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산업, 새로운 돌파구 찾아야
전기산업, 새로운 돌파구 찾아야
  • 정만태
  • 승인 2020.0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❶ 개황
전기산업은 국가 전력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자본재산업으로 전·후방산업에 대한 높은 파급력을 가진 기반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전기산업은 기술적 특성상 고도의 기술 및 안전성, 신뢰성, 내구성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전기산업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인프라 역할은 물론 신성장 분야로서의 자체적 성장성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사회·환경 등 트렌드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국가에너지의 핵심 축인 전기산업도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필요한 시점이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중국의 발 빠른 추격과 규모 경제를 통한 저비용 경쟁 우위를 상쇄하려는 의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선진 기업들은 신모델 개발과 시제품 제작, 제조공정상의 효율화와 공급망 관리(SCM), 고객관리와 소비자 니즈 파악, 공급 제품에 대한 원격 관리 등을 통한 비즈니스 전략을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다. 종래 부분적 디지털화에서 전면적 디지털화 단계로의 이행이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스마트화 및 네트워크화는 산업의 정의 자체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수요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면서 비즈니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동시에 기존 산업의 시장 도태 리스크도 증대한다고 할 수 있다. 산업 전반에서 파괴적 기술혁신은 더욱 심화되고 기업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❷ 세계 동향 및 국내 업계 특성

먼저 세계 동향을 살펴보면 해외 선진 전기업체들은 2000년대부터 꾸준히 전략적 제휴 및 인수합병, 연구개발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시키고 친환경 전기기기 및 정보통신 기술융합에 의한 새로운 신시장 출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인 스위스 ABB, 독일 Siemens(지멘스), 일본 Hitachi(히타치) 등의 동향을 보면 ABB는 메가트렌드를 통한 신사업 발굴, 비즈니스 모델 확대, 인수합병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공장자동화 부문 글로벌 기업 B&R을 인수한 데 이어 전기화 분야에서의 입지 강화와 북미시장 접근 확대를 위해 2018년에는 전기화 솔루션 업체인 GEIS를 26억 달러 규모에 인수했다. 아울러 마이크로소프트사 및 IBM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전기기기 디바이스 뿐 아니라 디지털 제어시스템, 산업용 클라우드, 솔루션 및 서비스 제공까지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지멘스는 원가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전자구매 활용과 제품 비용 효율적 설계 작업 효율화 등의 세부 실행방안을 수립해 운용 중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해 2007년 제품수명주기관리(PLM, 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전문 기업인 UGS 인수를 시작으로 2015년 풍력터빈 제조업체인 가메사, 2016년 전자설계자동화업체(EDA) 멘토그래픽스 등 17여 개의 기업을 인수했다.

특히 독립 발전소, 엔지니어링, 조달 및 건설회사(EPC)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 및 솔루션과 관련해 전체 가치사슬(Entire Value Chain)에서 부가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전략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지능적 송·배전을 위해 저전압 및 배전전력계통 수준의 시스템부터 스마트그리드 및 에너지 자동화 솔루션에서 산업플랜트 및 고전압 전송 시스템용 전원공급장치까지 전반적 전력기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지멘스는 자체 연구개발비를 2014년 40억 달러에서 2018년 56억 달러 규모로 늘렸다.

히타치는 여러 사업부의 협력으로 상호간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통합 제품 및 서비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사업부는 송전 및 변압장비 사업을 IT와 융합해 시스템 사업으로 변모시키고 글로벌화를 통해 비용 효율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력인프라 관련 국내 수요가 많은 중국의 경우 2000년대부터 유럽의 선진 중전기기 업체들을 유치함으로써 자국의 기술 수준도 빠르게 높아져 우리나라와 기술격차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변압기 등 일부 품목에서는 ABB, 지멘스, GE 등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전기 분야에서 전력시스템이 복잡 다양화되고 변전소 및 구성기기의 고성능화, 고기능화, 고신뢰화, 무유지보수화에 대한 사용자의 요구조건이 증가하면서 변전설비의 감시·제어 및 보호에 필요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전력기자재 개발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신기후체제 협약에 따라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면서 기술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품의 친환경·콤팩트화, 초고압화, 초전도화, 응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 기기에 IoT기술을 접목시키고 세트제품 위주의 시스템 단위 공급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친환경·콤팩트화를 위해 SF6 저감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제조사의 효율성 경쟁 및 전력망 예측, 관리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전도 발전기, 초전도 케이블, 초전도 모터 등의 초전도 현상을 응용한 제품의 상용화가 촉진되고 있다. 기존 제품에서 마이크로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등의 응용 분야로 확대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한편 국내 전기산업의 특징은 전통 전기산업의 경우 시장은 한정적이나 관련 중소 제조기업은 많아 과당경쟁이 심한 편이다. 변압기 및 개폐기 분야의 경우 국내 경기 부진에 따른 투자 및 수요 감소, 내수시장 위축에 따른 과당경쟁이 나타난다.

연구개발 단계에서의 원천기술 개발 부족 및 중국산 저가 부품의 높은 수입 의존도는 산업경쟁력 약화의 가장 큰 요인이다. 핵심 원천기술 확보가 필요한 부품의 경우 선진국 수입에 의존하며 범용 부품의 경우 중국의 저가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소재의 안정적 확보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피뢰기의 경우 핵심소재는 전량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개폐기의 소재인 동 역시 가격 변동성이 심해 관련 기업의 경쟁력 저하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에너지신산업 분야는 부가가치가 큰 시스템설계 부문 기술 경쟁력이 취약한 편이다. 예를 들어 HVDC(초고압 직류송전) 및 마이크로그리드 분야의 경우 시스템 설계 및 엔지니어링 분야 기술 경쟁력 취약이 산업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단발적이며 협소한 국내수요는 에너지신산업 발전의 장애요인이다. ESS 및 EV 충전 분야의 경우 협소한 국내수요 및 낮은 산업의 수익성이 가장 큰 문제다. 반면 부품 분야는 높은 국내 기술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한 편이다.

ESS 산업의 리튬이온전지는 국내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EV 충전 부품 분야의 기술력 또한 매우 높은 편이다. 에너지신산업 부품 분야의 경우 기술경쟁력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의 진출비율이 타 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❸ 나아갈 방향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메가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전기산업을 과거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대응방향을 모색해 봤다.

첫째, 글로벌 가치 사슬 분석을 통한 전기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이 긴요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산업의 글로벌 가치 사슬에 대한 인식이 재조명받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R&D 기획 단계부터 서비스 단계까지 과정이 글로벌 단위로 확장된 개념이다.

글로벌 가치 사슬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기술 발달로 수송, 통신, 보관 및 저장 등 국제 교역에 필요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하락하면서 밸류 체인의 글로벌화가 증가했다.

국내 제조업의 경우 일반적인 국제 분업구조는 하이테크 중간재에 대한 대일 수입의존도가 높은 특징도 나타나지만 비용, 판로 등에 따라 미드 테크 수준 범용제품의 해외 의존도(중국, 베트남 등)도 매우 높은 편이다. 국내 전기(장비)산업의 중간재 투입물 중 해외 비중은 전기장비 20.9%로 나타났다(한국은행 산업연관표 2015년 기준).

특정국에 판로가 집중되어 있어 해당국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이슈가 발생할 경우 단기적으로 공급망 전체에 영향이 발생한다. 첨단 고부가치 중간재의 경우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조달하고 있는 구조이며 부가가치가 낮은 중간재는 노동·환경 등의 문제를 고려해 중국 등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기술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중간재의 경우 가격 효율성 및 납기 안정성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전기산업 생태계의 전반적인 실태 파악과 강약점 도출을 통해 전기산업의 중장기 발전비전이 수립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면 전기산업의 현황과 경쟁력 수준을 전문가 조사를 토대로 개괄적인 수준의 진단을 수행한 결과들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전기산업의 실태를 산업적 관점에서 주요 항목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전기산업 각 분야의 실적, 글로벌 가치 사슬 구조, 주요 제품 및 부품별 기술 수준, 가격 및 품질 수준, 거래기업과의 관계, 애로사항, 정책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전반적인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기산업의 생태계 및 현황 분석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년 또는 2~3년 주기로 전기산업의 특성 및 경쟁력 수준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전기산업 주요 업종에 미시적으로 접근한 DB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전기산업의 생태계 현황과 경쟁력, 유망 R&D 지원 분야 발굴의 정기적인 연구수행과 별개로 또는 병행해 전기산업에 종사하는 주요 기업들의 실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축적도 필요하다.

향후 전기산업의 발전 및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러한 일차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전기산업 DB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DB 인프라 구축은 전기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개발이나 산업의 현황, 문제점, 기술 수준 등을 언제든지 파악하고 진단할 수 있는 필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전기산업에서 갖고 있는 운영기술의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DB화해 제조 부문에서의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이를 이용한 새로운 솔루션을 발굴해 새로운 성장분야로 발전시켜야 한다.

단순한 자동화 추진만으로는 운영기술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숙련인력들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보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DB화해 새로운 제조 솔루션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전략이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책지원을 통해 전기산업 분야의 중소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다른 산업 간의 연계와 확장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전기산업의 업종별 세부 기술개발 필요성 및 개발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친환경화 및 에너지 절약, 글로벌 경쟁의 심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등 전기산업을 둘러싼 산업 환경의 급변으로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고 제품의 혁신 요구가 증대될 전망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요 업종의 기술 트렌드, 수요 변화, 경쟁력 수준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기술개발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수요와 공급기업간 기술개발 요구 분야, 기술개발 추진 방법 등을 수시로 수렴할 수 있는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넷째, 산업계는 산업 부가가치를 높이는 모듈화 및 시스템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그간 축적된 하드웨어에 대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서비스, 다기능 부품 등과 융합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 관련 업계는 소프트웨어와의 결합, 시스템 제품화 등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 제품-플랜트-인프라-통합서비스 연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테면 신흥국의 중대형 송배전 인프라 수주를 위해서는 수주 실적 확대와 서비스의 수직적 · 수평적 통합인 Total Solution Provider 모델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저개발 국가의 지역적, 기후적 특성을 고려한 지역화 전략도 필요하다.

다섯째, 전기산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업계의 과당 경쟁 구조 탈피를 위한 제품 차별화 전략 강화가 시급하다. 중소기업간 협업 및 제휴 활성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화, 대형화 촉진 및 M&A 활성화 등의 방안이 적극 강구돼야 한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메이저 기업들은 M&A를 통한 대규모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 IEC(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 국제 표준 제정 활동 및 컨소시엄, 제품 상호 인정 등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선진업체들은 HVDC시스템 수주를 위해 기자재와 케이블의 통합 공급 능력, 설치 및 시운전 역량을 확대시키고 있다. 파트너십 경쟁력을 위해 업체 간 기술통합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전력기자재의 주요 End-User로서 한전은 글로벌 가치 사슬 관점의 생태계 파악을 통해 국내 전력인프라 구축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1 · 2차 전력기자재 납품공급자의 기술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한전과 협력회사가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해 해외시장을 선점해나가야 한다. 전기업계는 우리의 강점인 IT기술과 융합한 전력 IT사업의 활성화 및 망 운용기술의 과감한 연구개발투자로 전기산업의 수출산업화를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여섯째, 기후변화 및 에너지 대응 차원의 친환경, 고효율, 지능형 제품에 대한 기술개발 역량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데이터, 5G, AI 기술이 주도하는 지능화 혁신단계로 순조롭게 진입해야 한다.

전기산업의 성장 역량 강화 차원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신성장 분야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히 분석해 신성장 부문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비즈니즈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해 국내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시장과 연계한 제품 및 시장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기업들은 수요의 성장성을 예상하지 않는다면 투자를 확대하기 어렵다. 국내시장만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산업계는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 제조 비전과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해외시장정보를 수집, 분석해 생산 공정에 이용할 수 있도록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진입을 확대할 수 있는 성장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산업계는 남북한 전기산업의 중장기 협력 방안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남북한 전기산업 협력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인도적인 측면과 잠재적인 한국 시장의 개발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남북한 전기산업의 협력은 북한 전기산업에 대한 기술 및 산업 정책적 지원과 우리 전기산업의 중장기적 구조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상호 다각적인 측면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설비 개보수와 북한 지역 발전소 신규 건설, 천연가스의 진입과 신재생에너지의 역할, 대북 송배전 투자 등의 협력방안들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