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달성 위한 과학적 판단과 합리적 접근 필요”
“탄소중립 달성 위한 과학적 판단과 합리적 접근 필요”
  • 배성수 기자
  • 승인 20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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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재주 한국원자력학회장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발표한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인프라 건설 · 투자 계획에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원전 협력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는 ‘혁신형 SMR(소형모듈원자로) 국회포럼’이 출범하기도 했다.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국내 원자력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원자력 바로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하재주 한국원자력학회 제33대 회장<사진>을 만나 원자력계가 합리적으로 나아갈 방향과 세계 SMR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에너지전환 시대에서 한국원자력학회의 역할 및 주요현안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에너지는 지구적 난제인 탄소중립을 달성하면서도 전력망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며 경제적이면서 풍부해야 합니다. 에너지전환의 비전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저탄소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국제적으로도 넓게 형성 됐습니다.

특히 전력망은 섬이나 다름없고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과 산업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기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탈원전 정책 철회는 가장 중요한 현안이며 우리 학회는 이를 합리적으로 바로 잡는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해 9월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분야는 무엇입니까

‘에너지정책’과 ‘원자력 바로 알리기’입니다. 우리 학회는 에너지믹스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50년까지 어떤 에너지믹스가 바람직한지를 검토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우리가 추구하는 정책이지만 규모와 속도와 방법이 잘못되면 간헐성 때문에 전력망의 안정성을 해치고 우리가 수용하기 벅찬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물론 엄청난 부지와 주민 수용성,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의 방대한 폐기물 문제들도 복병입니다.

원자력과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선동은 원자력의 활용을 저해하는 큰 숙제입니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둔 안전과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과 원자력의 편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높이기 위해 원자력 바로 알리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학회의 이슈 및 소통위원회에서는 원자력이슈에 대한 웨비나(인터넷의 웹상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학생과 일반인에 대한 정기적인 소통과 교육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소견과 원자력계가 합리적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동안 탈원전 정책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관련 기업들은 고사위기를 맞았습니다. 탈원전 정책 4년이 지난 지금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전수출을 협력하기로 한 것, 비록 원전 밀집도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전제로 했지만 추가건설을 고려할 수 있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이야기,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성역이던 원자력을 얘기한 것, 국회에서 SMR포럼이 발족되어 논의를 하는 것 등 이제는 탈원전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분위기입니다.

원자력계는 올바른 에너지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건설적인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야하고 원자력으로 신재생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진정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술개발에 힘써 탄소중립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원자력의 이용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과 인력양성 등 원전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지원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을 부어 억지로 생태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하면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일감이 없으면 기술 및 인력 등 생태계 유지를 위한 어떠한 방책도 작동하지 못합니다.

SMR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상용화해 실제 건설까지는 10년 정도는 걸릴 것이고 APR1400을 해외에서 순조롭게 수주를 한다 해도 실제 건설하고 기기 제작에 착수할 때까지 빨라도 5~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도 그때까지 공장을 세워두고 인력을 유지하면서 버틸 기업은 없습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APR1400의 해외수주를 적극 지원하고 SMR과 같은 미래기술에 투자하면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정책을 충족시킬 수단으로 SMR(소형모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 연관성과 함께 SMR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존의 대형원전은 큰 원자로 하나에 증기발생기와 펌프 등이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SMR은 일반적으로 용량이 작은 여러 개의 원자로로 구성합니다. 각 원자로는 증가발생기와 같은 기기가 원자로 안에 들어있어 파이프가 없는 일체형이며 소형이므로 시스템과 안전성을 구현하기가 용이한 이점이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수소경제에서 대형이냐 SMR이냐 하는 원자로의 크기와 종류는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어떤 원전이 원전시장을 확대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원자로는 꾸준히 대형화해 경제성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대형화하면서 높은 초기 투자비와 긴 건설공기로 프로젝트 리스크 또한 커졌습니다. 또 대형이 운전되려면 우리나라와 같이 큰 전력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나라는 제한적이어서 원전시장이 크게 늘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전력망이 작은 나라라도 낮은 초기투자비로 빨리 건설하고 운전도 쉽게 할 수 있는 소형원전이 있다면 시장은 매우 커질 것입니다. 또한 작은 용량의 원자로는 혁신적인 안전성 개념을 적용하기가 용이해 주민수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SMR을 탄소중립이라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형원전이 전력생산에 특화됐다면 SMR은 상당히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대형원전도 300도의 증기를 좀 더 가열해 전기분해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고 이 방법도 화석연료를 개질해 생산하는 그레이수소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초고온의 금속원자로나 가스원자로같은 새로운 개념의 SMR은 그린수소생산에 특화할 수 있어 수소경제를 앞당기는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SMR의 경제성과 안전성 등 일부 단점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해결방법 및 대응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SMR은 원자로가 작기 때문에 훨씬 심플하고 혁신적인 안전성을 구현하기가 용이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문제는 경제성입니다. 20kg짜리 쌀 한 포대가 5kg 쌀 네 포대보다 싸듯 이같이 전력을 생산한다면 SMR이 대형보다 비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형원자로 완제품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 설치만 하는 Plug-in 개념으로 건설해 건설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고유안전성과 AI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해 무인운전을 하는 방법 등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SMR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추진전략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시장성이 높은 경쟁력 있는 노형을 개발해 그동안 축적된 원전 공급망과 건설경험을 활용하면 대형원전의 성공처럼 SMR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원전의 성공은 외국 기술을 습득해 발전시킨 것이라 원천기술이 취약한 면이 있었고 이것이 수출에 늘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SMR을 우리의 원천기술로 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주변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기적인 상용화 전략, 중기적인 설계검증전략, 장기적인 신개념개발전략 등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개념을 경쟁하게 하고 선택된 개념은 집중 투자하여 개발기간을 단축해야 합니다. 동시에 시장선점을 위한 비즈니스 활동도 병행해야 합니다. 개발기간이 길고 비용이 높으면 시장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빨리 그리고 경제적이면서 안정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규제기관의 인허가는 가장 심각한 병목입니다. 인허가 기술이 같이 가지 않으면 시장에서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규제기관은 개발자와 긴밀히 소통해 예상되는 규제기술수요를 빨리 파악하여 미리 준비해 주어야 합니다.

원자력연구원 재직 당시 소형원자로 SMART에 깊이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SMART를 개량해 혁신형 SMR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SMART에 대한 설명과 혁신형 SMR 개발 방향성에 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SMART는 2012년에 세계 최초로 인허가를 받은 100MWe 용량의 일체형원자로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을 추진했습니다.

혁신성을 높이면 기술검증과 인허가가 어려워 상용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 SMART는 개발이 가장 빨라 시장선점을 목표로 혁신성과 검증된 기술을 적절히 조화해 인허가 문제가 없게 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국내에서 실증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해외에 수출하면서 최초로 실증하는 접근이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기를 건설하고 인력양성을 하자는 MOU를 2013년에 어렵게 성사시켰습니다.

그동안 쉽지 않은 여건의 변화 때문에 아직 건설을 시작하지 못했고 그사이 NuScale 등 다른 나라의 노형이 빠르게 추격해 버려 SMART의 시장선점은 실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다시 추격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쇼트트랙 우승 전략처럼 앞선 경쟁노형을 면밀히 분석해 이를 뛰어 넘는 원자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늘 외국에서 배워서 싸게 비슷한 것을 개발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끝으로 원자력계 관계자와 전기저널 구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자력은 경직성에너지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70%를 원자력으로 충당하는 프랑스는 원자력으로 부하추종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자력이 기저부하를 담당하여 부하추종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돼 원자력이 부하추종을 해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연히 할 수 있으며, SMR은 부하추종을 보다 더 원활히 할 수 있습니다. 신재생확대를 위해 원자력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신재생에너지의 백업으로 배터리를 사용하고 과잉생산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 등이 제안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탄소제로인 원자력으로 보완하는 것이 탄소중립에 매우 중요한 전략입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저탄소청정에너지는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원자력계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반대하지 않으며 세 가지 저탄소청정에너지가 균형 있는 믹스를 이루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에너지빈국에서 에너지부국으로 가는 길은 자원이 아니라 기술이므로 우리나라도 에너지부국이 될 수 있습니다. 선입견과 이념을 버리고 모든 에너지 옵션을 펼쳐 놓고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판단하는 합리적인 접근을 하길 기대합니다.

배성수 기자 bss@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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