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힘
분별하는 힘
  • 박경민
  • 승인 2021.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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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광장 ‘아고라’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데 영양가 있는 토양이 돼 줬다. 아고라는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는 민회(民會)를 비롯해 재판, 토론 등으로 항상 북적였다.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열린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연극이나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등 사교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지 그 자체가 바로 아고라였다.

아고라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탁월한 웅변실력을 바탕으로 시민들을 설득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 청년들에게 가장 빠른 출세의 수단이 됐다. 덩달아 연설술, 수사학 등도 각광받았다. 웅변술을 가르치고 절대적 진리를 부정한 소피스트(Sophist)들이 활발히 활동한 것도 이때부터다. 소피스트란 단어는 ‘지혜로운 자, 현명하고 신중한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최초의 소피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만물의 근원과 변치않는 진리에 대해 탐구했던 이전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사람은 각자가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척도가 된다는 주장을 폈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는 구별할 수 없고 대립되는 판단도 나올 수 있다며 주관성과 상대주의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척도가 돼 재단한 진리를 타인에게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프로타고라스를 위시한 소피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미가 퇴색된다. 소피스트는 궤변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논쟁에서 이기는 데만 급급해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을 꾸미거나 거짓을 참인 것처럼 늘어놓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사학이라고 표현하기엔 정도가 심한, 이른바 ‘혹세무민’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해져 내려오는 프로타고라스의 수업료 일화는 이러한 소피스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의 한 젊은이는 유명한 프로타고라스에게 변론술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료가 너무 비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절반을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배움의 효과가 있을 경우, 즉 그가 법정에서 변론하여 승소하는 최초의 날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젊은이는 프로타고라스를 따르면서 배웠고 실제로 변론술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다만 한 번도 법정에서 변론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수를 쓴 셈이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는 나머지 수업료를 받기 위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를 고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이소송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그대는 수업료를 내야 하네. 만약 자네가 패소한다면 판결에 따라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하고, 만약 자네가 승소한다면 우리의 계약에 따라 변론에 승소하는 최초의 날이 될 것이므로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하지.”

프로타고라스에게 변론술을 배운 젊은이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선생님, 저는 수업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제가 승소한다면 판결에 따라 제가 드릴 수업료는 없습니다. 만약 제가 패소한다면 우리의 계약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드릴 수업료는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남을 속이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소피스트에 대한 비판이 단적으로 드러난 일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더이상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게 됐다. 그럴듯한 궤변으로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대중을 선동하기까지 하는 소피스트가 젊은이를, 그리스를 혼란스럽게 해 망하게 만든다며 비판의 강도도 높아졌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무얼 알고 있는가’라며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진리를 추구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로 의심을 받아 결국 독배를 드는 일까지 이르렀다.

소피스트와 철학자를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진리의 추구라는 관념이 모호한 것은 물론 무지한 대중이 개별 사안에서 진리와 궤변을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 소피스트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 단련하고 사고의 틀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SNS를 비롯해 각종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다. 경계를 늦추다보면 궤변에 현혹되어 우리의 판단이 흐려지고, 어느샌가 설득되어 같은 논리를 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분별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야하는 까닭이다.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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