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북유럽 신화로 퐁당
무더운 여름, 북유럽 신화로 퐁당
  • 황인선
  • 승인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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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구루미 화상사회연구소

폭염으로 날은 뜨겁고 현실은 머리가 아픈 휴가철, 신화적 상상의 세계로 휙~ 유체 이탈해서 들어가 보는 것도 창의적 피서법일 것이다. 이럴 때 흥미+교훈이 만점인 <북유럽 신화>를 추천한다. 신기하며 장엄한 이 신화를 알면 요즘 콘텐츠 세상의 30% 이상을 이해하게 된다.

저자 안인희는 독일어권 문화의 대표적인 중개자로 이시리즈는 2007년에 출간해 현재 각 권 30쇄를 돌파 중이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미국의 1796년생 토마스 벌핀치에 의해서 세계적인 열풍이 일었다. 한국도 덕분에 고대 지중해권의 엄청난 상상을 알게 됐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보다는 늦게 성립됐고 알려지기도 좀 늦은편이다. ‘게르만 신화’, ‘노르딕 신화’로도 불리며 고대 게르만족과 그들이 이주해간 북유럽 삼국에서 널리 전승된 신화이다. 이 신화는 이웃 영국으로 건너가서 켈트 신화와도 교배를 했다. 북유럽 신화와 켈트 신화 그리고 핀란드 신화가 융합되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호빗이야기> 밑그림을 제공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특히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절대반지와 요정계, 거인과 난쟁이 등은 북유럽 신화에서 참고한 것이다.

지금 세계 콘텐츠 시장은 북유럽 신화가 상종가다. 최고신 오딘과 묠니르를 휘두르는 천둥 신 토르, 트릭스타신(trickster. 늘 말썽을 일으키는 악신)인 로키, 신들의 궁전인 발할라, 거인 미미르가 지키는 지혜의 샘, 신계/인간계/거인계를 연결하는 세계수 위그드라실, 올림포스에 해당하는 아스가르트와 거인국 요툰하임 등의 세계 그리고 미의 신 프리야, 지혜와 빛의 신 발드르, 아름다운여전사 발키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狂戰士) 베르세르크, 세계멸망의 전쟁인 라그나뢰크 등은 마블 코믹스 영화를 포함해서 애니메이션과 게임 소재로도 인기다. 목요일(thursday. 토르), 금요일(friday. 프리야)은 북유럽 신화의 신에게서 이름이 왔다. 신화를 기록한 <에다>에는 유명한 ‘니벨룽겐족의 반지’ 이야기도 나온다. 바그너는 이를 바탕으로 <니벨룽의 반지>라는 유명한 오페라를 썼다. 여기서 ‘숲속의 잠자는 미녀’ 원형 이야기가 나오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난쟁이 왕 오베론’(신화에서는 알베리히) 모티브도 나온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는 1권 ‘신들의 보물과 반지의 저주’, 2권 ‘종말의 예언 그리고 라그나뢰크’, 3권 ‘욕망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3권 후반에는 에다 이후의 영웅 베오울프와 중세 사랑 이야기의 절정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소개된다. 이 책은 북유럽에서 음유 시인들에 의해 기록된 <운문에다(800-1200)>와 <스노리 에다(13세기)>를 중심으로 편역한 책이다. 에다 자체가 워낙 중구난방으로 기록되어 저자가 위 세 테마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는 에다 시대를 지나면 기독교 문화에 의해서 심하게 왜곡되어 신화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므로 에다가 중심이 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아즈텍/마야 신화 등과 다른 특징이 있다. 일단 배경이 되는 땅이 매우 황량하게 묘사되며 인간보다는 신 중심의 신화다. 그런데 신들은 마치 인간 같다. 신들도 죽으며 신과 신, 신과 인간의 성관계와 약탈도 많다. 신들은 전쟁을 좋아하며 전사들도 마찬가지인데 명예롭게 싸우다가 죽은 전사는 죽어서 신들의 궁전인 발할라로 가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사가 죽으면 북유럽인들은 배에 시신을 태우고 장작과 보물을 실은 후에 바다로 띄우고 불을 붙인다. 그래야 전사들이 발할라에서 다시 명예롭게 태어난다고 믿는다.

복수는 아주 지독한 수준으로 행해지며 아름다운 여성들도 대부분 여전사로 나온다. 여자(신)들은 가문과 친족의 복수를 위해서는 친자식을 죽여 남편에게 식사거리로 제공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딘이 계약의 신이기 때문에 한 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축복보다 저주 빈도가 훨씬 큰데 이 저주는 거의 계약처럼 지켜진다. 니벨룽의 반지 저주도 신들에게 반지를 뺏긴 난장이가 죽어가면서 무서운 저주를 건 결과다. 물자가 부족한 지역이라 그런지 신과 인간들 모두 보물을 매우 좋아한다. 그중에 난장이들이 황금으로 만든 반지(후에 절대 반지 모티브가됨)가 최고다. 가진 보물을 다 주면 복수도 피해갈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 바이킹이 몰락한 것처럼 신화는 대체로 비극으로 끝난다. 라그나뢰크 때에는 주신인오딘, 토르, 로키, 발키리와 거인족들도 다 죽는다. 지혜와 빛의 신인 발드르와 식물의 신인 난나 정도만 재생한다. 미래불인 미륵 사상을 믿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관이다. 늘 춥고 바람이 많이 불며 생명이잘 자라지 않는 지리적 풍토의 특징을 반영한 것 같다. 그래서 기후 위기와 인종 분쟁 등으로 암울한 현대에 역설적으로 더 어울린다.

이만하면 매우 매혹적인 신화 아닌가? 더구나 안인희의 책에는 수많은 삽화와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것은 흉하고 어떤 것은 아름답다. 특히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에서 발키리이며 왕비인 브륀힐트가 자신의 목숨 같은 사랑인 지구르트(바그너 오페라에선 ‘지크프리트’)를 죽여 복수하지만, 화장할 때는 자신도 말을 탄 채 불길에 뛰어들어 같이 죽는 아서 래컴의 그림은 미녀,불꽃, 말, 황금빛이 어울려 인생도 사랑도 다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호메로스부터 헤로도토스까지 신화의 시대가 있었지만,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중세 기독교와 합리주의자들은 신화를 황당하며 부도덕하다고 배척했다, 거의 1000년 이상의 세월을 그랬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유교가 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계몽의 시대를 지난 지금 콘텐츠 시대에서까지 신화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토마스 벌친스 이후 세상은 신화를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는 절대적인 믿음이나 지식으로 보지 않는다. 신화는 인류가 만든 상상 이야기로 즐겨진다. 그들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면 산, 강, 공기, 동물, 나무 모든 것이 생명과 사연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ESG 시대를 맞아 그들과 교감할 수 있게도 만들어 준다.

뜨거운 여름이다. 복잡한 세상 잊고 3-4일만 이 북유럽 신화에 퐁당 뛰어들어 이미르, 오딘, 토르, 발키리, 프리야, 미미르, 난장이들과 놀다가 마지막은 세계 마지막 전쟁 라그나뢰크로 문을 닫고 나오기를 추천한다. 보상은 인류가 상상했던 또 다른 세상과의 접속!

황인선 구루미 화상사회연구소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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