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시계추를 위해
합리적인 시계추를 위해
  • 허균영
  • 승인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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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라는 원자력 정책

최근 원자력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토론회도 활발하게 열리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도 되는 터라 향후 원자력에너지 정책에 대한 업계의 바람이나 분위기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대개의 맥락은 지난해 말 한국원자력학회가 발행한 ‘탄소중립과 미래세대를 위한 국가 원자력정책 제안서’와 대동소이하다. 이에 해당 문서를 빌려, 여기에 필자의 생각을 더해 먼저 짧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원자력 객관적 평가 필요 … 시장 작동 신호 보내야

먼저 인류의 미래이자 국가 간 신뢰의 상징인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원자력에 대한 기여분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자력의 역할이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위축되지 않을 미래를 설계해 달라는 주문이다. 이들 정책 제안은 긴 호흡이 필요하고 정부의 입맛이 아니라 과학기술 전문가의 중지를 모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들이다. 법률에 의해 탄탄히 다져져야 할 정책들이며, 기술주기가 긴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새롭게 유입될 인력에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으로 시장이 작동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신한울 3 · 4호기 건설 재개와 계속 운전 검토 필요

다음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적정한 믹스를 달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더욱 중요한 것은 고품질의 다품종 소량 생산이 중심이 되는 원자력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제안이다. 바로 신한울 3 · 4호기 건설 재개와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의 계속운전(원전의 안전성 평가를 통해 운영허가기간 또는 설계수명기간 이상으로 계속해 운전하는 제도)이다. 이들 정책 제안은 당장 코앞으로 닥친 2030년 NDC에 대한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서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발전의 비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며, 전기화(電氣化)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사회변화 속에서 막대한 분량의 전력원을 활용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옵션이다. 또한 산업적 측면에서 신규건설은 중후장대한 중공업과 토목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방법이며, 계속운전을 통해 원전의 시장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부품 공급망과 유지보수 인력의 질적 수준을 확보해 전체적인 운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원자력을 전력 공급원 이상의 하나의 산업으로 볼 때, 국내에서의 비즈니스만 가지고서는 사실 전도유망한 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인구 및 산업구조를 살펴봤을 때 경제적인 가격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역할론을 펼친다하더라도 산업 자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미 이 상황은 원자력계 내에서도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내용이며, 그래서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했던 것을 계기로 해외시장 개척에 각별한 신경을 썼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다시 체계화하자는 정책 제안이 또한 포함되어 있다. 특히 국내에 운영 중인 대형 원자로 이외에도 다양한 목적으로의 활용이 가능한 소형모듈형원자로의 실증을 신속히 마치고 쌍두마차로 수출 활로를 개척하는 데 있도록 정부가 행재정적인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책임있는 자세 촉구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의 촉구이다. 필자도 2013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활동에 관여한 적이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인 옵션을 망라하고 어떠한 마일스톤으로 진행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완성도 높게 논의가 됐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미진하고 보완돼야 할 부분에 대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부족한 채로 원점으로부터 다시 추진된 2019년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예전 이상의 실행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구체성 역시 개선의 여지가 있었나 싶다. 그런 만큼 의견수렴이라는 이유로 지난 몇 년의 세월을 일부러 흘려 보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은 중간저장부터 최종처분까지 단기와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하고, 아직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어 중요한 시점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일처리 체계가 갖추어질 수 있도록 법제화와 국민 소통을 주도해 달라는 바람이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정책 제안에 대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이전부터 원자력에 대한 그린라이트를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어 장단과 완급을 조절해 국정에 녹여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만 특정 분야 종사자가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제 3자가 본다면 영 ‘비합리적’인 이야기로 들릴 공산이 크다. 원자력계의 중지를 모아 합리적으로 만든 정책 제안서라고 하더라도 되짚어 볼 만한 부분이 있을지 다시 쳐다보게 된다.

지금은 시계추가 달린 괘종시계를 좀처럼 보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괘종시계는 집집마다 가족들의 생활 패턴을 친절히 리마인드해 주는 장치였다. 필자의 집에도 언젠가 아버지께서 괘종시계를 사 들고 오셨다. 시계 전면의 유리문을 열면 시계추가 가운데 멈춰 있는데, 이것을 적당한 기울기로 한쪽으로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인다.

째깍이는 소리가 왠지 중독성이 있었다. 한번은 시간이 좀 더 빨리 갈까 하는 호기심에 시계추를 한쪽 끝까지 높이 들어 올렸다가 놓았던 적이 있는데 크게 흔들리면서 시계추가 떨어져 나갔다. 필자의 좁은 시각이려나 싶지만 세상의 많은 것이 시계추처럼 움직인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이 있다. 일부러라도 이쪽을 좀 밀어줄 필요도 있고 저쪽을 좀 당겨줄 필요도 있다.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의 과정일 수도 있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강제로 시계추가 움직일 수도 있겠다. 시계추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반대 방향을 향한다. 한쪽으로 많이 기울면 점점 단점과 부작용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그러면 다른 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영원히 한쪽에 붙박이처럼 들러붙어 있는 시계추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좌우로 움직이는 시계추가 필자는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좌우로 유연하게 그리고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시계추야말로 영원의 시간을 미래로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대신 누군가 인위적으로 잡아당기게 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고 심지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치닫게 될 것이다.

전력정책, 큰 틀에서 이뤄져야

그런 의미에서 원자력을 포함한 전력 정책의 모든 요소들이 합리적인 시계추의 한쪽을 맡을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세 가지를 제시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전력, 나아가서는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수급을 최우선으로 하되, 이에 대한 방법은 지니고 있는 옵션을 활용한 믹스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은 정교한 분석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효과를 높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이고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에는 결국 리스크의 분산이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 전력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각각의 옵션에 대한 미래를 너무 단정적으로 예단하지 말고, 어느 정도는 보존하면서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논의가 전력 수급 전문가 간에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에너지 안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원전의 가동을 결정했거나 건설을 기획한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 역시 안정적 수급을 이야기 하지만, 어차피 국내에 원료 생산 및 가공시설이 없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복잡하고 애매한 경우에는 간결한 원칙이 작동한다.

두 번째는 전력 정책과 관련된 옵션들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시장을 성장시켜 달라는 것이다. 믹스를 통한 판은 깔았으니 플레이어들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비전제시가 필요하다. 언제든 좋은 아이디어라면 경쟁할 수 있는 R&D 체계를 만들어 주고 투자와 실증이 쉽지 않은 전력산업인만큼 규제샌드박스에 대해 고민하기를 바란다. 전력산업은 단순히 발전원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송배전, 부가서비스, 심지어는 외교 통상과도 관련이 있다. 서로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2인 3각으로 움직여야 산업을 지탱하는 약한 고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한울 3 · 4호기의 건설재개나 계속운전의 경우 원자력 산업계에 잠시나마 봄바람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한시적인 수명의 동아줄이다. 지난 5년간 원자력 산업의 주축이었던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했겠지만 민간, 특히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폐업했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유출되고 전공분야에 대한 자긍심이 말라갔다. 이런 현상은 당장의 자구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방향성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비전 제시와 시장이 있다면 민간 자생력이 스스로 커갈 것이다. 이 대목은 원자력계의 중요한 책임이다. 어려운 상황이 될 때마다 정부를 화수분처럼 보고있는 태도는 이번 기회를 통해 손절매 해야겠다. 원자력 기술력을 효과적인 R&D 계획과 추진으로 높이고 교육프로그램으로 인력을 양성하며 국내외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해 기술 신뢰도를 형성하는 등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원자력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원자력계의 당면 과제이다.

마지막은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현수막에 걸린 그 문구, ‘하나 되는 대한민국, 통합의 대한민국’을 실현해 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전력관련 분야에 있으니 여기는 왜 이리 진영논리, 편가르기, 남 탓 하기가 심할까 싶었는데, 뉴스를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이 모두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큰 틀에서의 움직임이 없다면 신재생이든 원자력이든 대한민국에서 버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서로의 아킬레스건은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고, 그것만 가지고 다투는 것이 부각된다면 국민들이 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할지는 명약관화하다. 아마도 해법은 건전한 소통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말은 쉽지만 이행을 위해서는 보통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지니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소통이다. 꼭 청탁을 받아줘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한걸음 진전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정치화 경계해야

지난 3월 25일 2018년 대비 40%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 녹색성장기본법이 시행됐다. 원자력계가 원하는 원자력 정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예전의 점유율로 회귀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나름의 합리성과 논리를 가지고 추진한 많은 일들이 있고 인정해야 한다. 어떤 원자력계의 부조화는 그 이전 정부에서부터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기승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탓이라는 것이 억지스러운 때도 있다.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와 같은 레토릭으로 점철되는 기술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대척점에 놓고 싶지는 않지만, 하는 수 없이 현실은 이들을 포함한 더 많은 이해집단이 시계추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 법률로서 보장되고 시행되는 그런 차근차근한 절차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새 정부에 바라는 원자력 정책이다.

허균영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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