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이제는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 이제는 경쟁력
  • 박경민
  • 승인 2021.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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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탄소중립기본법으로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세계 14번째 국가가 되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보다 최소 35% 감축하겠다는 중간목표도 법제화되었다.

그 밖에도 기후정의, 오염자 부담 원칙,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설치, 기후대응기금 설치 등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기반을 담았고, 국가 주요 계획과 개발사업 추진 시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는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 국가 예산계획 수립 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의 도입도 법제화되었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계층이나 산업 등의 전환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지원을 위한 기틀도 마련되었다.

탄소중립 목표가 법에 명시되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다. 법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탄소중립을 실현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포기할 수 없기에 전환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는 불가피하다.

당장 경제계는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최근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산업적 특성을 반영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단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은 28.4%다. EU(16.4%), 미국(11.0%)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 정점부터 탄소중립 실현까지 준비 기간은 32년으로 EU(60년)의 절반에 그친다. 미국(45년)보다도 짧다.

경제계는 “세계적 추세를 고려하면 2050 탄소중립이 불가피한 목표”라면서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산업경쟁력,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만큼 산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이 더 지체되면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보다 먼저 EU,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나라들은 이미 13곳이나 된다.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대응에 앞장서고 있는 EU는 그린딜 로드맵에 따라 이른바 ‘그린규제’ 강화를 추진 중이다. 자국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 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뜻하는 탄소국경세가 대표적이다. EU는 물론 미국 바이든 행정부 역시 탄소국경세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러한 움직임이 무역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탄소중립 경쟁에서 앞선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진단도 있다. 기후대응 경쟁력이 국가경쟁력,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환경단체는 탄소중립기본법의 감축목표가 국제권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 미래세대에게 감축 부담을 미룬 법이라고 꼬집었다. 2018년 대비 35% 이상이라고 하한만을 정한 목표는 사실상 하한선만을 달성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이다. 일부 기후환경단체는 탄소중립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위원회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폭염과 폭우, 산불과 홍수 등 전 세계적으로 초유의 기후재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후위기대응에만 초점을 맞춰도 모자랄 탄소중립기본법이 경제성장을 포기 못하는 것은 ‘그린워싱(Greenwashing)’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탄소중립을 함께 달성해 나가야 하는 딜레마다. 국회와 정부가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탄소중립기본법에서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빼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수소 등 새로운 에너지의 보급 활성화는 물론 화석연료 중심 산업의 질서있는 퇴장도 계획되어야 한다. 탄소포집, 저장, 활용 기술이나 수소환원제철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을 유지하며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신기술의 개발도 가속화되어야 한다.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장을 만들어 작동하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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