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탄소중립이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 정은미
  • 승인 2021.0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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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겪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높아졌다. 탄소중립은 사회적 · 제도적 대전환이면서 산업에 대해서도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메가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국가 간 탄소정책 및 온실가스 강도의 차이를 좁히고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s, CBA)을 추진하면서 탄소중립은 산업 경제적 이슈로 본격화하고 있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은 크게 7개 부문으로 구분되며 그 중 산업부문은 제조업과 건설부문을 포함해 총 36.7%를 배출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배출까지 추가한다면 3억 8,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므로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거의 55%의 비중을차지한다. 따라서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매우 도전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중장기는 물론이고 단기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의 글로벌 위상과 온실가스 배출현황

한국의 제조업은 GDP의 30%, 산출에서 50%, 수출에서 95% 이상을 점한다. 중국의 제조업이 GDP 비중이 29.1%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미국 11.3%, 일본이 20.4%, 독일이 22.7%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제조업의 위상과 역할은 매우 높다.

관광, 문화 등 서비스업이 성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의 경우도 GDP에서 점하는 제조업 비중은 각각 16.8%, 10.9%, 10.6%대를 차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나타나듯이 경제위기에서도 견조한 생산 활동을 유지했으며 회복이 빠르게 진행된 국가들은 대부분 제조업에 기반 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번에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코로나19의 충격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각국은 강력한 제조업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제조업은 다양한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은 세계 3위권, 자동차,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은 세계 7위권 내에 진입해 있다.

주요 산업에서 상위 1~3위 국가가 대부분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러시아 등 인구 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제조업의 선방은 강소국으로서의 경쟁력을 반영한다.

특히, 반도체 2위, 디스플레이 1위, 조선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첨단기술 및 제품, 여기에 뛰어난 공정효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제조업의 뛰어난 경쟁력과 산업연관 관계를 보여준다.

최근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는 한국 제조업의 높은 경쟁력을 반영해 주요국 제조업 경쟁력에 대한 평가에서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높은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산업부문에서는 철강, 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7개 산업이 산업부문 내 온실가스 배출의 78%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제조업 비중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고, 온실가스 다배출산업인 철강, 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초소재와 핵심부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 산업이 전기전자, 기계,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과의 산업 연계성이 높다는 점이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혁신과 연계로 산업의 대전환을 촉진해야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전사회적인 구조전환과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 여기에 세계 5위권의 제조업 강국인 한국으로서는 글로벌 리더로서 지속 성장과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합목적성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사회가 그린뉴딜을 추진하는 것이 탄소중립의 실현을 위해 성장방식을 바꾸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혁신역량을 높이는 것을 전제하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한국의 산업은 전후 방연관효과가 높은 구조적 특성상 특정 산업 혹은 공정의 변화만으로는 탄소중립과 지속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은 환경보호라는 소극적 접근보다는 적극적인 경제 · 산업정책 관점에서 면밀하게 준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에너지 · 온실가스 · 환경 부하가 높은 주요 산업이 혁신공정으로 전환하고 생산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 철강, 화학, 반도체, 전기전자, 기계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설비 및 공정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시에 전체 제조업에 소재 · 부품 · 장비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이므로 포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산업별 · 공정별 특성을 반영하되 새로운 제조업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공정과 제품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산업전환은 개별 기업 혹은 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범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기술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이 능동적으로 탐색 · 개선하면서 새로운 혁신역량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유럽은 국가별 R&D 뿐만 아니라 EU 공동으로 장기-거대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계의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P2X와 같은 혁신공정의 상용화와 시범사업을 정부가 선제적으로 추진하면서 연관된 기계 및 엔지니어링 업체를 참여시켜 혁
신공정과 설비의 공급역량을 성장동력화하는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저탄소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신뢰성 검증을 위해 이종 기술 · 산업 간 연계를 통한 기술개발과 활발한 적용을 촉진해야 한다. 핵심가능기술(Key Enabling Technology)의 제조공정에 대한 시범프로젝트를 추진해 기술의 효과성을 검증하고 이행에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AI, 빅데이터, 스마트에너지 기술 등 유망 핵심가능기술의 활용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계성을 갖고 추진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D.N.A, 산업지능화 기반의 스마트 공장, 스마트그린 산업단지 및 클러스터 조성 역시 집중적인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개별 산업 혹은 공정의 온실가스 저감도 필요하지만 순환경제 이행을 위한 제품의 전주기적인 접근이 보다 중요하다. 제품의 생산과정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부하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감축을 위한 기초체력인 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식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송, 건물, 소비 등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업과 소비자 모두 저탄소제품을 발굴하고 생산 비중을 높여나가는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환경표지 제품, 우수재활용 제품, 저탄소 인증제품 등 녹색제품의 생산과 소비 촉진을 위한 인증을 확대하고 관련 제품의 가격상승을 사회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넷째,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하고 설비를 정비해 저비용화를 추구해야 한다. 재활용 제품 이용 확대를 위해 재활용성이 높은 고기능 소재나 재활용 기술 개발, 설비 고도화, 폐기물 회수 경로 최적화와 함께 재활용 제품의 시장 확대를 도모하고 소각시설 배출가스의 활용을 위한 실증사업도 확대해야 한다.  생산과 소비뿐만 아니라 제품의 폐기와 재사용까지 모두 포함하는 전주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사회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산업의 기여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곧 제품의 디자인, 생산단계부터 재사용 · 재활용을 고려해 생산 · 소비 · 폐기 전 과정에서 환경 부하를 최소화하는 순환경제 플랫폼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폐기물을 재자원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고 높게 평가돼야 하며 정부, 산업계,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적극적 참여와 아울러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린인프라 확보 위한 로드맵 구축 선행돼야 탄소중립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정책 간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가 창출돼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전력, 수소 등 그린인프라의 충분한 공급과 적정가격 수준이 보장될 수 있는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 탄소중립의 추
진과정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그린에너지, 그린수소의 충분한 공급은 원활한 산업 활동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 직면한 우리 기업과 산업에게는 적정 가격수준이 보장돼야 탄소누출과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이와 함께 폐열 · 폐기물의 회수 · 이용 가능 여부, 탄소포집(CCUS) 활용 등에 대해 추상적인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도 투자하고 소비자들도 구매패턴을 정착시킬 수 있으며 사회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둘째, 금융 · 조세 지원을 구체화해야 한다.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기술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 금융을 활성화하고 적극적으로 세제지원을 해야 한다. 산업은행과 같은 정책금융, 기술보증 기관이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기술 · 제품 · 시설투자에 대한 지원을 통해 기업 투자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탄소 보험 상품개발을 장려해 손실 회피를 지원하고, 탄소펀드 조성을 확대해 탄소 저감 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신재생에너지 설비, 환경오염 저감 설비, 온실가스 감축 설비에 대한 투자 세액을 공제하여 친환경 시설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

탈탄소사회 이행과 친환경 · 저탄소 산업 육성을 위해 녹색금융 상품을 개발하고, 소비자의 녹색소비와 기업의 저탄소 생산을 위한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녹색 금융상품의 발행자 · 수요자를 위한 정교한 녹색 분류체계(Taxonomy)를 제시해 지속가능금융의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직접 투 · 융자, 펀드 조성, 녹색 채권 발행 등으로 탄소중립 전환 이행 초기의 위험을 해소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녹색 전환과 지속 성장이 공존하는 산업발전 경로와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2.0’이 수립돼야 한다.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는 발전경로를 재설정하고, 산업 내 제품구조의 재편과 아울러 산업 간 투입 산출구조의 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탄소중립을 위해 단기에도 산업, 투자, 통상, 연구개발, 환경 정책 간 연계성과 통합성을 가져야 한다.

대전환을 위한 집중적 · 전략적 재정투자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과 고용 창출을,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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