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PIC의 역사와 그 공로자들
KEPIC의 역사와 그 공로자들
  • 이창건 KEPIC 정책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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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PIC 정책위원회는 지난해 제30회 모임에서 2030년까지인 10년간의 중 · 장기계획안을 비롯한 7개 안건을 심의 · 의결했다. 그에 앞서 대한전기협회장은 지난 26년간 KEPIC 제정에 이바지한 업적을 기리며 필자에게 공로패와 부상을 수여했다. 분에 넘치는 영광이며 KEPIC 위원회를 대표해 감사드린다. 수상식 답사에서 이 상을 받아야 할 분들의 업적을 언급했더니 그 내용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적어보기로 한다.

지난 날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나는 산업시설가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설비건설을 서둘렀다. 그 결과 각기 다른 나라에서 많은 공급회사 제품을 도입하게 됐고, 그것은 곧 우리에게 각양각색의 기술기준을 다뤄야하는 부담을 안겨줬다. 어떤 설비는 cgs 단위를 쓰고 다른 것은 foot, pound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원자력발전설비 공급국만 해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이며, 화력발전의 경우에도 석탄, 석유, 가스처럼 사용연료에 따라 시방서(示方書, Specifications) 표기법도 달랐다. 이에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당사자는 바로 현장 기술진이었다.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의 싹

이런 사태를 방치하면 국가적 손실이 엄청나리라는 것을 내다본 기계분야의 김남하 기술사가 우리나라도 선진공업국들처럼 나름의 기술기준을 제정 · 적용함으로써 범국가적 효율 향상을 기해야 하며, 지금부터라도 그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작성했다. 거기에 기술기준 유무여하로 나라가 입게 될 이해득실, 기술의 발전진도, 인력, 시간 및 설비 낭비 등을 거시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첨부해 한국원자력학회에 제출했다. 이어 이병휘 원자력학회장이 학회의 견해 특히, 기술자립 촉진과 원자력산업계의 경쟁력 강화방안 등을 가미해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자 동력자원부와 과학기술처가 학회 건의에 적극 호응했다. 즉, 정부가 기술기준 제정 작업을 지원키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두 부처 모두 예산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기술기준의 최대 수혜기관이 한국전력일 것이라며 소요경비를 한전에 부담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시 한전 사장도 다른 국영기업 CEO들처럼 기업의 경영실적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술기준의 중요성은 알겠으나 그로 말미암은 과실은 자기 임기 내에는 맺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위해 많은 경비를 계속 지출해야 한다니 말이 되는가? 그가 그 제안서류에 곧바로 서명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본인이 정부 압력에 쉽게 굴종하지 않는 당당한 존재임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결재서류를 사장실에 들고 들어간 담당자는 당시 건설처장이었다. 두세 번 결재를 거부하면 다시는 그 서류를 갖고 가지 않지만 건설처장은 네 번, 다섯 번 연속해서 결재해달라며 매달렸다. 한전 사장은 다섯 번 · 여섯 번째엔 아예 서류를 내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도 건설처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전 사장은 한전문화의 끈질김에 질렸다며 일곱 번째 때에 서명하고 말았다. 한전 사장이 기술기준 개발 사업을 결재하긴 했으나 회사에는 여유자금이 없어 그것을 영광원전 사업비에서 염출하기로 했다. 기술기준은 일의 성격상 설계단계에서 가장 많이 다루게 됨으로 이종훈 부사장은 그 작업을 한전 산하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이하 ‘한전기술’)에 일임했다. 한전기술엔 기술기준 최초 제안자인 김남하 기술사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이 부사장은 나중에 한전기술 사장이 되면서 기술기준 제정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KEPIC 작업초기에는 국내 학회를 통해 추천받은 전문가를 데려오는 방법을 썼다. 즉, 작업량의 40%를 차지하는 기계분야는 한국기계학회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을, 20%안팎의 전기‧전자 문제는 전기학회가 추천한 인사들을, 7% 정도인 구조분야는 토목학회 회원들을 각각 데려오는
식이었다. 또한 미국 기계학회(ASME), 세계 최대 학회인 IEEE, IAEA 등의 협조도 구했다. 그러나 전문가 수가 600명을 넘는 지금은 학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문가들을 데려와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인도

미국 Carter 행정부시절 한국 주둔의 미군 철수 얘기가 거론되자 우리나라에서는 국방력 강화가 최우선과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도입키로 한 것이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캐나다의 NRX 원자로와 프랑스로부터의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시설이었다. 우리 몇 사람은 캐나다 Chalk River에 가서 NRX의 설계지침을 점검했고, 곧이어 대만과 인도를 방문해 NRX 원자로의 운영 실태를 알아봤다. 동시에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그 시설도입을 위한 예산도 확보했으며 담당부서도 설치했다.

원자력 R&D사업의 급팽창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도의 핵실험이 모든 것을 뒤엎어버렸다. 그 때 인도를 맹비난하는 세계 여론에 캐나다가 앞장선 건심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캐나다가 NRX를 인도에 거의 무상이나 다름없는 특별가로 공급할 때 그것을 오로지 평화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굳게 약속하며 서명했는데 그것으로 조사(照射)한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抽出)해 핵실험을 한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약속위반이라며 맹비난한 것이다.

그러자 인도는 “우리는 약속대로 오로지 원자력의 평화 이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핵실험을 했을 뿐인데 왜들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라며 능청스럽게 응수했다. 그로 말미암은 파장이 NRX 연구로와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연구시설 도입을 추진하던 우리 계획을 좌절시켰고,
또 대만의 NRX 운영도 중단시켰다.

필자의 추측이 맞는다면 당시 캐나다는 NRX를 앞세워 월성단지의 중수로 후속기 수출을 구상했을 것이고, 프랑스는 핵연료 재처리 시설
을 미끼로 자국 원전의 한국시장 상륙을 노렸을 것이다. 그 무렵 필자는 국제회의장에서 인도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자국의 핵실험 때문에 비료공장에서 쓰이는 Stainless Steel(S.S.)조차 수입길이 막혀 힘들게 됐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S.S.를 구매해 한국으로 가져갔다가 홍콩으로 보내면 된다면서 일본회사 이름, 주소, 계좌번호, 액수, S.S.시방(示方), 홍콩주소 등 상품구매를 위한 구체적인 정보를 적은 쪽지를 건넸다. 그와 만나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비료공장 건설에 S.S.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용후핵연료를 강산(强酸)으로 녹여야 하는 공정에서도 특수 S.S.가 필수품일 것인데 그것의 국산화도 못한 상태에서 핵무기를 개발‧실험했단 말인가?

또 하나는 만일 한국이 인도처럼 국제적인 경제 제재를 받게 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였다. 인도에게는 강력한 우방인 소련이 뒤에 버티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우방국인 미국과 일본이 제재에 앞장설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원유의 100%, 식량의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또 생산품의 상당 부분을 수출해야 하는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인데 수출입 길이 막히면 어떻게 될까?

남아공이 핵탄두 6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제적인 경제제재에 굴복하지 않았던 건 금, 은, 동 등 기타 많은 특수 금속과 보석 등 비싼 지하자원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 연명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지 않은가?

또 이스라엘에는 세계 최정상급 유태인 부호들이 조국에 은밀히 송금해주고 있고, 미국이 외교‧국방 면에서 뒷받침해주니까 핵무기를 보유하고도 꼼짝달싹하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유태인 같은 세계 적인갑부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국제적 경제 제재를 받게 된다면 수백만 실업자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아우성을 치게 될 공산이 컸다. 그럴 경우 그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것은 절대 독재정권만이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프랑스

무기 국산화에 온 힘을 다하던 국방과학기술연구소(ADD)부소장 현경호 박사가 원자력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부임 첫 마디는 원자력기술자립과 원전기자재 국산화였다.

“우리나라는 그간 10기의 원전을 도입 · 건설했다. 만일 1기 도입 때마다 10%씩의 국산화율을 높였더라면 지금쯤 우리 힘으로 원전 설계와 주요부품의 국산화가 성공단계에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과거를 거울삼아 기술 자립을 향해 나아가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은 우리더러 그 일에 도전하라는 격려의 말씀이시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믿는다. 우리 조상들께서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와 거북선을 만드셨고, 또 인류 역사상 가장 우수한 언어인 한글을 창제했으므로 우리 DNA 안에는 그런 창
조성이 내재돼 있음이 틀림없다. 그 잠재력을 끌어내 원자력에 접목시킴으로써 기술자립을 이루자는 것이며 이 일에 소장직을 걸겠다. 이 일에 여러분의 동참을 촉구한다.”

원자력 전공자다운 발언이었다. 사실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뛰어들지 못했을 뿐이었다. 소련에서의 Chernobyl 원전사고 후 세계 원자력계가 침체의 늪에 빠지자 프랑스가 미국 Westinghouse사에서 원전계통 설계기술을 아주 싼값(5억 달러)에 사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현 소장은 앞으로 원전도입 때마다 돈 없이도 국산화율을 몇 십 퍼센트씩 끌어올릴 방안이 있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즉, 원전 도입 입찰조건 중 기술전수 항목에 아주 높은 가중치를 배정해 핵심기술을 가장 많이 내 놓는 공급자가 선정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 되풀이하노라면 드디어 기술자립 고지에 올라서게 될 것이라는 기술빈국으로서의 장기 전략이었다.

원전 도입 때는 구매자가 ‘갑’이므로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안이었다.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는 원전공급회사의 Salesman이나 대외협력 변호사의 말만 믿고 원전을 도입했다. 그런데 그 후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매번 핵심기술 확보에 실패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다음 번에는 어떤 기술을 언제 어떻게 전수(傳受)받을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안을(변호사 휘하의 국제협력 담당자가 아닌) 상대방의 기술부서장에게서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니 자네는 어떤 기술이 어느 단계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일목요연하게 분야별로 작성해 놓으라.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한전과 사전 협의하겠다.”

그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한전 경영진은 현 소장 제안에 적극 호응했다. 그리하여 두 기관은 원전설비공급회사 기술진과의 현지 면담을 위해 해외시찰단을 구성키로 합의했다. 현 소장이 단장, 한국전력 성낙정 부사장이 부단장, 한전의 기술 분야별 책임자 3명, 거기에 서기일과 보좌역을 맡을 필자까지 6명이었다. 우리는 기술자립을 위한 단계별 로드맵과 공급회사별 장단점 및 기술 획득을 위한 나름대로의 방안을 작성해 유럽과 미국을 향해 떠났다.

첫 번째 방문국은 프랑스였다. 예측대로 우리는 원전의 설계 · 제작 · 건설 · 운전 관련 회사 시설에 안내받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아봤다. 심지어 출입금지구역인 우라늄 농축공장,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과 핵잠수함용 원자로까지 사진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여준 것은 자국 기술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계획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주말에 우리는 프랑스 원자력장관의 만찬 초대를 받았다.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담을 나누며 고급음식을 먹었다. 포도주 몇 잔 후 현 단장께서 감사인사를 하자 원자력장관이 일어서더니 쪽지를 꺼내들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프랑스는 한국의 원전 입찰에 여러 차례 참가했고 그 때마다 최상의 조건을 제시하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매번 미국과 캐나다 업자의 들러리로 이용당하며 패배의 쓴 맛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장 경제의 원칙인 공정한 평가에 의해 결정된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방문에서 우리 원자력산업계의 능력이 세계 최정상임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프랑스가 한국의 원전입찰에 참가한다 해도 경제성이나 기술전수 조건 이외의 다른 요인에 의해 또다시 이용당하고 말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 한국은 물론 세계 원자력계에 널리 퍼져있다고 합니다. 커튼 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번에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런 꼴을 당하기 전에 프랑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려 합니다. 그 조치엔 양국 간의 과학기술 교류를 단절하고 무역거래를 중단하고 …(중략)…당신네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끊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세계 모든 나라와 함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정치 · 외교적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원자력부만의 의견이 아니라 행정부 관계부처 모두가 합의한 사항입니다. 또 이것은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정해진 일도 아닙니다. 당신네가 원자력 사업을 매번 정치논리에 의해 편파적으로 결정해왔고 다음번에 또 그렇게 할 것이라는데 우리라고 늘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평가에 의한 통보이오니 감정적이거나 순간적인 편견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바랍니다. 이 모임이 한 · 불 양국의 최후의 만남이 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함으로써 양국 간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랑스 장관의 폭탄선언을 들으면서 그가 홍보실에서 작성해 준 다음 내용은 읽지 않고 넘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추측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19세기에 당신네 나라에서 우리가 포교한 몇 만 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프랑스 신부 9명을 때려죽인 사실(병인양요)을 기억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후 서울 한복판에 최신식 건물인 명동성당을 지어줬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원전을 건설하려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맥락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폭탄선언을 들은 우리는 더 이상 남아있는 음식과 후식에 입댈 수 없었고 포도주를 더 마실 수도 없었다. 서로 눈치만 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말없이 호텔에 돌아온 필자는 그날 프랑스 정부 측의 발언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현 단장에게 건넸다.

월요일 아침 현 단장과 성 부단장 그리고 필자는 한국 대사관을 방문해 보고서를 내놓으며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설명했다. 프랑스대사는 스웨덴, 미국, 캐나다 방문을 뒤로 미루고 곧바로 귀국해 정부요로에 이 사실을 보고하는 게 우선이라 했다. 우리는 즉각 비행기 표를 바꾸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김종필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해 다음번 원전 입찰에서는 프랑스의 Framatome사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언질을 줘 도입하게 된 것이 울진 1,2호기였다. 울진 1,2호기 도입은 양측에게 win-win 효과를 제공했다. 프랑스로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원전을 수출했다는 공급자 만족을 만끽했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것을 계기로 원전기술 자립과 설비국산화에 매진하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울진 1호기를 건설하며 심한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울진 1호기의 수압시험

울진 1호기의 건설이 끝나자 한전은 핵연료 장전허가를 받기 위해 냉수압시험(Cold HydroTest) 결과를 과학기술처에 제출했다. 시험 결과가 만족스러웠는데도 과기처가 그것을 거부한 것은 적용한 기술기준 때문이었다. 규제기관이 내세운 이유는 프랑스 설계의 원전에서는 마땅히 프랑스 기술기준을 적용해야지 어째서 미국 기준에 따랐느냐는 것이었다. 운전압력의 1.25배로 냉수압시험을 하는 미국에서 원전기술을 도입한 프랑스는 자신도 없고 보다 더 확실함을 기하기 위해 그것을 1.33배로 높여 시험하기로 기술기준을 상향 조종했는데 이 0.8배차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환경단체와 일부 언론기관은 가급적 높은 압력으로 시험하는 것이 안전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한국전력의 시험결과로도 안전성 확보가 충분하다는 기술진은 앞으로 울진 1호기의 전 수명기간 중 운전압력이 1.25배 이상 올라갈 경우가 한 번도 없을 것이므로 그 이상의 수압시험은 금속재료의 연결부위, 특히 용접부에 심한 피로(Fatigue)만 가할 뿐 아무런 실익이 없을뿐더러 명분에 얽매여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반론이었다.

한전이 수압시험을 1.33배로 다시 하려면 프랑스에서 측정기기를 도입하고 배관을 감싸고 있는 절연물을 뜯어낸 다음 여러 군데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측정기기 설치 후 전 계통을 가동해봐야 한다. 그리고 모든 지점에서의 측정치가 만족스러워야 계통을 원상복구하게 되며 그런 다음 절연물을 새것으로 재 설치하려면 몇 달이 걸릴 것이라며 울상이었다.

이 명분과 실리 간의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가 울진 1호기에서 전기 공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생산 공장을 건설한 수많은 군소업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수압시험 압력이 1.25배건 그 이상이건 그런 건 전혀 관심 밖의 일이고 오로지 안정적이고 값싼 전기를 제때에 공급받기를 바랄 뿐이며, 그것은 그들의 생존권에 직결된 절박한 문제였다. 울진원전 준공이 늦춰지자 그들은 정부의 대처에 아쉬워했다. 그러자 정부는 그 기술문제 검토를 원자력학회에 의뢰하면서 전문가 4명을 천거해줬다. ‘압력에 의한 금속재료의 피로와 파열(Rupture)’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성균관대의 김영진 교수와 인하대의 이억섭 교수, 그리고 기계연구소의 송달호 박사와 기술기준의 최초 제안자인 김남하 기계 전문 기술사였다. 당시 필자는 학회 모자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자동적으로 그 일에 끌려 들어가게 됐다.

검토업무 전문가들이 천거되자 송 박사가 찾아오더니 정부에서 확실한 다짐을 받은 다음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의 얘기는 이것이었다. 학회가 최선을 다해 가장 공정한 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정부가 그것을 정책결정을 위한 한낱 참고자료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회의 결론이 곧 정부와 이 나라 기술계의 최종결론이 될 것임을 사전에 보장해달라는 다짐의 요구였다. 과학기술처의 한영성 차관은 숙고 끝에 학회의 결론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해줬다. 필자는 좋은 분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음을 감사했고 또한 한 차관도 훌륭한 공무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업 첫 머리에 필자는 다음을 당부했다.

① 이번 일은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원자력계가 눈여겨 볼 것이므로 이 세상 누가 봐도떳떳하고 자신 있는 논리적 검토 결과를 내놓도록 최선을 다하자.
② 이 작업결과는 울진 1호기의 수명기간인 몇 십 년만이아니라 여타의 9기 원전과 앞으로 건설될 수많은 원전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원전의 초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장래의 진행방향까지도 예상해 포괄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모범적인 결론을 내도록 하자.
③ 위의 ①항은 공간의 축을 뜻하고 ②항은 시간의 축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정성과 능력의 축, 그리고 창조적 축을 추가함으로써 이번 일을 계기로 해 우리 원자력산업 경쟁력이 세계 으뜸이 되도록 지혜와 땀을 쏟아 붓자.
④ 여러분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임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러분들보다 나이만 많을 뿐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 별로 없는 구식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도 학회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같이 일하며 배우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전문성을 지닌 여러분들의 견해와 결론에 전적으로 따를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여러분이 각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막바지에 2대 2로 갈라져 팽팽히 맞서며 평행성만 긋게 될 경우 부득이 필자가 결론을 내려야 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의 기술문제가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라 무식한 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경우에 봉착하게 될 것 아닌가? 그런 불행한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네 분께서 이 나라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꼭 합의해주시기 바란다.

이 일을 맡은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휴일에도 늦게까지 참고자료를 찾았고 주말에도 토론에 열을 올렸다. 마감일이 다가와 요약문, 전문(前文), 결론과 건의사항 뼈대작성 단계에 이르자 네 사람이 2대 2로 갈라서더니 서로의 정당성을 강하게 내세우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예상했던 일인지라 양쪽 의견이 모두 옳다고 추켜세웠다. 그렇지만 그것을 반대쪽에서 보면 상대방 견해는 틀렸고 이쪽 말이 옳다고 우기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면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이며 공명정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미흡하니 마감 전까지 그것을 내놓으라고 강조하며 그렇지 않으면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윽박질렀다.

몇 시간 후 운 좋게 그 중 한 명이 최근 프랑스 원전에서 수압실험 압력이 운전압력의 1.33배는 너무 높아 미국에서처럼 그것을 1.25배로 낮추기로 했다는 기사를 찾아내자 2:2가 4:0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이 일요일 새벽 3시였다. 우리 다섯은 서로 악수했고 필자는 그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한 사람씩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마무리한 다음 그들 각자에게 서명을 받았다.

차를 몰아 한강에 나가 흐르는 물을 응시하며 감격스러움을 진정시켰다. 태양이 동녘 산 위에 올라오자 또 다른 태양이 강물에도 내려앉았다. 운 좋게 이번 일을 맡아 훌륭한 후배들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된 것에 감사드렸다. 이들이야말로 이번에 과학기술(Technology)에 공학(Engineering)을 접목해 과기공학(Techneering)을 개척한 장본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EPIC 설명회

감사패
감사패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경제개발에 한층 더 열을 올린 중국이 한국에도 기술조사단을 보내 주요산업시설을 시찰토록 했다. 전문분야별로 몇 개 팀을 구성해 현장을 누비며 기술의 요체(要諦) 파악에 나선 그들은 서울에 돌아와 그간 현장에서 확인한 것 중 미진했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확인한 후 귀국 전 종합보고서 초안을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현장에서 Codes and Standards의 중요성을 엿듣고 황급히 필자에게 연락했고, 중국방문단의 2인자를 만나게 됐다. 그는 기술총괄책임자이고 아주 똑똑한 Engineer였다.

필자는 그에게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했을 땐 도(길이), 량(부피), 형(무게) 같은 기초적인 도량형(度量衡) 제정만으로 충분했겠지만 지금은 각 분야별로 수십 · 수백의 기술기준을 다루어야 하는 복잡 다양한 시대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때 Volt, Ampere, Ohm 같은 전기표준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에이브러햄 링컨은 정치 · 군사적으로 미국의 남북통일을 이룬 주역으로 추앙받고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당시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화폐와 어음을 발행하던 것을 한 가지로 통일한 업적이 미국 경제발전의 발판이 됐다고 평하는 학자들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시 미국의 남이나 북 어느 한 쪽과 연계돼 있어 그 두 나라 대신 중립적인 독일의 화폐인 Thaler를 본받아 Dollar를 화폐단위로 제정함으로써 미국의 남북을 경제적으로 통일하는데 성공했고, 나아가 그것이 기술개발의 발판이 됐다고 한다.

Imperial Gallon은 4.546liter인데 술장사들이 그것을 Wine Gallon(3.785liters)으로 줄임으로써 Gallon 단위 조작만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 우리 견해다. 비슷한 일이 1821년에 사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신장 측정 시에 일어났다. 그의 시신을 영국군이 보관했으므로 당연히 그의 키를 영국 검시관이 쟀는데 그것이 5.2feet였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foot 단위는 32.42㎝이고 영국 자는 30.48㎝다. 따라서 프랑스식으로 하면 나폴레옹의 키가 168.9㎝이며, 그것은 당시 프랑스 남성의 평균 신장 164㎝보다 5㎝컸다. 그러나 옆에 있던 정치장교가 그것을 영국 자로 해석
하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158.9㎝로 둔갑했고, 기자회담때 다시 155㎝라고 줄여서 발표했다는 것이 프랑스 측 견해다. 그 후 많은 화가들이 나폴레옹의 키를 155㎝라는 가정 하에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해가지지 않는 영국’의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우리나라도 그의 키가 155㎝의 것으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수도권 지하철은 서울메트로와 한국철도공사(Korail)가 운영한다. 그런데 한 쪽은 직류 1,200V이고 다른 쪽은 교류 2만 5,000V이며 통신계통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여러 곳에 있는 두 시스템의 연결지점에서는 전력공급이 끊겨 냉난방을 못하고 전등도 28초 간 어두워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쪽은 우측통행이고 저쪽은 좌측통행이므로 선로의 좌우를 바꾸기 위해 지하에 X선 교차로를 건설하느라 많은 토목공사비가 들었다. 이 모두 기술기준이 달라서 생긴 국력낭비다. 이런 불필요한 노력, 비용, 시간 낭비를 피함으로써 산업계의 효율향상을 기하고 나아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려는 것이 KEPIC이 지향하는 바다.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지만 그간 서로 다른 기준을 써왔기 때문에 양쪽 사이가 너무 많이 벌어졌다. 그래서 남북통일 후 10년간 기술기준 통합작업에 들어갈 비용이 적어도 7,700억 달러 내지는 3조 5,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Goldman Sachs 연구소가 전망한 바 있다.

 그래서 필자 생각은 남북통일 후 경제 및 기술기준 통합작업은 10년이아니라 30년 내지 50년 동안 느긋하게 천천히 추진하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본다. 필자가 우리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도 중국문제를 털어놓았다. 중국에서는 지방마다 외국 설비를 도입한 결과 너무도 강한 원심력이 작용해 진시황이 나와도 기술문제를 통일할 형편이 아니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알게 됐으나 해결책이 막막하다며 재빨리 문제해결에 뛰어든 한국이 부럽다는 것이다.

필자는 궁즉통(窮則通)이란 글을 써주면서 궁지에 몰리면 반드시 해결책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와 헤어지기 전 다음 얘기로 그 날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한반도의 강은 주로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흐른다. 황하, 장강(양자강)을 비롯한 중국의 강들은 대부분 서쪽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른다. 그런데 물이 바다에 들어온 다음엔 각자의 근원에 대해 알 필요가 없게 된다. 다 같은 바닷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둘은 바다에 흘러들어온 물과 같아 동질성을 지닌 동료일 뿐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바다를 호수로 만들고 호수를 연못으로 소형화해 거기에 연꽃도 심고 연못가를 아름답고 안전하게 꾸며 세상에 내놓도록 하자. 두 나라가 협력해 번영과 안정과 평화 조성을 위해 힘쓰자.”

그 때 그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꼈다. 몇 달 후 우리는 중국의 초청을 받아 북경에 가서 KEPIC 설명회를 열었는데 설명자는 한전기술의 이종훈 사장과 김남하 KEPIC 최초제안자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이었다. 중국 측은 이 모임에 전국 규모의 참석을 권유한 모양이고 참가비도 100달러 정도로 아주 비쌌는데도 많은 희망자가 입장하지 못하고 되돌아 갈 만큼 성황을 이뤘다. 단상에 올라간 필자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삼국지의 등장인물을 인용해 기술기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용맹스러운 장비는 전투를 잘하고 충성심 강한 전사였다. 한편, 제갈공명은 지난날의 많은 전력을 참작해 가장 실패 확률이 적고 승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전술을 작성해 유비의 이름으로 전방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전략가였는데 그가 작성한 계획이 지금의 기술기준에 해당할 것으로 본다. 단, 기술기준 제정에선 수시로 변하는 외부여건을 참작해 적시에 궤도수정을 단행함으로써 환경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기업형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는 사람이 있다.”

우량기업 : 최고기술을 찾아내 그것을 재빨리 상품화해 시장을 석권하는 하드웨어 위주 업체. 이것은 전투에 해당한다.
일류기업 : 남들보다 앞서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도하는 소프트웨어 위주 기업. 로얄티가 수입금의 주류이며, 이것은 전술에 해당한다.
특급기업 : 각급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기준을 제정해 세계의 기술 질서를 주도하는 특수기업. 기술계의 전략을 수립하고 미래로의 진행방향을 제시하며 남들과 초격차를 유지함. 한때 D.C. 전기 시스템을 내놓은 토마스 에디슨의 General Electric 사나 A.C.를 제안한 테슬라가 이에 해당한다.

“역사상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겪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이렇다. 흥하는 나라에서는 우량기업이 일류기업으로, 그것이 다시 특급기업으로 올라가는 수가 많았다. 반대로 멸망단계의 국가에서는 밑으로 떨어지는 기업 수가 늘어나고 새로움을 창출하던 우수인력이 일터나 사회를 떠났다. 여기에 오신 모든 동료들은 올라가는 단계에 있는 엔지니어들임이 확실하다. 주최 측은 여러분 같은 엘리트들이 충성심과 용맹을 발판삼아 전략수립단계로 Quantum Jump함으로써 제갈공명을 지향하도록 유도키 위해 이 모임을 계획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많은 미래의 제갈공명들 앞에 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만 더 첨부하겠다. 미국의 경우 기술기준 제정위원을 몇 명 확보하고 있느냐가 그 기업체의 자격과 신용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령 대형 프로젝트 입찰의 경우 해당 분야의 기술기준제정위원을 몇 명 확보하고 있느냐와 그들의 전력(前歷)이 입찰자격 평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준제정위원은 근무시간엔 회사 일을 하고 기술기준 개발업무는 퇴근 후 휴일 또는 주말에만 하는데 그것도 모두 무보수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회사에서는 그들을 아주 존경하는 분위기다. 그들을 기술기준 업무에 종사하도록 만드는 동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고 명예구축이다.”

북경에서의 KEPIC 설명회는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주최측이 우리를 칙사 대접했다는 사실과 떠나는 날 강사에게금으로 만든 준 감사패를 전달하고, 필자를 각하(閣下)라 호칭한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UAE로의 원전수출과 KEPIC

UAE에 수출한 국내 원전 4기는 KEPIC에 따라 설계, 재료선정, 제작, 조립, 건설, 시운전, 상업운전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가 UAE에서 경쟁사에게 이길 수 있었던 데는 다음 사항들이 도움이 됐다.

가. 지난 30여 년간 한국 기업들은 중동 지역에서 1,0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성실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즉, 예정기한 내에 계약금액 안에서 안전성 요구사항을 만족시켰기 때문인데 그런 것이 음으로 양으로 우리 원전 채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나. 지난 날 우리가 Combustion Engineering(C.E)사와 OPR1000(한국표준형원전)을 공동개발 할 때 미국 Counter-part들이 한국 동료의 능력과 성실성을 높이 인정했다. 그런데 C.E사가 Westinghouse사에 흡수 · 통합되면서 대부분의 C.E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즉, 구조조정과정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 쫓겨난 C.E 출신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얻은 새 직장
이 UAE의 원자력 기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UAE 원전의 국제입찰서류를 심사 평가하는 주역이 됐다. 말은 안 해도 그들은 자기네의 옛 방식대로 입찰서류를 작성한 한국 제안서에 좋은 점수를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UAE에는 원자력 공학 전공자가 단 한사람뿐인 상태에서 원전사업을 시작했으므로 C.E사의 전(前) 엔지니어들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시키기 위한 국제 협력의 일환으로 100만kW급 원전(OPR1000) 2기를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에 건설하게 됐다. 그 때 모든 절차가 국제기구인 KEDO를 통해 추진됐으므로 우리나라 기술진은 제출서류를 국제규격에 맞게 작성하느라 굉장히 고생했다. 그러던 중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상이 탄로나자 신포원전 건설이 30% 정도 진척된 상태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UAE에서 원전건설 입찰공고가 났으므로 북한 신포원전지원단이 그 일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입찰 서류를 접수한 UAE 당국이 애매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입찰 회사에게 질문을 보내게 되는데 남들은 대개 2~3주 후에야 답변서를 제출하는데 한국 입찰팀 만은 매번 2~3일 만에 그것도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아 내놓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원전지원단이 100만kW를 140만kW로 바꿔 쓴 다음 신속하게 답변서를 작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게 보면 북한 KEDO 사업에 참여하면서 겪은 우리나라 기술진의 심한 고생은 UAE의 국제입찰에 참여하기 직전의 연습시합이 됐던 셈이다.

라. 외국 경쟁사들은 설계, 기기공급, 건설, 핵연료, 시운전별로 기업체가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전 우산 밑에서 모든 분야 업체들이 하나가 돼 일사불란하게 단일팀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참여 기업체 간 협의나 마찰이 없어 의사결정이 아주 빨랐다. 그래서 UAE 측이 우리를 대하기가 아주 편했다. 따라서 한국 측에 호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마지막 단계에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나서 첨단무기 공급을 비롯한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밀고 들어가자 UAE 원전사업이 거의 프랑스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서도 건설회사 출신 대통령이 나서서 최후의 담판을 지음으로써 파리로 가게 되어 있는 사업을 서울로 끌어오게 됐다는 것이다.

부정부패

한국의 UAE원전 수출은 선진공업국은 물론, 지난날 우리와 함께 개발도상국이었던 많은 후발국들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UAE의 Barakah 현장에 천막을 치고 정지작업을 시작하던 시점에 국내 원자력계의 부정행위가 발각됐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것이 국제 뉴스망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간 것이다. 그러자 원전입찰 경쟁 패배자들이 들고 일어나 한국 측에 이 일을 맡기면 안전성과 경제성 확보는 물론, 도중에 운전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일 나팔 불고 북치고 부정행위 기사를 내보이며 UAE 당국을 향해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원전 입찰을 다시 하라고 다각도로 UAE 당국을 압박한 것이다. 생각다 못한 UAE는 IAEA 당국에 한국 원자력계의 원전사업 추진능력과 부패실상을 정확하게 조사·평가해 달라고 요청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IAEA 조사단 4명 중 단장인 영국 신사를 뺀 나머지 3명(미국, 캐나다, 일본)은 IAEA 프로젝트를 몇 차례 함께 수행한 적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조사단은 규정에 따라 피조사기관의 접대에 응해서도 안 되고 어떠한 선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토의 중 커피나 차는 같이 마셔도 된다고 했다.

필자는 대한전기협회에서 작성해 준 Briefing Chart를 보며 약 40분간 KEPIC에 대해 설명했다. 그 후 15분 동안 세부사항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기술기준에 관한 한 그들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몇 십 년 간 이 일에 종사하고 있는 프로이므로 막힘없이 잘 헤쳐 나갔다. 특히 Bilingual로 작성해 한 줄로 진열해 놓은 100여 권의 KEPIC 전집에서 그들은 좋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필자는 그 친구들에게 부정부패 문제 때문에 IAEA에서 조사단이 온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나라의 청렴도가 시간 경과와 GNP 향상에 따라 정상을 향해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따라서 Barakah 1호기 착공 때보다 4호기 준공시점에서의 청렴도가 더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 만난 일본의 스즈키씨에겐 친밀감 표시를 위해 일본말을 했다.
“IAEA 조사단에게 방문국으로부터 밥과 술을 대접받지 말라는 얘기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커피는 같이 마셔도 된다면서 화장실 얘기는 없다. 그래서 조금 전에 나간 영국인 단장에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회 화장실 얘기를 하려다가 그와 초면이라 실례될 것 같아 하지 못했다.”

영국의회 화장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정권을 내놓은 보수당의 Winston Churchill 前수상에게 정권을 잡은 사회당의 Clement Attlee 당수가 화장실에서 말했다. “이보게 Winston. 내 옆 자리가 비어있으니 빨리 와서 볼일 보게.”그러자 W. Churchill이 즉각 대꾸했다. “이봐. 자네들 사회당에선 큰 것만 보면 무조건 국유화하려 덤벼드니 무서워서 못 가겠네. 자네들이나 볼일 보게.”

‘IAEA조사단이 영국의사회당 관례처럼 남의 나라에서 좋은 물건을 보면 국유화나 국제화하려 들지는 않겠지요’라는 생각이 담긴 발언이었다. 이후 휴식시간에 그들끼리 얘기하는 것을 지나가다가 엿들었다. “이 정도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소문과는 달리 Barakah 원전사업도 한국의 현장처럼 잘 해나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신 생각은 어때?”“나도 같은 느낌이다”
그때 그들이 고의로 말을 흘렸을지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 그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간 현장에서 IAEA 조사단과 만났을 우리나라 원자력인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뿌듯했으며 속으로 감사했다.

청결, 청렴 그리고 안전성

꽤 오래전 IAEA의 원전 안전성 실태검사단이 울진원전을 실사하러 왔을 때 우연히 현장에서 그들과 마주치게 됐다. 그런데 그들 중 두 사람은 구면이었고 당시 필자는 우리나라 원자력위원 겸 전 세계의 학회 집합체인 국제원자력학회협의회(INSC) 회장이어서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시간절약을 위해 그들이 저녁식사 후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며 문장을 다듬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발전소의 청결 상태는 건전성과 안전성의 정도에 비례한다고들 말하는데 그런 면에서 최상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는 울진원전의 건전성과 안전성에도 믿음이 간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온다고 특별히 깨끗이 청소하진 않았겠지.”

그러자 일본인 검사관이 끼어들었다. “청결도 면에서는 일본원전이 세계 최고다. 그 밖의 일본의 모든 산업시설의 청결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본에선 지진이 자주 발생해 청결도와 안전성의 상관관계 성립을 방해하는 것이 문제다.”

필자는 일본 산업 설비들의 청결도가 세계 최고라는 얘기가 맞다고 맞장구쳤다. 그런데 그것은 필요조건 중 하나이므로 충분조건이 되어 공식으로 정착하려면 보다 많은 현장자료를 Input으로 대입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추가했다. 그런데 그 후 후쿠시마 인근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원전의 청결도가 안전성과 건전성에 비례한다는 일본 전문가의 공식 제안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원자력계는 청결, 청렴, 건전성과 안전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기술기준 향상 못지않게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창건 KEPIC 정책위원회 위원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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