리고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사회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른 경제적 대안을 찾을 것이고 탈석탄도 별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빠른 탈석탄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도 상승폭 1.5℃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해 탈석탄의 시기를 앞당기려다 보니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의 탈석탄 정책은 기후위기 심각성 확산에 따른 국내외 사회 · 환경적 요구를 고려한 정책적 결정이므로 탈석탄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과 커뮤니티가 있다면 마땅히 이들을 보호할 공적 의무가 발생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공정한 전환은 탈석탄이 충분히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후사회연구소는 지난해 ‘공정한 전환을 위한 한국적 맥락 탐색’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며 당진시 및 보령시의 석탄 발전업계 관계자, 환경시민단체 및 지방정부 관계자 등을 두루 만나 공정한 전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바 있다. 이해관계자 면담에서도 탈석탄의 스케줄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빠른 탈석탄은 공정한 전환의 실현에서도 이중의 도전이다.

우선은 탈석탄의 스케줄을 앞당길수록 그 과정에서 준비가 덜 된 이해당사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규모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빨라진 탈석탄 스케줄은 공정한 전환이 가장 강조하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한한다. 즉, 탈석탄을 서두를수록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정책적 지원 범위가 커지고 이에 적절한 지원 수준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작 대화를 위한 시간적 여유는 줄어드는 딜레마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도전적 상황에서 우리는 공정한 전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리의 공정한 전환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며 어떤 정책을 담아야 할까? 그 답변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한 전환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정한 전환이란?

공정한 전환의 개념은 1990년대 초 미국 노동계에서 처음 등장했다. 1980년대 중반 뉴저지의 시바-게이지(Ciba-Geigy) 화학공장이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와 정부로부터 폐쇄를 요구받자 당시 석유화학원자력노조 조합장인 토니 마조키(Tony Mazzocchi)는 환경정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을 보호하라며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를 제안했다.

슈퍼펀드는 유해 폐기물 처리장의 정화 및 적정 관리에 필요한 기금의 명칭을 본뜬 것으로 마조키는 폐기물 처리장이 문을 닫으면 오염물질 정화를 위해 기금을 제공하듯이 공장이 문을 닫을 때는 노동자 지원을 위한 기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기금의 제안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후 명칭의 어감이 부정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슈퍼펀드는 공정한 전환으로 순화됐다. 이처럼 공정한 전환은 환경정책으로 실직의 위험에 처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으로 노동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공정한 전환은 곧 북미의 지역적 경계를 벗어나 국제적 차원의 주요 노동계 담론으로 성장했으며 2000년대 이후 기후 ·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고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노동계뿐 아니라 환경계, 산업계, 여성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부문에 적극적으로 수용됐다.

UN 산하기관, 각국 정부 기관, 사회단체와 전문가 그룹, 원주민 단체, 페미니스트 그룹 등 다양한 기관과 그룹들이 공정한 전환의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사용 주체들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정한 전환 담론은 더욱 풍부해졌다. 가령,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문화적 다양성 존중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된 기후정의연합(Climate Justice Alliance)은 사회 · 인종 · 경제 · 환경정의의 실현을 위한 전략으로 공정한 전환 프레임워크를 채택했고 국제비영리단체인 여성 환경 · 개발기구(WEDO)는 저탄소 전환의 과정이 여성의
권익신장과 성평등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며 ‘젠더적 공정한 전환(Gender Just Transition)’의 개념을 제안했다.

이렇게 공정한 전환은 지역별 · 부문별 차이를 뛰어넘어 공정성, 민주성, 다양성, 평등성 등 광범위한 사회 가치들을 포괄하며 그 의미가 확장됐다. 공정한 전환은 하나의 단일한 개념이 아니며, 공정한 전환의 틀 안에서 다양한 가치가 추구되기 때문에 어디에 방점을 두고 공정한 전환을 실현할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식이 가능하다.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다양한 접근방식

지난해 충남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 관계자 면담을 수행하며 공정한 전환의 핵심속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해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것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피해의 최소화’였다.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 발전소 지역에서 자영업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사회 주민들이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공정한 전환의 핵심가치가 피해의 최소화라는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은 초기 공정한 전환 담론이 채택했던 피해자 중심주의를 따르는 것으로 공정한 전환을 협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정한 전환의 핵심이 무엇인가는 누가 어떤 맥락에서 공정한 전환의 개념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분석돼 나타난다. 해외에서 공정한 전환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이해관계자 그룹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먼저 캐나다중앙노동조합센터(CLC), 국제노동조합연합(ITUC),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 등 노동단체들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를 위한 사회 보호, 노동자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강조하며 노동자 보호와 참여를 공정한 전환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국제기구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과 파리협정의 이행, 2030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저탄소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과 지속가능성의 제고, 녹색 일자리 창출과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등 경제 · 사회 · 환경을 모두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연구 기관으로서 국제적 환경 싱크탱크인 환경보호주의3세대(E3G)는 공정한 전환이 피해를 입게 되는 노동자와 지역 사회를 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지구 온도 상승 저지에 기여할 수 있는 빠른 속도와 수준을 강조하고 있으며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인 지속개발국제관계연구소(IDDRI)는 지역의 상황을 고려한 지역 중심의 전환 계획 수립을 공정한 전환의 주요 속성으로 바라본다.
공정한 전환 개념을 수용한 대표적인 진보 환경시민단체인 기후정의연합(CJA)은 공정한 전환을 인종과 성, 계층과 출신 지역에 따른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글로벌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FOE)은 공정한 전환 실현을 위한 급진적인 사회정치적 시스템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렇게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해석적 스펙트럼은 매우 넓게 나타난다.

UN사회개발연구소(UNRISD)는 위에서 살펴본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다양한 접근방식을 새로운 비전 제시 가능성과 포용성 정도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준수하면서 기업과 시장의 자발적 변화에 초점을 둔 ‘현상유지적 접근’과 현행 경제 시스템 안에서 공정성과 정의를 실현하려는 ‘관리개혁적 접근’ 거버넌스 구조의 수정과 권력의 재분배를 추구하는 ‘구조개혁적 접근’ 지배구조 규칙의 수정과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변혁적 접근’이 그것이다. 이중 어떤 접근방식을 취할 것인가는 국가와 지역의 특성과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결정할 일이다.

우리는 어떤 공정한 전환을 추구할 것인가?

2038년까지 탈석탄을 선언한 독일은 자국 내 석탄산업 노동인구를 약 4만 명으로 추산한다. 탄광 노동자가 약 2만 명, 발전소 운영인력이 약 2만 명이다. 석탄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발전소와 탄광지역이 지리적으로 밀접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은 탄광을 폐쇄하기에 앞서 먼저 해당 지역의 회복을 위한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지난해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을 제정해 석탄지역 주민의 생활개선과 지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내용에는 지역의 문화유산 개발과 관리, 바이오경제 시범지구 구축, 생물다양성 보존 과학관찰센터 설치, 디지털에너지센터 설립, 마이크로 센서 연구 캠퍼스 조성, 인공지능기술 연구소 설립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규모 있는 계획들이 포함돼 있다. 이는 독일이 석탄지역의 피해 보상이라는 소극적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석탄지역을 국가경제를 견인할 차세대 혁신산업의 근거지로 육성해 피해지역을 전환의 주체이자 수혜자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개혁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탈석탄에 따른 공정한 전환정책의 수혜자 범위를 석탄산업계와 노동자에서 지역사회 전체로 확대함으로써 공정한 전환의 포커스를 보상과 구제 중심의 사회보호에서 미래먹거리 산업 육성으로 전환시키며 독일 사회에 탈석탄이 새로운 기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렇다면 한국은 탈석탄과 공정한 전환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공정한 전환의 정책대상자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 것이며 어느 수준까지 지원할 것인가? 또한, 공정한 전환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며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그 답은 우리가 쥐고 있다. 독일이 공정한 전환에 성공한다고 그 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공정한 전환 정책의 범위와 수준을 찾아야 한다.

필자의 연구소는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공정한 전환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절반은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고(공정하다 13.1% vs 공정하지 않다 55.5%), 과반수 이상은 경제발전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포용적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결과가 중요하다 56.6% vs 과정이 중요하다 11.6%).

공정성과 포용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과 요구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났는데 국민 대다수(83.7%)가 에너지전
환에 성공하기 위해서 공정한 전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국민들은 공정한 전환 실현에 있어서 ‘공평한 기회 보장’과 ‘소통과 참여’를 중요시했으며, 구체적 정책 방안에 대해서는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 ‘실직자 취 · 창업지원’ ,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가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일반 국민과 충남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의 인식을 비교해볼 때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탈석탄의 스케줄과 탈석탄의 영향, 정책수혜자 범위, 재원 마련방안과 관련돼있다. 먼저 탈석탄의 스케줄에 대해서는 국민의 절반(50.1%)이 2040년까지 폐지하는 방안에 찬성했는데 그중 절반은 2030년까지 앞당겨 폐지하는데 찬성했다.

환경시민단체도 2030~2040년 폐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반면 발전사 및 발전 노조는 대체에너지원과 관련한 기술적 · 비용적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능개선을 통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한다는 전제로 설계수명까지 사용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하며, 전기요금 인상이 필수적인 만큼 국민들이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탈석탄의 영향과 관련해서도 국민과 이해당사자 간의 전망이 엇갈렸는데 발전사 및 노조, 지방정부 관계자는 발전소 및 하청업체 근로자와 지역 자영업자들의 실업 문제를 우려했으나 일반 국민은 일자리에 대한 탈석탄의 영향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다. 상당수의 국민(41.4%)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지역의 일자리 손실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역의 대량실업을 우려하는 국민(39.9%)과 거의 동일한 비율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석탄화력발전 폐지가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해 소비자 부담을 가중하고 충분한 예비전력 확보에 실패해 전력공급에 문제를 발생시킬 것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탈석탄이 에너지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지역의 변화와 혁신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부정적 인식을 훨씬 앞섰다(부정적 영향 우려33.2% vs 긍정적 영향 기대 64.9%).

또한 정책수혜자 범위에 있어 일반 국민의 상당수(41.7%)는 발전사와 발전사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전력요금 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취약계층 · 제조업 기반 수출 기업까지 모두 정책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이해관계자 그룹이 대체로 발전소 노동자들과 지역주민을 정책대상자로 고려하는 것과 비교할 때 크게 차이가 있었다.

공정한 전환을 위한 재원 마련과 관련해서는 일반 국민과 이해당사자 그룹이 제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국민은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 예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더 필요하다면 한국전력, 발전사 등 해당 업계 예산과 해당지역 지자체 예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발전사 및 발전 노조는 전 국민이 에너지전환의 혜택을 보는 만큼 전력생산단가 인상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지방정부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발전사의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며 지역주민이 부담해야하는 요금인상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한편, 환경시민단체는 기존의 정책자금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별도의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재원에 대한 부담이 에너지전환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데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탈석탄의 스케줄과 영향, 정책수혜자의 범위, 재원마련 방안과 관련해서 일반 국민과 이해관계자 그룹 간에는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이런 차이를 좁히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정한 전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분명 큰 도전이다. 그러나 국민과 이해관계자 모두가 만장일치로 강조하는 것이 ‘소통과 참여’인 것을 보면 결코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공정한 전환과 관련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2038년까지 자국의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의하고 탈석탄 로드맵을 수립했다. 독일의 석탄발전소는 대부분 민영기업이다. 민영 발전사가 사업을 포기하고 탈석탄에 동참하도록 하기까지는 분명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석탄발전사들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 부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시장형 공기업이다. 정부가 탈석탄을 추진하기에 훨씬 더 유리한 구조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석탄발전소 폐쇄가 일방적으로 추진 될 위험이 크다. 발전소 관계자들과 지자체 담당자들은 이미 정부와의 소통 부재를 호소하고 있다. 공정한 전환은 다양한 지역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지역의 목소리를 전환계획에 반영하고 추진할 때 성공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대화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탄소중립과 탈석탄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려면 전략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가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창출하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게하려면 대화의 체계를 구축하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직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제도적 메커니즘을 마련하지 못했다.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뿐 아니라, 지역정부 차원에서도 공정한 전환을 위해 다양한 층위의 대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화의 스케줄을 설정하고 대화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얼마 전 덴마크 칼룬드보그 생태산업단지센터 사업개발매니저의 발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칼룬드보그의 성공요인을 묻는 질문에 발제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뜻밖에도 모든 액션이 친환경적이고 그린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고 답변했다. 입주기업들의 멋진 파트너십 내지는 경제적 공생 모델 구축 등의 대답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발제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하자는 목표가 그 자체로 성공을 이끌어낸 방법이자 수단이었던 것이다.

공정한 전환에 대한 요구는 탈석탄의 걸림돌일까? 앞서 칼룬드보그 일화에 비춰 보자면 공정한 전환은 탈석탄의 성공요인이다. 그 이유는 에너지전환은 전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전환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남겨진 사람들이 많다면 에너지전환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지역사회를 배제하는 성급하고 일방적인 전환은 21세기가 지향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의 표현을 빌려 ‘어떤 지역, 어떤 커뮤니티, 어떤 노동자와 시민도 소외되지 않는’ 공정한 전환을 실현하는 것은 에너지전환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늦추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순조로운 전환을 돕는 성공요인일 것이다.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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