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공명지조’와 ‘천학지어’의 기로에 선 전력기자재 업계
[CEO 칼럼] ‘공명지조’와 ‘천학지어’의 기로에 선 전력기자재 업계
  • 최재림
  • 승인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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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림 구주기술주식회사 대표이사

공명지조(共命之鳥)란 여러 불교 경전에 나오는 상상 속의 동물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이다. 글자 그대로 ‘목숨을 함께하는 새’를 뜻한다. 그런데 공명조의 두 머리는 운명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투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지만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느껴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 버려 한쪽 머리가 죽자 독이 온 몸에 퍼지면서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고 한다.

결국 두 머리가 한 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욕심만 챙기다 보면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는 반대의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로 천학지어(泉涸之魚)가 있다. ‘마른 샘의 물고기’라는 뜻으로 물이 다 말라버린 연못에서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시는 물고기를 말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전력기자재 업계는 국내외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한 관계로 동종 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제한된 시장에서 함께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공명지조의 고사처럼 어느 한쪽이 망하거나 없어지는 상황이 종국에는 모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력기자재 산업에 몸 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어떻게 상생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

첫째, 해외시장 확장을 통해서 파이를 나눠야 한다. 전기 수요의 증가 및 대한민국의 위상 변화로 해외 시장에서의 K-Brand가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 동남아와 중남미에서의 우리나라 전력기자재는 높은 품질과 고객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기술력에 힘입어 시장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서의 변압기, 개폐기 및 차단기 등 전력기자재 제품은 이미 국내기업이 시장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차단기 유자격 업체의 3개사 모두와 개폐기 8개사 중 4개사가 우리나라 기업과 협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배전계통에 국내 제품과 시스템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기존 유럽, 미국제품 공급 위주에서 한국제품과 기자재 부품으로 재구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간의 과잉 경쟁은 최저가 입찰로 인한 손익과 품질악화, 협력 부품사의 손익 악화로 이어지는 큰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력기자재 업체간 협업을 통한 세계 시장확장을 통해 우리나라 제품의 판매확대와 구매물량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선진국들에서 전력망 노후화로 인한 잦은 정전이 발생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바이든 정부 이후 1조 200억 달러 인프라 투자 예산안에 730억 달러 규모의 전력망 개선안이 포함되는 등 중전기기 산업의 새로운 시장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과거 개도국 위주에서 선진국까지의 해외시장의 판로가 개척될 수 있는 시기라고 보여진다.

둘째, 중전기기 산업의 인력양성을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전력산업 시장은 기후변화 대응과 전력인프라의 요건에 맞춰 많은 기술의 혁신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 필요하다. 국내 변압기 업체는 60개 내외, 개폐기 제조사는 30개 내외, 계량기 40개 내외 등 전력기자재 업체의 개발 제품이 중복되어 매년 개발과 제조 전문인력 부족이 발생되고 한정된 인력 풀(Pool)로 인해 돌려 막기를 하는 수준이다. 중전기기기의 전문인력 노령화와 제작사별 분산으로 기초 및 핵심기술 확보가 어려워 제품과 기술의 혁신도 달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급격히 변화하는 시장상황에서 제조, 품질과 신제품 개발의 경쟁력을 현격히 악화시키는 문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내 제조 생태계를 파괴하는 악순환을 만들어가고 있다. 민간은 문어발식 사업확장보다는 자체 기술역량을 강화하고 유관기관은 인력 지원과 기술 자금지원을 통해서 더 많은 기업들이 강소기업으로 거듭 나는 프로세스가 정착됐으면 한다.

셋째,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협업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 경제적 질서에 큰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뉴 노멀 시대에는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미래가 예상되고 있지만 이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응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국내 전력기자재 산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이 선진제품을 벤치마킹 하면서 굴뚝 없는 전통산업으로 한 시대를 주도하던 사업 방식이 주효했다면, 이제는 탄소중립, 환경친화 에너지 전환 등 산업변화와 ESG 경영상황에서 친환경, ICT/AI를 접목한 부가가치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서 국내 전력산업계가 대중소 규모를 막론한 협력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대기업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중소기업은 서로 협업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구조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이로써 업계가 공명지조가 아닌 천학지어로 상생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재림 구주기술주식회사 대표이사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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