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에너지정책 방향성
트럼프와 에너지정책 방향성
  • 최호
  • 승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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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 전자신문 산업경제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이 다가오면서 세계의 눈이 그에게 쏠린다. 원유·천연가스 생산, 수출, 소비를 늘리고 환경 규제는 철폐한다는 공약을 그대로 실천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미국의 원유 개발과 기후변화 정책 기조가 바뀌면 그 파장은 실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최근 윤곽을 드러낸 트럼프 캐비닛(내각)과 그의 행보를 바탕으로 향후 미국 에너지 정책 방향성을 예측해 본다.

트럼프 캐비닛 “화석 연료 시대 다시 연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은 에너지·환경 분야 장관 후보를 ‘친 화석연료, 반 기후변화’ 인사로 채웠다. 기후변화는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과도한 환경 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고비판한 자신의 색깔을 대변한 코‘ 드 인사’다. 버락 오바마 정부와의 선긋기를 넘어 기존 정책 백지화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에너지장관엔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를 내정했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에너지부가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환경보호청(EPA) 청장 내정자 스콧 프루잇은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화력발전소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집단 소송을 주도했다. 최근 EPA 청장으로 내정된 뒤 “불필요한 EPA 환경 규제로 수십억달러가 낭비되는 것을보느라 피곤하다”며 자신이 수장으로 앉을 조직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취임 이후 화석연료 관련 규제가 대폭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석유·가스 개발을 감독할 내무부 장관으로는 라이언 징크 공화당 하원의원을 발탁했다. 역시 반 기후변화 인사다. 2014년 한 토론회에서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가중된다는 증거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반 기후변화론’대표주자다. 이 밖에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 내정자,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후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 후보 등 참모진 대다수가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 인과 관계를 부정하는 인물로 채워졌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후보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시절에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필요성을 공개석상에서 밝히긴 했지만 트럼프의 기조와 방향을달리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 면면을 살펴보면 화석연료 개발·수요 확대 의지가 한층 뚜렷해졌다. 화석연료 생산을 적극 늘리는 공약 이행은 물론 교통, 주택 등 생활 전반에 거쳐 화석연료 사용이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술 전문 조사업체 럭스리서치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향후 10년 동안 미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재보다 20%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는 “트럼프 내각 구성을 보면 미국 에너지 정책은 지금까지와는 방향성을 완전히 달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협정 탈퇴 안 해도 국제 공조 흔들릴 공산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서 또 하나 관심사는 파리협정 탈퇴 여부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기후변화는 허구”라고 주장하며 파리협정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리협정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국제 협약이다. 2021년 1월에 발효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
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골자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가 지켜야 하는 첫 합의다. 미국 의회는 올해 9월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법으로 파리협정을 이행하겠다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미국의 ‘공식’탈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리협정 탈퇴 규정을 보면 협약 당사국은 발효 직후 3년 동안 탈퇴할 수 없다. 탈퇴 의사를 밝혀도 1년 동안 공지기간이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이 4년인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 집권 기간에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협약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는 있다. 집권 4년 동안 ‘준비 기간’을 이유로 이행을 미룰 수 있다. 협약이 발효된다 하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필
요한 투자, 규제 등을 모두 백지화함으로써 무시할 수도 있다. 에너지부, 환경청 장관 후보자의 성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국이 파리협정 의무를 저버리면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소비 대국을 비롯해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이행 압력도 사라진다. 2020년부터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선진국들이 내놓기로 한 1,00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 출연 약속도 이행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짙다. 이로 인해 신재생, 전기차 등 온실가스 감축 대안으로 떠오른 에너지신산업 시장도 장기 부진을 겪을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39개국이 약 99억달러에 대한 공여 협정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최대인 30억달러를 공여하기로 약속했다. 트럼프가 최근 기후변화에 대해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보이는 것은 변수다. 환경운동가인 엘 고어 전 부통령을 접견하고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에너지신산업 미래는?
미국 차기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핵심은 미국이 보유한 풍부한 석탄, 원유, 천연가스 개발을 통한 산업 경쟁력 제고다. 미국 내 화석에너지 탐사·개발 규제와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생산을 막는 규제는 모두 철폐한다는 입장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장려한 조세 혜택 등 인센티브도 역시 휴지통에 넣겠다고 공언했다. 원유 생산량은 실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키스톤 엑스엘(XL) 파이프라인’프로젝트 승인 등 주요 공약이 모두 원유 생산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석탄 산업 부활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미국 석탄소비량 93%가 발전용으로 쓰이고 있고, 대안을 찾기 어려워 수요가 단기간 빠르게 증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등 에너지 신산업 시장은 축소가 불가피하지만 오히려 안정 성장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역발상 분석도 나온다. 한국 수출입 은행에 따르면 올해 미국 태양광 시장은 투자세액공제(ITC) 만료 전의 수요 집중으로 사상 최대인 12GW 기록했다. 중국 태양광 기업 진입이 막혀 있어 우리 기업이 주력 시장 역할을 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프로젝트 금융비용이 오르고 석탄 발전 폐쇄가 적극 이뤄지지 않는다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핵심 부품인 배터리 업계도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위축되면 피해가 예상된다. 원유 생산이 늘어나 저유가가 장기화되면 전기차 보급 차질도 빚을 수 있다. 강정화 수출입은행 조사연구위원은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신재생 등 기후변화 관련 시장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늘릴 수 있는 환경 규제 철폐 여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도 있다. 트럼프가 최근 기후변화에 대해 전향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표 기후변화론자인 엘 고어 전 부통령과 회동한 뒤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까지 말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테크업체 간담회에 초청했고, 이어 자신의 정책 자문 기구 역할을 할 ‘전략, 정책 포럼’회원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한병화 현대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미국 내 고용 창출 확대”라면서 “전기차, 신재생 산업 고용 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관련 산업을 무조건 홀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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