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의 현황과 신정부 정책 제언
에너지 안보의 현황과 신정부 정책 제언
  • 박호정
  • 승인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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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너지 안보위기의 발생원인

언제부터인가 에너지 안보라는 용어는 정책수립 단계에서조차 금기시되어 왔다. 이명박 정부 때의 무리한 자원외교가 빚은 후폭풍이었다. 당시 고유가 상황에서 진입한 자원개발 시점도 문제였지만 실무협상을 시작과 마무리하기도 전에 국가원수가 해외 자원개발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우리 스스로 프리미엄 지불을 자초한 전략적 오류의 부작용도 컸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외자원개발과 에너지 안보는 주홍글씨가 됐다.

하지만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급격하게 가속화되고 있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되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좌우 진영, 진보 보수 진영간 협상 카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럼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우선은 주요국의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에 따른 신규 화석연료 투자가 감소한데서 찾을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강화는 곧 화석연료에 대한 퇴출 시그널이었다. 짧게는 2030년, 길게는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경로가 발표된 시점에서부터 이미 화석연료 상류부문에서의 투자는 전방을 주시한 채 줄어들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투자는 30~40년을 두고 일종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을 갖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대규모로 화석연료 상류부문에 투자할 유인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반면 아직 수요는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수급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가격인상으로 연결된다. 중국의 경우 작년에 가스 수입이 20% 증가했고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인 2021년에 이미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을 3월과 12월 사이에 거의 6배 인상 폭등시키는 데 일조했다. 아울러 작년 영국 글래스고에 있었던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전후로 주요국이 일제히 탄소중립 노선을 발표했던 것도 에너지 생산국에 상당한 부정적인 시그널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최근 OPEC플러스와 미국 중심의 서방 국가와의 불협화음을 들 수 있다. 올해 초 국제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서방에서 OPEC플러스의 증산을 요청했지만 결국 작년에 약속한 일일 40만 배럴 이상은 증산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올해 1월까지의 에너지 가격 증가는 다분히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성격이었다고 한다면 2월에는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워플레이션(warflation)이 추가로 진행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주요 에너지 및 광물 생산국이자 농산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생산차질은 전 세계적으로 물가 폭등과 물류대란으로 연결되고 있다. 4월 기준으로 WTI는 배럴 당 100달러 대에 안착했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중심으로 우리나라까지 동참해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함에도 불구하고 유가 인하효과는 단시일에만 나타날 뿐이었다.

하루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은 약 1억 배럴이며 이 중 10%인 1,000만 배럴의 공급을 맡고 있던 러시아 석유가 전면적으로 수입금지 될 경우에는 유가인상 압력은 더욱 장기화될 전망이다.
워플레이션은 에너지 부문에만 타격을 준 것이 아니다. 천연가스는 비료 생산비용의 약 75~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비료 가격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직전의 톤당 800달러에서 3월 말에는 톤당 1,300달러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이는 국내의 무기질 비료 상승으로 연결돼 식량 안보와 국민 먹거리에도 영향을 끼치게 됐다.

지정학적 게임 틀의 변화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위기가 해소되고나면 에너지 가격은 다시 과거 수준대로 낮아질 수 있을까? 에너지 물류 크런치도 해소되고 수급에 큰 지장이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더 큰 비중을 둘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정치질서의 재편이 꿈틀대고 있었으며 우리는 앞으론 새로운 형태의 게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석유와 가스의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한 미국의 전략적 지위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에너지와 지정학 전략가이며 베스트셀러 저자인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이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중동 석유의 수입 의존도가 낮아진 미국 입장으로서는 주요 에너지 교역로의 정치 질서를 유지할 인센티브가 약화됐다는 것이다.

상당히 미국 중심주의 관점을 갖고 있는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잘못 진단한 내용도 많지만, 셰일가스 혁명 이후 지정학적 질서의 대변화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한편 미국의 국방부 부차관보를 지낸 엘르릿지 콜비(Elbridge A. Colby)는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자산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비용편익 분석에 근거해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에 대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선택해야 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동맹라인의 예로 이른 바 제1열도체인(First Island Chain)을 제시했다. 비용효과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따르면 한반도 안보 역시 부차적인 이슈로 전락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시각과 공유하는 그룹이 앞으로도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2050년이 되어도 우리나라의 에너지는 수소를 포함해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때문에 에너지 주 교역로의 안정적 확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에너지 확보를 국방과 국제관계 차원에서 냉철하게 평가함으로써 우리의 에너지 안보 역량을 위태롭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의 강화

에너지 사태가 쉽게 해소되지 않을 두 번째 이유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정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유지 내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유럽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수입선 다변화인데 여기에는 미국의 헨리허브 천연가스 수입이 주축을 이룰 수 있다.

다른 노력은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이다. 바로 이 두 번째 노력 때문에서라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에 소요되는 니켈, 리튬, 코발트 등 주요 광물자원의 가격은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IEA에 의하면 파리협정 목표달성을 위한 광물자원 수요가 증가하는데 2020년 대비 2040년 리튬수요는 40배, 코발트와 니켈수요는 25배, 희토류 수요는 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들 광물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증가하기 때문에 주요 보유국이 자원 무기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콩고의 코발트 광산 개발에 투자를 해왔지만, 콩고 정부도 자원 무기화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함에 따라 중국 회사인 차이나 몰리브데늠의 참여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자원 무기화나 주요 광물자산의 국영화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추가적인 광물자산 인수에도 난관이 될 것이며, 광물 가격 측면에서도 부정적일 수 있다.

에너지 안보 역량 제고를 위한 정책 제언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에너지 안보 이슈가 지금에서라도 다시 주목받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근본적인 전략 재구성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 자원개발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주식으로 따지자면 ‘패닉 바잉’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기 보다는 지금과 같은 에너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더욱 더 냉철하게 전략 틀을 수정하고 근본부터 변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첫째, 앞으로는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의 주체가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자원개발은 투명하고 개방된 시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보전술과 게임이 요구되기에 매년 경영평가를 받는 공기업에서 추진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시장상황을 신속 유연하게 반영해 전략을 수정할 수 있으며 또한 자원보유국에 딥플레이 할 수 있는 민간의 역할이 부각돼야 할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 역시 처음에는 정부 주도의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패했다. 이후 주요 민간상사와 INPEX 체제를 통해 성공적인 자원개발 성과를 이룩해내고 있다.

둘째, 공적섹터는 해외자원개발의 직접투자 대신에 기술개발, 금융과 세제지원, 자원보유국 관련 정보제공, 외교관계 수립 등에 더욱 역할을 둬야 할 것이다.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정부의 특별융자 예산 규모를 보면, 2015년의 1,437억 원에서 2021년에는 349억 원으로 급감했다. 높은 위험과 대규모 장기간 투자 성격을 갖는 자원개발사업의 리스크를 분담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본 제도는 향후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융자 및 심의절차 간소화를 위한 규제철폐 방안 역시 검토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각 부처나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ODA도 자원개발과 종합적으로 연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셋째,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평가는 단기보다는 장기적 성과에 집중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와 태평양 지역에서 자원개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은 그들의 격언인 ‘삼척 깊이 물이 얼기 위해서는 추운 날 하루로 되지 않는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미국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에너지 자원확보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한 공통의 국정 아젠다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매년 경영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의 공기업이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사업에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 석유가스개발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시경제 모형으로 분석한 필자의 연구에서는 이들 분야의 꾸준한 투자를 통해 GDP가 약 0.47% 증가한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에너지기본계획 등을 통해서 국가 에너지 정책에 에너지안보 정책이 명시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지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반영된 PNG 방식의 가스 도입과 남-북-러 노선의 동북아 수퍼그리드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전을 볼 때 수행하기 힘든 과제로 여겨지는 바 4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는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지역의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서의 퇴출은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신중히 판단돼야 한다. 일본이 사할린2 프로젝트의 철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향후 ESG에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전략광종도 반드시 포함함으로써 이들 광물 자원에 대한 개발 투자 인센티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 1대에 생산되는 희소광물은 약 4배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전기차나 배터리, 그리고 태양광 등 탄소중립에 긴요한 필수광물인 망간, 니켈, 코발트 등의 개발행위가 ESG로 인정될 때 금융지원도 수월해질 수 있다.

끝으로 국내에서도 에너지 광물자원 트레이딩을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형 상품거래소의 설립도 검토돼야 한다. 전 세계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고통 받고있는 상황에서 2022년 1분기 폭스바겐의 영억 이익은 85억 유로였으며 이 중 35억 유로는 니켈과 같은 광물자원의 트레이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폭스바겐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의 대부분 제조사, 심지어 석유나 가스의 상류부문 개발사들은 물리적 재화의 거래뿐만 아니라 리스크 헷지 차원에서 상품거래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석유와 가스의 수입 대국으로 그동안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오일허브에 투자하며 고도정제화 시설 투자를 통해 에너지 상품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트레이딩 기능이 필요하며 그 플랫폼으로서 상품거래소(예를 들어, KCX: Korea Commodity Exchange)를 제안할 수 있겠다. 거래소에서는 전기선물, 원유 및 석유제품, 천연가스 뿐만 아니라 배출권, 그리고 향후 수소까지 거래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자원 개발은 장기적으로 긴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할 부분이며 이의 역량확대는 궁극적으로 에너지 안보 역량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로 급상승하는 에너지 시장에서 패닉 바잉하는 실수는 우리가 과거의 뼈아픈 경험으로 볼 때에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 주요 대기업 등 민간부문은 배터리, 수소 등 분야 투자를 위해 해외 광물자원 확보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나 공기업이 너무 앞장서서 개발주체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민간이 그 역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측면과 후면을 지원해주는 역할 구분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돼야 할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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