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대한민국 에너지주권 실현의 디딤돌을 놓다
수소, 대한민국 에너지주권 실현의 디딤돌을 놓다
  • 조성경
  • 승인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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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기술 · 산업 · 인재 전략으로 기후강국 경제강국 외교강국 비상해야

국가 경쟁력과 국민 삶의 틀 짓는 에너지정책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탄소중심의 경제질서가 탄소를 지우기 시작했고, 어설픈 이념논쟁에 혼탁해진 에너지정책이 안보의 이슈로, 우리 삶의 문제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팬데믹은 여기에 속도를 더하고 있고, 기술혁명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에너지정책은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을 틀 짓는 토대를 구축한다. 에너지는 경제와 사회, 안보 그리고 삶의 방식과 상호작용을 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에너지정책의 목표는 명확하다. 탄소중립 기반의 ‘에너지주권’ 실현이다. 에너지주권이란 우리 스스로가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합리적 비용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바람직한 에너지시스템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고 국민 삶의 기본이며 과학기술 혁명의 성공조건이자 결과이다. 탄소중립 기반의 에너지주권 실현은 에너지시스템의 안정성, 안전성, 경제성, 회복탄력성을 담보로 한다. 에너지시스템은 단순한 기술시스템이 아닌 사회기술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시스템의 전환은 공학적 고려사항을 철저히 포함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 인프라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재생에너지, 석탄과 가스, 원자력 등과 같은 에너지원이 하나이고, 자동차와 건물, 철강, 화학, 정제된 화석연료와 같은 지초 재료를 생산하는 제조시설과 같은 에너지 사용자가 있다. 그리고 이 중간에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운반체가 있다. 우리가 당장 그리고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이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억제하거나 크게 줄이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에너지원과 에너지운반체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무탄소 혹은 저탄소에너지원을 사용해 청정 에너지운반체인 수소를 생성하거나 생물학적 물질을 액체 바이오 연료로 변환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에너지원과 에너지운반체가 분리되고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연료를 에너지저장과 운송에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솔직해져야 한다. 기후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 사용의 1/4은 화석연료가 책임지고 있으며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제로가 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때 배출되는 탄소는 포집과 격리, 혹은 재사용을 통해 상쇄하는 것을 전제한다.

지구 환경의 재앙적 피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전력의 사용을 크게 늘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탄소를 배제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수소는 재생에너지의 하나로서도, 전력 사용증가에 있어서도, 또 새로운 산업생태계 형성 과정에서도 자기 역할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기 우리가 수소를 전략적 솔루션으로 바라보게 하는 삼각지대다.

지속가능 경제, 사회의 핵심 퍼즐 수소

IEA(2021)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시스템을 혁신할 광범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에너지효율, 행동변화, 전기화, 재생에너지, 수소와 수소기반연료, CCUS 등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2050 탄소중립과 청정에너지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EU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공언과 전략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며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도전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수소는 바로 이러한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로의 전환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핵심 퍼즐 한 조각이다. 수소는 물의 전기분해 또는 SMR 즉 스팀메탄개질과 CCS로 탄소 발생 거의 없이 생산 가능하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블루소수 생산 공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최대 98%까지 포집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탐사나 운송 과정에서 유출되는 메탄, 포집한 이산화탄소 후속 사용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 간 에너지 유통이 가능하고 에너지밀도가 높아 장기 저장을 할 수 있다. 융통성 있는 청정에너지 벡터로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17개 국가가 수소전략을 발표했고, 20개 이상의 국가에서 수소전략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공표했다. 수소전략을 채택한 나라들은 최소 370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민간이 3,000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그러나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저탄소 수소공급과 사용에 1조 2,0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IEA는 추정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이 주도하고 있는 EU의 경우 2030년까지 재생수소 전해조 40GW 설치를 목표로 제시했다. 러시아는 Nord Stream2 가스관을 이용해 유럽으로 수소를 운송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지만 우크라이나 상황이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따라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캐나다는 1차 에너지 수요량의 27%를 수소로 충족할 전략을 세웠고, 칠레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용경쟁력이 있는 그린수소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뉴질랜드와 호주 역시 그린수소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호주는 2030년까지 아시아 시장 3대 수소 수출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은 종합 수소전략을 세운 최초의 국가이고, 중국은 전 세계 최대 수소 생산국이지만 대부분이 석탄에 의한 것이라는 맹점이 있다.

미국은 2005년 에너지정책법에 명시된 수소 R&D 프로그램을 2021년 초당적 인프라법에 의해 수정하고 향후 5년 간 95억 달러를 투입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Energy Earthshots Initiative의 첫 번째인 수소 샷(Hydrogen Shot)을 통해 현재 1kg 당 5달러인 수소 가격을 1kg 당 1달러로 8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북아메리카의 경우 수소와 관련해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으며, 여기에 규제를 동력으로 기술개발과 보급을 강조하고 있다. EU는 규제프레임을 수립하고 벨류체인 전반에 걸쳐 기술 실증을 지원하면서 재생수소 리더십에 주력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는 엄격한 공공가격과 성능요건 관리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목표를 정량화하는 것은 국가 전략의 중요한 요소이다.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수소모빌리티와 섹터커풀링 응용 분야에 대해 2030년 목표를 발표했다. 해당 국가들은 2030년까지 수소차 8,000만 대 이상, 수소충전소 2만 1,000개소 이상, 상용차 3만 대 이상 보급을 발표했다.

IEA에 따르면 화학 및 정유산업이 수소 수요 증가를 주도하면서 1975년 대비 4배 정도 늘어나 2020년 9,000만 톤에 이르고 있다. 화학산업에서 암모니아를 원료로 한 비료 생산에 총 수요의 65%, 정유산업에서 디젤연료의 황 함량 저감에 사용된 수소가 25%, 아직은 가격경쟁력과 인프라가 없고 기술 개발이 충분하지 못한 모빌리티 혹은 발전부문에서 1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가 탈탄소를 추구함에 따라 에너지믹스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소는 2050년까지 5억 8,000만 톤으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수소관련 이니셔티브 증에 따르면 세 가지 요인이 수소부문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LCOH(Levelized Cost Hydrogen, 수소균등화비용)의 감소다. 이는 지속적인 재생전력 가격의 하락과 제조활동 규모 확대에 따른 수소벨류체인에 필요한 CAPEX 감소, 또 유
럽의 Catapult 또는 Hydeal과 같은 전 세계 협업 플랫폼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기업에 이식되면서 시장의 압력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BP나 이탈리아 최대 국영 다국적 기업인 ENEL, 석유회사인 ENI 등은 이미 2050년 넷제로 전략을 발표했다. 또한 지속가능금융 같은 투자 분야 역시 기후변화와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기업으로 투자를 전환할 전망이다.

셋째, 청정수소 도입을 촉진하는 규제와 인센티브의 증가다. 청정수소는 초기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인 동력 제공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IAE는 그린수소 생산비용을 kg당 3~7.5달러로 평가했으며 수소위원회는 목표가격을 kg당 2달러로 설정했다. S&P Global Ratings도 2030년까지 kg당 2.5달러로 수소가격을 낮춰야 기존 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투자회사인 Natixis는 새로운 수소경제가 벨류체인 전반에 걸쳐 비용을 낮춤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수소 인프라에 3,000억 달러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석유경제 시즌2를 꿈꾸는 중동 국가들

MENA(Middle East & North Africa)는 아프리카 서북단의 모로코에서 중동 이란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른다. 석유와 가스가 풍부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MENA의 주요 금융강국이다. 이들 6개국은 1981년 GCC를 설립해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바로 이 GCC 국가가 청정수소로의 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동에는 높은 일사량, 강하고 일정한 바람, 넓은 면적의 토지에 힘입은 전 세계 최대이자 가장 저렴한 태양과 풍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GCC 국가들의 1인당 오염배출량은 세계 10위권이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7%를 차지한다. 이는 넷제로, 탈탄소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 열쇠로 부상하면서 최강 부국을 자랑하는 GCC 국가들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들 전역에 걸친 충분한 고품질 태양에너지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있다. GCC 국가들은 석유와 가스를 통해 축적한 탄탄한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 두 지역에 걸친 수출 요충지로, 석유와 가스 수출에 사용하던 기존 인프라에 노하우를 더하면 수소 운송 문제의 일부를 해결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석유, 가스산업과 수소산업 간에 직무와 기술 호환성을 활용해 잉여인력을 줄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중동 국가의 움직임의 물결은 여러 기업들로 확산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미쓰비시 파워는 수소와 천연가스를 3대 7의 비율로 섞어 작동하는 세 대의 가스터빈 발전기를 사우디프로젝트에 공급하고 있다. 지멘스에너지는 UAE 정부와 합작사업에 68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탈리아 ACME 그룹은 25억 달러 규모의 오만 두큼 특별경제구역 그린수소 암모니아 플랜트에 투자했다. 아일랜드의 전해조 제조업체도 레바논 건설사와 협력해 중동지역 그린수소 플랜트 개발에 합의했다. 2021년 3월 현대오일뱅크는 사우디 아람코와 블루수소 프로젝트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 액화석유가스를 수입해 국내에서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생산공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 저장해 사우디로 선적, 아람코에 공급해 탄소기반의 EOR(Enhanced Oil Recovery)에 사용할 예정이다.

또한 2024년까지 아람코가 생산한 블루 암모니아를 공급원료로 사용하는 LNG 보일러 설치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GCC 국가들은 현재 5,000~6,000만 톤의 수소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정유소와 암모니아 수요에 대응하는 SMR을 주로 활용하고 있으며 2020년 이후 그린수소에도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에 세계 최대 프로 젝트 중 하나인 암모니아용 대규모 2GW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네옴이 그린수소를 대규모 생산해 수출용 그린 암모니아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네옴은 위치의 이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재생에너지 가격과 태양광 및 풍력에너지의 결합이용률 70% 이상으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KG당 1.5~1.95달러의 수소 생산을 잠재한 네옴은 중동 지역의 최초 수소 밸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럽과 일본, 대한민국은 거대한 수소 미래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경우 자체 생산에 역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한계도 존재한다. 지리적 위치와 공간 가용성의 제한으로 태양광과 풍력을 활용하는데 제약이 있고, 산림 파괴를 포함한 자연환경과 생물다양성의 희생 가능성, 태양광 개발에 따른 농경지 피해, 해상풍력에 따른 어업활동과 해양자원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발전시설과 운송자산에 대한 사회문화적 수용성 역시 만만치 않은 장벽이다.

모퉁이에서 다시 피어나는 수소의 쓸모

IEA의 넷제로 시나리오에 의하면, 2030년 수소 생산의 70%는 저탄소 기술 즉 CCUS를 사용한 전기분해 또는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된다. 2050년의 경우도 사실상 모두 저탄소 기술에 기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해조 용량이 현재 0.3GW에서 2030년 850GW, 2050년 3,600GW까지 증가해야 하며 동시에 수소생산 과정에서 포획된 이산화탄소는 현재 1억 3,500만 톤에서 2030년 6억 8,000만 톤, 2050년에는 8억 만 톤으로 늘어나야 한다.

넷제로 시나리오에서 수소의 수요는 2050년까지 6배로 증가하는데 이 중 50%는 산업과 운송에서 발생한다. 최근 운송 분야의 진전은 괄목할 만한데 자동차용 연료전지 가격은 기술발전과 FCEV 판매 확대에 힘입어 2008년 이후 70% 하락했다. 대한민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노력은 2017년 FCEV 7,000여 대에서 2021년 중반까지 4만 4,000여 대로 6배 이상 끌어올렸다. 2017년에는 모든 FCEV가 승용차였으나 최근에는 전기차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버스와 트럭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철도, 선박, 항공에서 수소기반 연료 사용을 위한 여러 실증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2018년에는 알스톰이 개발한 수소열차가 독일에서 100km 노선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후 열차 2대가 18만km 이상 운행됐다. 2020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정기 여객열차에 수소열차가 포함돼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시범 운행 중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역시 수소열차를 주문해 놓은 상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단거리 선박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수소연료전지 선박의 경우 현재
시연 중이거나 향후 몇 년 안에 600kw~300MW 급이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대형 해양선박용 연료로서의 수소기반연료 역시 주목받고 있다. 항공 부문의 경우 1,600km 비행에서는 수소연료전지를, 그 이하에서는 수소 연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NOx 배출을 제어하는 장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인도 존재한다.

운송 부문은 최종 에너지 수요의 25%,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0%를 차지한다. 운송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90%는 석유제품이다. 운송에 수소를 도입하려면 FCEV와 함께 인프라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수소가 전기차에 비해 장시간 무거운 화물 운송에 유리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중대형 트럭 등에 초점을 두고 고압 수소충전소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액화수소 활용과 관련한 파이프라인 개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의 탈탄소화는 매우 중요하고도 복잡하다. 이를 위한 최근 몇 년 간의 노력은 재생에너지의 확산을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이 동반돼야 하며, 전력망의 혁신이 반드시 수분돼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향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변동하는 수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의 능력이 대폭 향상돼야 한다.

최근 Form Energy가 최대 100시간까지 저장하는 철배터리 생산에 성공했으나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은 갈 길이 요원하다. 수소는 에너지저장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는다. 잉여에너지를 수소로 변환해 필요할 때까지 저장했다가 수요가 있는 전기로 되돌려 사용할 수 있다. 수소의 장점 중 하나는 확장성으로, 특히 계절적 저장이 가능해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

미쓰비시파워는 미국 유타주에서 유틸리티 규모로 생산된 그린수소를 지하 소금굴에 보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으로 세계 최대의 에너지저장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관련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Hydrogen Council은 수소가 500TWh 이상의 전기를 변환해 저장함으로써 재생에너지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산업 분야의 탈탄소화에 수소 기술은 핵심 축이다.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의 기술 수준이 초기 단계로 지속적 개발이 진행 중이다. 산업은 최종 에너지수요의 38%,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6%를 차지한다. 특히 철강과 화학분야에서의 수소 기술 적용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스웨덴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저탄소 수소를 이용해 무탄소 철강 생산 시범 사업을 가동했다.

스페인에서는 암모니아 생산에 수소사용 시범 사업의 시동을 걸었다. 시멘트나 세라믹, 유리 제조 등에 수소를 사용하기 위한 실증사업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과 난방부문에서의 수소와 연료전지 사용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수소는 난방에 사용되는 천연가스의 일부와 혼합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여건에 따라 기존의 천연가스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 개선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6년부터 영국 북부의 리즈 시는 지역 가스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100% 수소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만약 성공할 경우 2035년까지 약 370만 가구와 사업장에서 천연가스 보일러를 수소호환 장비로 교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분야에서도 순수 수소로만 가동되는 가스터빈의 공급을 2030년까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소가 전력생산의 주 연료가 되어야할 필요성과 가능성 측면에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전력생산의 또 다른 옵션으로, 수소의 쓸모 차원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수소는 대규모 운송이나 산업 부문 등 오염 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산업의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탄소중립 경제를 이룩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2021년 중반까지 수소 로드맵을 발표한 30여 개국은 이미 700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수소경제에 투입했다. 이에 관련 업계는 200개 이상의 프로젝트와 투자 계획으로 화답했다. 계획이 실행된다면 2030년까지 3,000억 달러 이상의 민간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이러한 예산이 모두 투입될 것인가는 어느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다만 한껏 부풀었다가 바람 빠지고만 과거의 수소경제 주장과는 달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수소를 미래 주요 수익 창출원으로 주목한다는 점과 실제 이를 위해 선투자를 계획한다는 점이 수소경제의 가능성에 터보엔진을 보태고 있다.

수소경제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강제당한 기회

쟁취한 기회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은 자원빈국으로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석유경제에서 벗어나 새 경제질서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강제당하고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재생에너지 경쟁력도 약하고 기술력도 아직은 외곽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수소는 아직 전 세계 어느 나라에게도 헤게모니가 주어져 있지 않다. 석유와 달리 자원만 풍부하다고, 기술력만 있다고, 여건만 훌륭하다고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니라 입체적 협업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오히려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이후 세계 최초 단독 수소법을 제정하면서 정책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당시 목표로 제시한 2022년 수소 연료전지 1GW, 수소충전소 310개소, 수소차 6만 7,000대 보급은 여전히 빨간 불이다. 2021년 11월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수립했으나 2030년 이후 장기 목표를 명시했을 뿐 ‘어떻게’는 모호한 게 사실이다.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외치는 거다. 정책의지를 표명하고 출발했다는 것은 가능성이고 동력임에 틀림없다.

유발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세기 제언에서 호모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데서 나온다고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수많은 이방인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허구의 이야기를 발명하고 사방으로 전파해서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 이야기를 믿도록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허구를 믿는 한 우리는 다같이 동일한 법을 지키게 되고 그럼으로써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좋든 나쁘든 허구는 인류가 가진 도구들 중 가장 효과적인 것에 속한다.

수소경제는 우리가 더욱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을 제공하는 착한 허구에 해당할지 모른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 왜곡이 지나치면 행동도 비현실적이 되면서 오히려 힘을 잃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원빈국 노력강국 대한민국이 석유경제 시즌2를 거부하고 기후강국, 경제강국, 외교강국으로 비상하기 위해 바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수소를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발휘할 산업으로 특정해야 한다. 이미 전 세계 경제질서가 바뀌고 있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 경쟁력을 갖고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모두 결집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수소산업은 생산-유통-활용에 이르는 벨류체인이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어느 하나가 불균형을 이루면 선순환 구조는 무너진다. 따라서 전 분야 동시 육성이 중요하다. 관건은 시간이다. 세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조기에 수소산업 생태계 조성이 필수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가 갖고 있는 산업적 역량과 기업의 잠재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 및 전문가들과 심층적이지만 신속하게 논의를 거쳐 수소산업 생태계 마스
터플랜을 설계하고 실행에 돌입해야 한다. 그림은 크게 그리되 실행계획은 촘촘해야 한다.

둘째, 수소를 에너지주권 확보에 중요 수단으로 인정해야한다. 자연 여건 상 대한민국이 수소 수출국이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 수준이다. 그렇지만 현행 계획처럼 80%를 수입하는 것은 우리에게 강제된 기회를 또 다른 강제로 떼버리는 것과 같다. 바늘구멍을 늘리거나 낙타를 작게 해보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린수소만이 정답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IHS에서 발표한 2022년 10대 청정기술 동향에 따르면, 2021년 이미 CCUS 산업의 부흥이 신호탄을 올렸고 여러 산업과 공장에서 CCS를 탈탄소의 실행가능한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9월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제거를 위해 설계된 세계 최대규모의 공장인 오르카가 아이슬란드에서 가동을 시작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자체를 억제하는 것과 함께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격리하거나 제거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블루수소, 핑크수소, 청록수소의 경쟁력을 이미 갖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어떠한 규제와 인센티브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효과적으로 개발,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셋째, 수소사회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안전 신뢰를 두텁게 해야 한다. 수소경제, 수소사회는 저 멀리 있는 종착지에 해당하지만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이고 또 가다가 경로를 완전히 바꿔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발굴되고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길은 정부가 윽박지른다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 우리가 이 길을 가고 있는지 공감하고, 최소한 이 과정에서 안전을 위협받는 일은 통제될 것이라는 신뢰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메타버스를 통해 수소사회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메타버스는 단순한 가상공간을 넘어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사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실제 미니 수소도시를 구축하고, 미니수소 도시를 연결해 수소밸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니 수소도시는 지리적 장소 하나에 수소 생산, 저장과 유통, 활용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결합을 통해 수소특화된 지역을 말한다. 수소밸리의 경우 국민들의 공감과 신뢰를 확산하는데도 기여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운송 비용을 줄이며, 생산비를 낮추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위험 분산을 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의 신뢰도 촉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수소밸리에 따른 규모 확대는 인접산업 또는 장비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넷째, 강력한 국제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수소경제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수정하고 광범위한 확산을 막는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표준 및 인증체계가 필요하다. 국제 기준은 국내 표준에 영향을 미치고, 국내 표준은 대한민국의 수소산업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일본이 주도해 온 수소에너지 장관회의를 비롯해
글로벌 수소 파트너십 등 여러 양자 및 다자협력 합의와 이니셔티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강력한 조정자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통상과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소를 담당하는 외교와 통상기구 내지 조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갈까 말까를 망설일 시기가 아니다. 어떻게 갈 것인가,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최대한 얻을 것인가에 몰두해야 한다. 수소만이 답이라는 게 아니다. 해답의 하나로서 수소를 인정하고 나아갈 때 현실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출발점으로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목표지점으로 수소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시작하는 바로 지금이 기후강국, 경제강국, 외교강국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다.

조성경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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