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전원이 가져올 새로운 ‘그리드’
분산전원이 가져올 새로운 ‘그리드’
  • 박경민 기자
  • 승인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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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요즘 전기, 에너지분야 종사자들이나 전력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GRID(그리드)’라는 책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리드는 전력망, 전력인프라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 집의 전자기기부터 콘센트, 전선과 변압기, 전주와 배전선, 변전소, 송전선로, 송전탑, 발전소 등이 모두 그리드를 구성하는 요소다. 그레천 바크가 쓴 책의 내용은 미국 전력망의 변천과정, 문제점, 향후 대안 제시 및 유추 등이 골자다.

 

예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전력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할 그리드에 관한 책이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 것은 ‘기후위기시대, 제2의 인프라혁명이 온다’는 이 책의 부제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여전한 요즘, 우리나라 전력에너지산업의 상황을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국 그리드의 역사와 덧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후위기시대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전기화에 대응하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점 등이 인기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기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래서 매번 전력거래소에서 수요예측을 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가격이 저렴한 발전기부터 가동해 필요한만큼의 전기를 생산하는 전력시장이 운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까지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해 필요한 곳에 부족하지 않게, 끊김없이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와 공기업 주도로 지가가 저렴하고 원료수입 및 조달, 냉각수 보급 등이 용이한 바닷가에 주로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인근 산업단지와 주택은 물론 수도권까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발전설비와 원거리 송전방식은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과 발전소의 입지가 일치하지 않는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개인 재산권, 환경권 등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지역주민의 수용성은 점점 약해지고 발전소, 송전선로, 송전탑은 혐오시설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기후위기는 전력산업에 더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온실가스가 증가해 지구온도가 과도하게 급격히 상승하면서 촉발됐다. 그 대안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사용이 제시됐다. 기존 발전소처럼 대규모로 건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요지 인근에 설치해 송전선로 없이 인근 지역에서 바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 직접 설치해 전기를 생산도 하고 소비도 하는 프로슈머(Prosumer)의 형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 등 기존 전력시스템과는 180도 다른 요소가 새롭게 편입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이 비쌌던 재생에너지는 기술발전, 생산규모 확대, 유지관리 효율성 제고 등으로 빠르게 기존 발전설비의 경제성을 따라잡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 계획,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 등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기존 화석연료 기저발전과는 다른 변동성, 분산성, 간헐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 그리드 전반의 재구조화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설비를 가상의 공간에서 모으고 연결해 계통에 반영하는 VPP(가상발전소), 전기차가 움직이는 전기저장장치의 역할을 수행하는 V2G 등 그리드에 연결되는 요소도 다양화되고 전기가 오고가는 방향도 상호작용이 필요해진다.

 

요소 요소가 긴밀히 연결되는 그리드는 디지털 기술로 완성된다. 변동성이 큰 전기 생산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이를 긴밀하게 조율하는 IT 기술이 필요하다. 실시간으로 전력량과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스템을 통해 대규모 광역정전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이상기후,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긴급상황에서 전력인프라의 대응력과 회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현재 100여개 남짓 발전소와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등이 운영하는 일방향 그리드와 전력시장의 작동 방식 등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이 달라지게 된다.

 

탄소중립시대 전력산업의 화두 탈탄소화(Decarbonation),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라는 3D로 일컬어진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화로 전력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 자명한 상황,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전원 확산이 필요하지만 그에 걸맞는 그리드는 아직 갖춰져 있지 못하다. 계통이 부족해 전기를 만든 태양광, 풍력발전소가 전기를 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아직 계통과 연계되지 못한 발전소도 많다. 기후위기시대, 그리드의 변화는 숙명이다. 이 급격한 변화의 커다란 물결에 대응해야 한다.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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