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의 방향과 대응 방안
EU 탄소국경조정의 방향과 대응 방안
  •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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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라는 말이 이제 진부할 정도로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8월 공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6차 평가보고서(AR6)의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는 ‘전례 없는(unprecedented)’이란b표현이 가득하다. IPCC가 이 보고서에 대한 보도자료를b통해 직접 표현한 바와 같이 기후변화가 광범위하고 빠르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대한 세계의 인식은 많은 국가, 도시, 기업 등이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가는 핵심 동인이 됐다. 세계가 탄소중립의 이행에 주목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 간 감축의욕의 차이로 발생하는 잠재적 무역왜곡(Trade Distortion)에 대한 문제제기가 재등장하게 된다.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강한 국가의 기업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상승하여 친환경적 제품이 무역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으며, 탄소누출(Carbon Leakage)2)의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4일 유럽연합(이하 EU) 집행위는 2030년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목표(1990년 대비 최소 55%에 맞춰 관련 제도와 정책을 정비하는‘Fit for 55’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패키지에는 국제 무역 관련 핵심 정책으로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의 시행안3)이 포함돼 있다. CBAM은 기본적으로 EU에서 수입하는 대상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에 탄소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여 탄소누출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CBAM은 본질적으로 EU의 무역상대국이 모두 영향을 받는 무역 제한적 조치이기 때문에 Fit for 55 패키지 안의 여러 제도 및 정책 중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EU의 CBAM은 무역 규제로 WTO의 기본 원칙에 어긋날 수 있으며 일방조치(Unilateral Measure)라는 특성상 자칫 녹색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로 변질할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등 EU의 주요 교역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은 대체로 반대의 견해를 보이고 있어 향후 실제 도입까지 난항이 예상되며 무역 분쟁 발생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 의제로 대두된 현재 상황에서 기후변화 관련 이슈가 무역 부문에서도 도외시될 수 없는 상황이며 미국에서도 CBAM과 유사한 조치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국제 무역 내에서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이 제기될 것이며 EU의 CBAM은 이러한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EU의 CBAM의 시행 방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향후 관련 제도의 전개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U CBAM의 시행 방향

가. CBAM 적용 방식

CBAM은 EU 배출권거래제(이하 EU-ETS) 가격 연동 시스템(System Mirroring the EU ETS)으로 설계됐다. 이 방식은 EU 집행위에서 실행가능성, 역내 수용성 확보, 회원국 지지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은 ETS에 연동해 가격의 동태성을 확보하면서 국내와 수입 제품에 대한 일정 수준의 무차별성을 보장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EU의 CBAM은 수입업자들이 EU-ETS의 가격에 상당하는 CBAM 인증서(CBAM Certificate)를 구입해 EU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은 이행준비기간(Transitional Period)으로 설정되어 보고 의무만 부과되며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수입업자는 수입 제품에 결부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고 CBAM 인증서를 구입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인증서 가격은 매주 공시되는 직전 주의 EU-ETS 경매종가의 평균으로 설정된다.

나. 탄소국경조정 시행 범위

CBAM은 시행안의 부속서 I(Annex I)에 명시된 품목에 대한 우선 적용되게 된다. 구체적으로 시행안에서는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등 5대 품목을 적용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부문은 지난 6월에 유출되었던 잠정안(Draft)과 동일하지만 일부 부문에서는 적용 대상 품목을 확대했다. 대표적으로 철강은 6월 잠정안에서는 CN 코드 기준 제72류를 CBAM 적용대상으로 했으나 7월 발표된 시행안에서는 CN 코드 기준 제73류(철강의 제품)를 포함해 적용 품목의 범위를 확대했다. 이는 탄소누출위험(무역집약도, 배출집약도)을 우선 고려하되 제품에 결부된 배출량 산정의 복잡성의 두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화학제품(플라스틱)은 CBAM의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제품에 결부된 탄소배출량 산정의 복잡성을 고려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CBAM의 적용은 탄소누출 위험도가 높은 품목 중 탄소 배출량의 모니터링이 용이하며 가치사슬이 비교적 단순한 벌크(Bulk) 제품이 상대적으로 우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시행안에서도 이 점이 고려돼 대상 품목이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기는 EU 배출권 가격의 상승에 따라 EU 경계에 있는 국가에서 화석연료 기반 전력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포함된 것으로 생각된다.

CBAM의 지리적 범위는 부속서 II(Annex II)에 명시된 국가 및 지역을 제외한 모든 국가 및 지역의 수입품에 적용되는 것으로 설정됐다. 또한 시행안에서는 CBAM 적용의 예외로 포함될 수 있는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EU ETS의 직접 적용을 받는 경우 또는 EU와 ETS 연계 협정을 맺은 경우와 상품의 원산지에서 EU ETS 적용 수준 이상의 리베이트 없이 탄소가격이 유효하게 부과되는 경우를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CBAM이 적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범위는 직접배출량(Scope 1)으로 제품별로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CO2, N2O, PFCs 만을 포함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철강, 전기, 시멘트는 CO2 배출량, 비료는 CO2, N2O 배출량, 알루미늄은 CO2, PFCs 배출량을 적용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6월의 잠정안과 비교하면 간접배출(Scope 2)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특징적이며 현 EU-ETS의 적용 범위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간접배출량이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EU 역내 알루미늄 업계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루미늄은 생산과정에서 전력소비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간접배출을 제외 시 CBAM의 실질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다. 수입 제품의 탄소 함량 평가

탄소국경조정 시행에서 향후 수출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분이 제품생산에 결부된 탄소 함량에 대한 산정 및 보고 부문이다. 기본적으로 시행안에서는 생산시설(installations)별로 실제 배출량 정보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인증된 독립적인 검증자(verifier)를 통해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경우로 한정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한편, 배출량 인증을 위한 실제 배출량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기본값(Default)을 적용해 제품 결부 배출량을 산정하게 된다. 즉, 실제 배출량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면 수출국의 평균 배출원단위를 기준으로 설정하게 되고 만약 수출국의 신뢰성 있는 정보가 적용되기 어려울 때는 EU 설비의 하위 10% 평균 배출원단위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시행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준은 수입 제품에 결부된 실제 배출량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되 충분히 검증되지 않을 때는 수출국에 불리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향후 실행법(Implementing acts)을 통해 규정하도록 하고 있어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나 제품에 결부된 탄소배출량 산정 과정이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행정적으로 비용 상승의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라. CBAM 인증서 가격 및 타국의 탄소가격제 고려

CBAM 인증서 가격은 EU-ETS의 주간 경매 종가 평균가격으로 설정된다. 평균가격은 EU의 공식 저널에서 매주 공개하고 차주 동안 종료되는 판매분에 적용되게 된다. 즉 수입업자는 필요에 따라 EU ETS 경매가격을 참조해 구매할 수 있다. 다만, CBAM 인증서는 거래할 수 없다. 잉여 인증서가 발생하는 경우 구매가격으로 환매신청이 가능하나 총 구매량의 3분의 1까지만 가능하므로 제출해야 되는 인증서 수량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CBAM 시행안은 이중부담 등의 문제제기를 고려해 제품의 원산지에서 이미 부과된 탄소가격을 반영해 CBAM 인증서의 제출량 감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산지의 탄소세나 ETS 제도를 통해 납부한 탄소가격에 대해서 는 CBAM에서 차감하도록 하여 중복을 피하도록 한 조치이다. 다만, 이미 납부된 탄소가격에 상응해 CBAM 인증서 제출량을 줄이려고 할 때는 독립적 인증을 통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EU ETS의 무상할당에 따른 이중보호 행위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EU ETS의 무상할당 대상과 동종의 상품의 경우 EU ETS의 무상할당 수
준을 고려해 CBAM 인증서의 제출 의무를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EU CBAM 시행안의 시사점 및 대응 방안

EU CBAM의 시행안은 아직 구체성이 결여돼 있어 잠재적 영향을 따져보는 것은 쉽지 않으나 몇 가지 잠재적 영향은 추론 가능하다. 우선 CBAM의 대상 품목 중 시멘트와 전기는 대(對)EU 수출이 미미한 품목으로 CBAM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전기는 EU 대상 교역재가 아니며 시멘트는 對EU 교역의 규모가 극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편,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은 CBAM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으로 특히 對EU 교역규모 면에서 철강이 가장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림 1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철강제품이 EU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 수준을 차지해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지고 있다.

EU 시장으로 수출되는 우리나라 제품의 직접적 영향과 더불어 철강 및 알루미늄 무역경쟁국인 중국, 터키 등과의 경쟁 관계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림 2에서 표시된 것과 같이 철강 1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나타내는 배출집약도는 국가 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제품이 상대적으로 EU 제품에 비해 집약도가 높아 불리한 위치에 있으나 중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우위를 가지고 있어 CBAM이 시행되면 EU 시장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CBAM의 EU 수출국의 시장다변화 등으로 인한 파급영향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상세하고 포괄적인 영향분석이 필요하다.

EU의 CBAM은 EU ETS의 무상할당에 수준에 따라 CBAM 인증서 제출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원산지에서 부과된 탄소가격 수준을 반영해 인증서 제출량을 차감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초기 CBAM의 시행에 따른 실제 조정 수준이 높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재무적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CBAM이 3년의 이행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되는 만큼 대비를 위한 기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CBAM의 전반적인 영향은 제도의 도입 형태에 따라 차별화될 것이므로 향후 실행법 등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CBAM의 실제 배출량 보고 및 검증 등 절차와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현재 공개된 시행안에서 제시된 수준으로도 CBAM의 실제 배출량 보고 및 검증 등의 절차는 상당히 복잡하고 관련 비용도 증가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세부 규정이 더욱 방대하고 복잡해질 경우 배출량 보고 및 검증 절차만으로도 잠재적 비관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기우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3년의 이행준비기간에 CBAM에 대응하면서 실제 배출량 보고 절차의 단순성, 투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시설 단위에서 제품의 탄소 배출 함량을 입증하기 위한 체계의 마련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기업 차원의 관련 데이터 수집 · 관리 체계 고도화, 검 · 인증 체계 구축 및 인정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U CBAM의 영향을 받는 업종들은 통상 K-ETS의 온실가스 감축규제를 받고 있으므로 CBAM 인증분의 차감을 위한 관련 정보를 준비하고 검증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다음으로 우선 적용 대상으로 언급된 업종들을 중심으로 EU MRV 및 제품 벤치마크 기준에 따라 국내 각 업종 · 업체별로 EU CBAM 영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에 기반해 각 업종 · 업체별로 온실가스 감축 기술 투자 및 감축설비 투자 노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 기술 및 설비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제도도 마련해야 된다. CBAM을 시행하면서 EU는 점차 대상 품목에 대한 무상 할당을 축소시켜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EU는 2026년부터 10년 동안 연간 10%p씩 CBAM 대상 품목의 무상할당 비중을 축소할 계획이다. 이에 비례해 CBAM의 조정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아울러 CBAM의 적용 대상이 점차 확대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행안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 간접배출은 EU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제시되고 있어 CBAM의 대상에 간접배출을 포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상 품목도 탄소누출의 위험이 큰 품목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CBAM에 대한 대응은 우리나라 제품의 탄소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점차 EU의 CBAM과
유사한 제도들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될 것이며 이러한 제도는 결국 ‘제품에 결부된 탄소배출량’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 관련 지표에 근거할 것이다. 즉,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생산된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을 받는 체계가 점차 강화될 것이다. 국내 산업이 충실한 준비를 통해 기 탄소경쟁력을 키운다면 CBAM의 확산 속에서도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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