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위기 속 구원투수, 원자력
이중 위기 속 구원투수, 원자력
  • 문주현
  • 승인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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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지난해 8월 초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기계실이 침수되면서 아파트 전체가 정전됐다. 잠시 후 수돗물이 끊겼다. 수돗물이 끊기자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이동 통신망은 끊기지 않아, 아파트 주민 단톡방을 통해 정전 관련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배터리가 소진될까 노심초사하며 핸드폰을 가끔 켜 정전 소식을 확인하며, 깜깜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돼서도 전기공급은 재개되지 않았다. 전기레인지가 안 되니 아침 식사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전기 포터도 마저 작동되지 않아 컵라면에 부을 물도 끓일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했다. 식사도 식사지만,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니 씻는 것은 물론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했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니,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득한 집안은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전기가 사라진 지 10시간도 안 돼, 보금자리였던 집은 더 이상 머물기 힘든 콘크리트 건물로 변해 있었다. 전기공급이 언제 재개될지 확실치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는 다른 거처로 옮겨야 했다. 짐을 싸 문밖을 나섰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었다. 짐을 둘러메고 가쁜 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전기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지금 우리는 일상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회‧경제활동을 전기에 의존한다. 삶의 질이 높아지며, 우리 가정에서는 더 많은 전자 기기를사용한다. 전기자동차도 늘어난다. 우리가 출퇴근이나 통학할 때 타는 지하철과 기차도 전기로 움직인다. 도로 위 신호등도 마찬가지다. 사무기기가 있는 사무실,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도 전기를 필요로 한다.

또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기업과 기업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는 초연결 디지털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안정적 전기공급이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다. 전기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대정전이 일어나면, 우리의 일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국가 시스템은 마비돼 큰 사회적 혼란과 천문학적 피해가 초래된다.

에너지 이중고(二重苦)

앞으로 우리 사회의 전기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질 것이다. 심화하는 기후 위기와 사회발전이 전기수요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수요 절감 노력만으로는 늘어나는 전기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수요에 맞춘 안정적 전기공급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두 가지 큰 난제에 부딪혔다. 하나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며, 다른 하나는 작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위기이다. 심화하는 기후 위기는 인류 공멸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연대해 대처해야 할 최대 현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중간 목표로 2021년,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을 수립한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내 산업, 건물,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CO2eq)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각각 14.5%(2억 6,050만 톤(2018) → 2억 2,260만 톤(2030), 32.8%(5,210톤(2018)→ 3,500만 톤(2030), 37.8%(9810만 톤(2018) → 6,100만 톤(2030) 감축해야 한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기업인 우드맥킨지는 우리나라의 3대 부문(산업, 건물, 수송)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해, 전기화와 수소(水素)화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또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기본계획(2023~2032)’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전략 중 하나로 ‘에너지시스템의 전기화’를 택하고, 3대 부문의 전기 사용 확대를 위한 맞춤형 기술개발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기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기는 석탄, 석유, 우라늄 등 1차 에너지를 전환해 만든 2차 에너지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한다.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3%다. 금액으로는 약 896억 달러다. 이도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위축돼 전년 대비 약 32% 감소한 금액이다. 해마다 변하지만, 에너지 수입액은 대략 우리나라 총수입액의 1/4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전기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수 없으며, 지정학적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여건도 불리하다.

지난해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에너지 수급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 전쟁으로 벌어진 에너지 수급 대란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2022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도 급증했다. 2022년 1~10월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84.3% 증가했다. 3대 에너지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7.4%에서 2022년 1~10월 25%로 7.6%p나 상승했다.

원자력의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

이 두 가지 난제를 한꺼번 풀 수 있는 것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밖에 없다. 전기는 소비자가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효용가치가 높지만 간헐성이 문제인 재생에너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자연조건이 허락할 때만 발전할 수 있고, 소비자가 필요할 때 전기공급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이 꼭 필요하다.

원자력은 다른 발전원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다. 전기생산에 사용하는 에너지원의 탄소 배출량은, 발전(發電) 과정 뿐만 아니라 발전소 건설, 연료공급 및 발전소 정지 후 폐쇄·해체까지 ‘발전 생애주기(Life-cycle)’ 동안 배출하는 탄소 모두를 포함해 평가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채널(IPCC)’이 발표한 발전원별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중앙값)이다. 원자력은 타 에너지원에 비해 비축성이 뛰어나 국내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에너지 수급 비상에 대비해 주요 에너지를 비축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 기준 1억 4,600만 배럴 규모의 비축 시설에 9,670만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111일분에 해당한다. 가스도매사업자는 ‘천연가스 비축의무에 관한 고시’ 등에 따라 천연가스 9일분 이상을 비축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발전소 연료인 농축우라늄 2.7년분을 비축하고 있다.

원자력도 핵연료 제작을 위해 우라늄을 수입해야 하지만,이 핵연료를 원자력발전소에 한 번 장전하면 4년여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원자력발전 비용 중 연료비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원전 설계, 건설, 운영은 국산 기술로 다 할 수가 있어, 원자력은 준국산 에너지로 간주할 수 있다. 원자력을 국산 에너지로 간주하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10%가량 줄어든다. 이것이 1973년 석유파동을 겪은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추진했던 이유다.

원자력발전소 가동 현황

2022년 12월 기준, 33개국(대만 포함)에서 42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는 25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뒤이어 세계 5위권이다. 이들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국내 총 전력의 30%가량을 생산한다. 그 밖에도 3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2009년에는 1기의 연구용원자로를 요르단에 수출했고, 4기의 상업용 원자로를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수출했다.

2022년 11월,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의 정산단가는 킬로와트시당 48.9원이었다. 유연탄은 176.5원, 무연탄은 253.9원, 천연가스는 294.2원, 태양광은 250원, 풍력은 237.7원이었다. 우리나라가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데 원자력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는 국내 산업경쟁력의 원천이자, 우리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토대다.

위기의 구원투수, 신한울 1호기

지난 12월 7일 신한울 1호기가 2010년 4월 착공한 지 12년 만에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신한울 1호기와 같은 원자로형인 APR-1400을 건설한 UAE 1호기가 2012년 착공해 2021년에 준공한 것에 비하면 3년이나 더 걸렸다. 과거보다 2배가량 긴 인허가 기간이 그 이유다.

신한울 1호기는 진정한 국산 원전 1호기이다. 1980~1990년대 원전 기술 자립 및 고도화 과정에서 미처 국산화를 이루지 못했던,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과 원자로 냉각재 펌프를 모두 국산화해 신한울 1호기에 처음 적용했기 때문이다. APR-1400은 미국과 EU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았다. 과거 일본과 프랑스가 미국에서 설계인증을 받으려다 실패했지만, 우리나라는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APR-1400은 미국과 EU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아 안전성을 검증받은데다, 완전 국산화까지 이룸으로써 수출경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현재 체코에서 한국, 프랑스, 미국이 원전 수주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이 수주전에서 신한울 1호기로 증명된 기술력은 체코 정부와 산업계를 설득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신한울 1호기는 혹한기 안정적 전력공급에 톡톡히 역할을 할 것이다. 신한울 1호기 연간 발전량은 이용률 85%를 가정할 때 약 1만 424GWh이다. 신한울 1호기 상업 운전으로 국내 전력 공급능력은 109GW가 됐다. 지속된 한파로 난방수요가 몰리고 폭설로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하면서, 지난해 12월 23일 11시 전력 수요 최대치가 94.5GW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력예비율은 10%를 상회했다.

또 신한울 1호기는 한전 적자를 줄이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산단가는 매일 변하지만, 2022년 11월 정산단가(LNG 가스발전 294.2원/kWh, 원자력 48.9원/kWh)를 기준으로 했을 때, LNG 가스발전 대신 신한울 1호기를 가동함으로써 한전이 기대하는 연간 절감액은 2조 5,600억 원이나 된다.

원자력 전망과 과제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통해 원자력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이용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탈원전 국가인 독일도, 당초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었지만, 올겨울 전력난으로 그 계획을 뒤로 미뤘다. 벨기에도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었지만, 그 계획을 2036년으로 연기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탄소 배출 감축과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전력난 해결을 위해 원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현을 향한 기본방침’을 지난해 12월 확정했다.

에너지 자원 빈국이면서 에너지 다소비국인 우리나라가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국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산화율이 높은 에너지원 이용을 확대해야 한다. 원자력이 바로 그중 하나다.

원자력 이용 확대는 안전성과 핵비확산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지금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기술개발은 지속되어야 한다. 또 국민과 세계인이 우리 원전을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더 안전하고, 더 경제적이며, 더 핵비확산성이 큰 신형원자로 개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원전이 세계 곳곳에서 건설 · 운영되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후 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말이다.

원자력 이용 확대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인 사용후핵연료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개념은 윤곽이 잡혀 있다. 전 세계 처분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수행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연구 결과를 토대로, IAEA는‘심층 처분’을 가장 적절한 처분방식으로 권고하였다. 심층처분은 사용후핵연료를 부식과 압력에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처분 용기에 담아, 지하 500m 아래에 건설한 공학적 시설에 묻는 방식이다. 심층 처분의 안전성과 타당성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되었다.

최근 핀란드와 스웨덴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일부 기술만 확보하면 언제든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처분장 부지확보와 관련해 사회적 수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처분장 확보 여부와 시기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이다. 지난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됐으나, 여 · 야간 갈등으로 법 제정까지 이르지 못했다.

올해는 특별법이 제정돼,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원자력은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다. 더 이상 원자력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원자력을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원전 산업을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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