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세대
질문하는 세대
  • 박경민 기자
  • 승인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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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기심으로 충만해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궁금한 시절을 경험한다. 고정관념이 채 형성되지 않은 시기인만큼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도 않고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골똘한 생각에 잠기는 것도 흔하다. 당연한 것은 없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은 확장된다.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만든 소크라테스는 ‘산파법’을 주로 활용해 대화를 이끌어나갔다고 한다. 산파는 아기를 낳을 때 산모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직접 아기를 낳지는 않지만 아기를 잘 낳도록 해 준다. 소크라테스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진리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질문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만들어 주는 산파의 역할을 한 셈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명언의 한편에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인정하고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을 거쳐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 철학의 정수가 된다.

그런데 아는 것이 하나 둘 늘수록 질문은 어려워진다.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하면서 질문보다는 답을 찾는데 몰두한다. ‘많이 물어보고 와라’가 아니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라’는 인사가 더욱 익숙하다. 괜히 질문했다가 그것도 모르냐, 질문 수준이 낮다며 공격받기도 한다. 평가 중심의 교육 아래 ‘왜 그럴까’하는 의문은 ‘이해가 안되면 외우라’는 말로 변질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질문을 위한 입은 좀체 트이지 않는다. 어지간한 자리 아니고서는 질문 있냐는 물음에 손을 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 강의에서도 질문은 손에 꼽는다. 포럼이나 토론회 질의응답시간에는 으레 민망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간다. 질문은 어느덧 시나브로 불편한 요소가 됐다. 그렇다보니 질문을 받는 것도 불편해졌다. 질문 때문에 자신의 무지와 편견의 밑천이 드러날까도 두렵다.

‘원래 그런거야’. ‘이게 현실이야’ 등의 말로 자신을 방어하며 기존에 만들어진 사회적 틀과 합의를 받아들인다. 불만은 있지만 순응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죄수와 같은 삶이다.

플라톤의 비유 속 동굴에 갇힌 죄수는 벽을 보고 묶여있다.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죄수의 등과 횃불 사이에서 비쳐지는 그림자 뿐이다. 입맛에 맞는 그림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자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죄수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 뿐이다. 그림자가 진실인지, 조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의문을 품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그림자만 보며 살아가게 된다. 비참한 순응이다. 진리를 아는 것이 두렵거나, 본인이 묶여있는 죄수임을 깨닫는 것이 두렵거나.

MZ세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1980년대 초~2000년대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정의된다. IT나 첨단기술에 익숙하고 이익과 손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특성이 있다고들 한다. 최근 청년이 화두가 되며 MZ세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개인적으로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한 세대라고 하고 싶다.

타인에 의해 주입된 욕망이 아닌 스스로 깨달은 가치를 추구한다.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등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에도 순응하지 않는다.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다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 여론 전반에 힘있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질문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등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으로 무장해 사고를 확장하고 동굴에 묶여있기보다는 뛰쳐 나가 현실을 마주하는, 티 안나게 중간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를 탐구하고 질문하는 세대다. MZ세대가 사회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진리탐구의 정신으로 좋은 질문을 통해 좋은 답을 이끌어내는 세대가 되길 기대한다.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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