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한국전기연구원을 가다
"국내 전기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한국전기연구원을 가다
  • 이훈 기자
  • 승인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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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설립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로 출범
HVDC 시험 인프라 준공으로 위상 한 단계 더 도약
HVDC 시험 인프라 센터 전경 전기연구원 제공

혁신 기술의 보유 여부가 기업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다. 특히 최근 분산에너지특별법 등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에너지시장에서는 혁신 기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혁신 기술과 함께 정해진 표준이나 기술 규정 등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증은 기업 및 산업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이하 연구원)은 전기공업 및 전기응용 분야의 연구개발과 시험을 통해 국내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12개밖에 없는 STL 정회원
국내 전기 산업 기술 향상에 도움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국전기연구원은 1976년 당시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연구원 관계자는 “연구개발보다 시험인증을 주된 임무로 탄생한 것”이라며 “연구원에서는 전력기기가 가혹한 조건 즉, 큰 전류(대전력)나 높은 전압(고전압)을 받는 이상 조건에서도문제없이 작동하는지 엄격하게 시험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적서나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첨단 시험설비와 국제표준에 적합한 시험인증 시스템과 우수한 인력을 기반으로 세계 전력기기 산업계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시험인증 분야 협의체인 ‘세계단락시험협의체(STL)’의 정회원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국내 제조사들을 위한 다양한 시험인증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전력기기 국제 규격의 개정 동향을 발 빠르게 전달함과 동시에 관련 종사자들의 기술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전 세계 전력기기 시장에서는 STL 정회원 자격을 보유한 시험인증 기관이 발급한 성적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고 통용된다”며 “STL 정회원은 전 세계에서 12개 국가 및 기관만 자격을 가질 정도로 그 기준이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이에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력기기 업체는 물론 일본과 중국을 넘어 멀리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에서도 연구원을 찾아온다. 근래에는 사우디 전력기기 업체에서 연구원의 시험설비구축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창원까지 방문할 정도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에 연구원이라는 시험인증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력기기 시장에서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며 “국내 전력기기 제조업체들이 엄청나게 비싼 운송비와 시험료를 내면서 해외 시험기관에 갈 필요가 없어 비용적인 측면에서 큰 혜택을 받아 업체들의수출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의 경우 국내 연구원만큼의 시험설비 인프라를 가진 곳이 없어 비싼 돈들여 한국까지 무거운 제품을 가져와 시험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원의 높은 국제 인지도를 활용해 국내 제조사들의 각종 의견 및 애로사항을 국제 시장에 적극 개진하며 해외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차세대 송전기술 HVDC 관심 높아져
핵심 설계기술 해외 유출 등 문제 발생

2016년 연구원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는 증설이 있었다. 1,600억원 규모의 ‘4,000MVA 대전력시험설비’를 증설, 기존 4,000MVA 용량에 더해전체 용량 8,000㎹A을 보유하며, 세계 2위 수준의 국제공인시험 설비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환태평양 지역에서는 1위 규모다. 2016년 이후 연구원의 위상이 최근 한 단계 더 높아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차세대 전력전송 기술인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분야 전력기기의 성능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세계적 규모의 시험 인프라를 준공한 것이다.

HVDC는 초고압 직류송전, 즉 발전소에서 생산된 대용량의 전력을 고압 직류로 변환해 원거리까지 전송하는 기술이다. 전력 공급 과정에서손실이 매우 작아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고, 케이블을 이용해 장거리 송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심지 설치에 대한 제약이 크지 않다. 또 전자파의 발생이 매우 작아 사회적 수용성이 높으며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력의 송전에 특화된 기술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는 신규 도입되는 전력망에 HVDC 계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에 대용량으로 보내기 위해 HVDC 관련 사업이 진행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HVDC는 국내에서 아직 적용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전력기기·설비의 신뢰성과 안전성에 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 HVDC 전력기기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전문 시험인프라가 없어 국내 업체들이 해외 시험소를 찾아시험·인증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 납기 지연, 핵심 설계기술 해외 유출 등 문제가 발생했다”고 시험인프라 준공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정부·지자체·연구소 공동 개발
200억원 투자… 42개월만에 준공

특히 HVDC 시험 인프라센터는 정부, 지자체, 연구소가 힘을 모아 준공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이번 사업은 산업부와 경상남도, 창원, 연구원이 힘을 모아 약 200억원을 투자, 42개월만에 준공의 결실을 보았다.

사무동에서 HVDC 시험 인프라센터에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됐다.

연구원 관계자는 “부지면적 1만 8,622㎡, 건축면적 1,540㎡ 규모로 조성됐다”며 “HVDC 시험동, 케이블 PQ 시험용 전력구, 옥외시험장으로구성됐다”고 설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높은 층고와 대규모 시험 장비들에게 압도당했다. 사방의 벽면은 은색 철재로 가득차 있었다.

관계자는 “시험동에서 발생하는 고전압 및 전자파 외부 유출을 막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시험 변수도 차폐하기 위해 아연도금 강판으로 시공했다”고 전했다.

시험 장비들은 ‘충격 내전압 시험장비’, ‘직류 전류 발생시스템’, ‘직류 내전압 시험설비’ 등이 있다. 19m로 긴 높이를 자랑하는 충격 내전압 시험장비는 순간적으로 최대 3,600㎸의 인공 번개를 만들어 케이블 등 전력기기의 충격 내구성을 시험한다. 직류 내전압 시험설비는 정격전압 대비 2배 이상의 직류전압(1,500㎸)을 생성하며, 직류 전류 발생시스템은 세계 최대 정격 전류(6,000A)를 연속 발생시킨다. 제품에 맞게시험할 수 있도록 시험장비들의 이동도 가능하다.

HVDC 시험 인프라센터 내부 전기연구원 제공

 

시험 장비들을 살펴보던 중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연구원 관계자는 “지하에는 PQ(Pre-Qualification) 시험동이 자리잡고 있다”며 “30m 길이의 전력구와 252㎡ 넓이의 HVDC 케이블 포설 및 부하전류시험장으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블 제품을 1년간 장기 성능을 시험한다”며 “수요처의 환경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토질을 채워넣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수출 역량 강화 기여
지역경제 소비 활성화 효과 기대

이번 HVDC 시험인프라 준공은 KERI 시험 인증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이며, 국내 전력기기 분야에 미치는 경제적·산업적 파급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HVDC 관련 전력기기 업체들의 제품 개발을 신속하게 지원, 기술력을 높이고 수출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시험을 받기 위해 매년 국내·외 전문가 수천 명이 경남·창원을 방문하고, 이에 따른 지역경제 소비 활성화 효과도 매우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연구원은 초고압직류송전과 함께 광주 스마트그리드본부를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의 미래 먹거리가 될 ‘MVDC(중압직류배전)’에 필요한 핵심기술(핵심부품 및 기기 개발, 설계·보호·운영 SW 시스템 개발,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구축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훈 기자 hoon@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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