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 오승록
  • 승인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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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제8·9대 서울특별시의원으로 선출되고, 이후 민선 7기·8기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에 선출돼 재임중이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육로로 평양을 방문할 당시 노 대통령 내외가 노란 군사분계선을 지나가는 것을 기획한 참모가 당시 의전 행정관이었던 오승록 노원구청장이었다.

동의보감은 1613년 발간 이후 현대의학이 발달한 오늘날까지도 활용되고 있는 아시아 최고의 의학서다. 백성에 대한 사랑과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사랑했던 허준의 민족애가 담긴 책이기도 하다. 이에 바탕을 둔 <소설 동의보감>은 극심한 당쟁과 권력을 향한 계략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꿈을 이루는 허준의 굴곡진 일대기를 그리고 있으며, 쓰러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물신숭배의 가치관, 일그러진 인간관계, 실종되어가는 인간애를 다시금 반추해보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뜻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은 것 같다. 허준도 그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주로 피신하는 선조를 호송하고, 그 와중에 왕자인 광해군의 병을 고치고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질병 치료법을 찾으라는 선조의 어명을 받아 의서편찬에 들어가자 주변의 질투가 시작됐다. 이후 임금이 급사하자 책임을 물어 의주로 귀양을 간 것도,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이 허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진행 중인 의서 저술에 전념토록 풀어줄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동의보감은 허준의 우직하고 곧은 집념에 평소 주변 사람의 마음을 얻었던인간적 면모의 산물이다.

책에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죽은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었다. 늘 차갑고 매정했던 스승 유의태가 병이 들어 죽음이 다가오자 제자의 환자에 대한 헌신과 의학 열정에 틴복해 해부를 위해 자결 후 몸을 내주는 부분은 감동이었다.

필자는 대학시절 내내 경남 거창에서 동아리 회원들과 농촌 봉사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첫해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를 불순히 여긴 동네 어른들이 마을 입구를 막고 들여보내 주질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부근에 텐트 생활을 하면서 묵묵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로 했다. 아이들 공부도 봐주고, 간혹 마을 논밭의 일손을 거들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괜찮았다.

다음해는 괜찮을까 기대했지만 어김없었다. 3학년때도 마찬가지였다. 야속한 마음에 간혹 사소한 언쟁도 있었지만 전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늘 한결 같았다. 3학년 활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늘 앞장 서 반대하시던 이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그동안 학생들을 오해했다며 미안하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푸짐한 저녁상에 술까지 한 잔 따라주셨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3년만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의 행복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지금도 정치의 길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를 생각한다. 주변의 온갖 질투와 역경을 딛고 방대한 저술을 완성한 허준의 불굴의 정신, 모든 일에 ‘진심’과 ‘정성’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주신 경남 거창 마을 어르신들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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