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제 분석과 대응 방안
EU 탄소국경조정제 분석과 대응 방안
  • 박호정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승인 2021.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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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조정제의 배경

EU(유럽연합)는 7월 14일 탄소국경조정제, 이른 바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초안을 발표했다. CBAM의 기본 취지는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글로벌 차원의 동참을 촉구하는 동시에 EU 역내 산업의 탄소누출을 막는 데 있다. 이번 발표가 있기 이전에 이미 EU의회는 ‘A WTO-compatible EU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에서 CBAM이 도입될 것임을 밝힌 바 있으며 그 일환으로 초안이 공개됐다. CBAM 제도를 설계할 때에 EU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와 고민 과정을 거쳤으며, 기존의 EU 기능에 부합하도록 설계하고자 노력했다. 유럽연합운영 조약인 TFEU에 따르면 회원국은 ‘환경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적 내지 세계적 환경문제, 특히 기후변화를 다루기 위한 국제적 수준의 정책수단을 강구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EU배출권거래제 만으로는 여기서 말하는 국제적인 정책수단으로서 기능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본질적으로 글로벌 성격을 갖는 온실가스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CBAM이 출발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CBAM의 두 번째 목표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EU 배출권거래제인 EU ETS가 시행되는 역내 기업은 고탄소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반면, 탄소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재화는 저탄소 비용이기 때문에 그동안 EU 기업은 탄소비용 불평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EU 자체 분석에 의하면 배출권 가격이 75유로에 달하면 EU 제조업의 26%가 탄소누출 될 수 있는 것으로 전망하는데, 올해 배출권 가격이 이미 60유로 수준이면 상당 부분 탄소누출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탄소비용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CBAM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럼 CBAM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세부 내용은 각 회원국의 재량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EU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EU는 결론적으로 후자의 방법을 취했다. 각 회원국마다 상이한 CBAM 비용을 부과하게 되면 역내에서 또 다른 탄소비용 차이로 무역이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CBAM이 시행되면 EU는 배출권거래제 즉 EU ETS에서 배출권의 무상할당 규모 역시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방침이다.

탄소누출을 억제하기 위해 CBAM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이와 동일한 목적을 지닌 정책 수단으로서 무상할당 제도를 병행하게 되면 EU 역내 기업은 이중적인 무역편익을 얻을 수 있어 WTO 제소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EU ETS에서 무상할당 비중은 감소하고 유상할당 비중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 CBAM이 시행되면 연간 약 120억 달러의 재원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이 재원을 활용해 Fit for 55, 즉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온실가스 감축을 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투자 등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표 1은 지난 7월에 발표한 CBAM의 전체적인 조항별 구조와 주요 내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래에서는 이를 소개한 후 우리나라의 대응 방향을 간략히 제시하고자 한다.

 

 

CBAM 제도 소개

가. 대상 품목
CBAM의 대상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그리고 전기로 선정됐다. 제도 초기에 주요 무역상대국으로부터의 저항과 무역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산정이 비교적 용이한 단순재(Simple Goods)이기 때문에 이들 품목이 선정됐다. 규제대상 범위는 CBAM의 부속서I에 명시되어 있지만 향후 부속서에서 타 품목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 있다. 단순소재 제품뿐만 아니라 비교적 탄소배출량 산정이 까다로운 복합재(Complex Goods)도 포함될 수 있다. 초안에는 석유화학제품, 유리 및 제지, 유기 화학물질, 정유제품, 스테인레스 제품 등은 배출량 산정의 어려움을 고려해 포함하지 않았으나,  향후 관련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됨에 따라 여건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나. CBAM 책임기관의 구성
EU 법안은 CBAM 책임기관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책임기관(Competent Authority)은 각 회원국에서 설립하거나, 또는 EU에서 중앙 책임기관 형태로도 운영할 수 있다. CBAM 책임기관은 CBAM 인증서의 보고 접수, 배출량 모니터링 및 인증보고 접수, 인증서 가격의 고지 등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아직 회원국 개별적으로 책임기관을 운영할지 중앙 책임기관 형태로 가져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발표가 없지만, 후자의 중앙 책임기관으로 할 경우에는 별도의 조직이 아닌 기존의 EU 위원회 내의 하부조직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 CBAM 인증서 및 ETS와의 차이
위에서 말한 인증서는 EU에 수입품 통관 시에 신고인이 제출 의무를 갖는다. 수입제품의 탄소배출량(CO2 톤으로 측정)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증서가 최종적으로 CBAM 책임기관에 제출돼야 한다. CBAM 인증서 가격은 매주 이루어지는 EU ETS 배출권의 경매 종가의 평균가격으로 결정된다.

관련 정보는 매주 마지막 비즈니스데이에 Official Journal of the European Union에 고지된다. 수입업자는 매 분기별로 해당 제품의 탄소배출량의 최소 80%만큼은 CBAM 인증서를 확보해서 레지스트리에 등록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EU의회는 제도 설계 초기단계에서부터 여러 유형의 CBAM을 검토했으며, 여기에는 관세, 소비세, 배출권 등이 포함됐다. 결국 지난 7월 발표된 최종 법안에서 EU ETS와 연계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관세 형태로 CBAM 부과 시에는 WTO 제소 위험이 있지만, 배출권 가격에 연계할 경우에는 그와 같은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아울러 향후 전개되는 탄소무역 라운드에서 EU의 배출권 시장을 기본 플랫폼으로 삼겠다는 정책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CBAM의 대상품목 선정 역시 EU ETS의 할당대상과 동일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EU ETS와 CBAM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양 제도 간에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이는 CBAM은 사업장(Installation) 단위가 아닌 재화 단위로 탄소배출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 배출사업장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는 소규모 배출사업장 역시 EU에 철강 등 품목을 수출하는 이상 CBAM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라. 배출량 산정
CBAM의 배출량은 내재배출량(Embedded Emission)이라는 용어로 불리우며 CBAM 인증 의무에 포함되는 배출량은 우선 직접배출량만 해당된다. 하지만 2023년부터 시행되는 시범보고 기간에도 간접배출량은 함께 CBAM 책임기관에 매년 보고해야 한다. CBAM 규정에 의하면 생산과정에서의 CO2 배출을 평가해 현재로서는 재화의 유통 및 소비과정에서의 배출량인 이른 바 전주기 배출량까지 규제하는 단계로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전주기 배출량이 앞으로도 계속 제외된다면 예를 들어 자동차 연비 기준이나 전기차/내연기관차 구분
에 의한 무역규제는 CBAM으로 접근하기에 힘들다.

한편 간접배출량은 내재배출량에 포함하지는 않으나 CBAM 책임기관에 매년 보고해야 하는 항목에는 포함된다. 제8장 제30조는 EU 위원회가 간접배출에 관한 평가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향후 철강, 시멘트 등 주요 품목의 간접배출량 데이터가 구축되면 결국 내재배출량에까지 포함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 CBAM 비용의 상환
사업자는 CBAM 제도 하에서 인증서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 가격이나 물량의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품목의 원산지에서 이미 사업자가 배출권비용이나 탄소세 형태로 탄소비용을 부담한 경우가 입증 된다면 CBAM 인증서 비용에서 차후 상환 받을 수 있다. 물량 접근 방식으로는 실제 배출량이 디폴트 배출량보다 적을 경우에 가능하다. 즉 EU가 미리 산정해 둔 디폴트 배출량보다 해당 품목의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실제배출량이 적을 경우에는 그 차이만큼 CBAM 인증서 지불 비용에서 공제될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해 뒀다.

국내 대응 방안

전술한 바와 같이 CBAM 관련 비용은 기본적으로 EU 배출권 가격과 국내 배출권 가격의 차이에서 결정돼 이론적으로 볼 때 국내 배출권 가격이 EU 배출권 가격에 근접할 경우에는 CBAM으로 인한 추가적인 비용지불은 미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자 관점에서는 결국 탄소비용의 부담이 증가한 점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CBAM 관련 리스크는 CBAM에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의 탄소중립 정책,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정책 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자가 탄소비용을 지불한 부분이 있으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증함으로써 향후 CBAM 인증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정책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을 지라도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 등으로 인해 scope3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도 유연하게 인정하거나 또는 관련 비용을 실질적인 탄소감축투자 비용으로 인정해주는 것도 CBAM 대응 차원에서 필요하다. 아울러 탄소배출량 보고의무가 2023년부터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에 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전 과정 탄소발자국의 LCI DB 등을 기업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행정 및 정보제공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간접배출이 결국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국내 산업체의 간접배출량을 저감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RE100 수단인 녹색프리미엄제, REC직접구매 등이 검토돼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REC를 직접 구매한 기업의 경우 기후환경비용에 포함된 RPS의무이행비용이 공제됨으로써 기업의 이중부담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할 것이다.

CBAM은 2023년에서 2025년 말까지는 보고의무를 가지며 실질적인 비용발생은 2026년부터 생긴다 할지라도 초기의 보고체계가 향후 우리나라가 EU와 쌍무적인 협상을 가질 때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즉,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동안에 앞서 언급한 내용들 중심으로 제도의 개선과 정비가 단계별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박호정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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