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 박경민
  • 승인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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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 파티(Amor Fati). 우리에게는 입가에 맴도는 중독성 있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운명을 수용하고 힘듦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긍정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척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이러한 ‘아모르 파티’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부유한 삶도, 명예로운 삶도, 화려한 삶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살아가는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찬사를 보내고, 순간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간다. 이른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랄까.

우리는 한번쯤 이러한 삶을 동경한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마음이 가는대로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삶이다. 한 번뿐인 인생,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즐기며 살자는 YOLO(You Only Live Once) 열풍도 마찬가지다. 조르바는 YOLO 그 자체의 삶을 산다. 책에서는 그를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 여기에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라고 표현한다. 몇 가지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한 사람임을 체감할 수 있다.

책의 화자인 ‘나’는 이러한 조르바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은 나름의 지식인이었지만 행동을 하기까지는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사람으로 마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있다.

유시민 작가는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자유를 구속하는 3가지 요소를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물질의 결핍, 두 번째는 부당한 제도의 구속, 세 번째는 생각과 관념이다. 먹고 사는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도덕과 사회규범을 준수하며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지향하다보면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아진다. 결국 선뜻 행동을 하기도,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3가지 발전단계를 말한다. 낙타의 정신은 모든 것을 견뎌내는 정신이다. 뜨거운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낙타의 모습에서 착안한 내용이다. 그 다음은 사자의 정신이다. 용맹한 사자처럼 불의와 억압에서 깨어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모름지기 ~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편견, 속박과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사자의 정신이다. 마지막 최고의 단계는 바로 어린아이의 정신이다. 어린아이는 쉬이 지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삶을 살아낸다. 새로운 가치와 기준을 나름대로 창조한다. 천진무구함, 자유로움, 자발적 움직임 등 어린아이의 특징을 니체는 최고 단계의 정신으로 치켜세운다.

조르바는 마치 니체가 말한 최고 단계의 정신, 단순한 인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의 정신이 그대로 나타난 것처럼 살아간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에 걸맞게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다. 이와 대비되는 화자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우리는 때론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가도 이내 낙타의 인내와 사자의 투쟁 그 순간순간을 마주한다. 조르바처럼 궁극의 자유로움은 아니더라도 행복을 추구하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를 온전히 나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라는 아모르 파티 노래 가사처럼.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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