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 강원국
  • 승인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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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을 써야 할 때였다. 당시 고도원 연설비서관은 행정관인 나에게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를 읽으라고 권했다. 그 책이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책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방대한 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손에 든 책이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3년 가까이 쓰면서 가장 많이 썼던 단어 중의 하나가 ‘역사’다. 그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정의의 편에 서면 현실에서 잠시 죽지만 역사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었다. 역사를 믿는 사람은 패배가 없다고 믿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였다. 검사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 취급하자, 극중 노무현 대통령 역을 맡은 송강호가 이를 반박하는 장면에 이 책이 등장한다. '변호인'이란 영화 덕분에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때, 이 책을 다시 한 번 집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E. H. 카를 일찌감치 만났다.

‘역사’는 그에게 최대 화두였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처음 한 연설인 3·1절 연설문에 한 구절을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불의가 패배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겠습니다’였다. 그것이 노 대통령이 내게 내린 첫 번째 지시였다. 그 후로 임기 내내 과거사 정리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진력했다. 그는 역사야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뿌리라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이 책에 주석을 달아 나를 가르쳐준 셈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강단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여섯 차례 강연한 것을 묶은 책이다. 강연 내용이 영국 BBC 라디오에서 전파를 탄 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역사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에드워드 카는 묻는다.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답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역사란 과거 사실(事實)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사실(史實)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된다고 말한다.

카에게 사실이란 생선가게 좌판 위에 올려놓은 죽은 생선 같은 게 아니다. 사실이란 때때로 넓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다. 역사가는 생선을 자기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요리하여 식탁에 내놓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포함된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쓴 역사가의 학문적·정치적 입장에 일차적 관심을 가져야하며,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좌판 위에 죽어 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은 과거이다.

여기서 카의 그 유명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나온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의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다.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역사는 결국 역사가의 해석을 의미하며,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에드워드 카는 또 묻는다. 역사는 우연적 산물인가, 필연적 결과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역사에서 결정론이나 우연은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결정론적 역사 인식이나, 우연한 사건으로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하나가 아닌 여러 원인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 상호 간의 관계를 찾는 것이 올바른 역사 해석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결정론적 역사 인식의 대표적인 오류 사례로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법칙을 든다. 과학적 법칙과 달리, 역사에서는 원인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사건이 일어난다는 법칙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또 ‘클레오파트라의 코’ 같은 우연적 요소에 집착하는 것 역시 경계한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넋이 나가 악티움 해전에서 진 것은 맞지만, 모든 왕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매료되어 전투에 패배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믿는 근거는 간단하다. 역사의 본질은 변화이자 운동이며, 진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늘의 관점에서 과거를 성찰하고, 기존 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함으로써, 그리고 현존 질서와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혹은 은폐된 전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 진보를 이루어 왔다고 분석한다.

결국 역사는 오늘의 잣대로 다시 재어지기 때문에 실패와 패배의 사건조차도 진보의 씨앗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카는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온 진보는 없다고 전제한다. 역사는 때로 이탈, 중단, 후퇴하지만 가장 급격한 후퇴라 할지라도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진보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격동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고 글을 맺는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에드워드 카는 대답한다. 지난 역사 안에 미래가 담겨 있다고.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해야 한다고. 그렇다. 살아 있는 것만이 거슬러 올라간다. 죽은 것은 그저 떠내려간다. 역사를 돌이켜 과거와 대화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강원국 작가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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