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과 무탄소에너지(CFE)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RE100과 무탄소에너지(CFE)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 김형욱
  • 승인 2023.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욱 이데일리 경제정책부 기자
김형욱 이데일리 경제정책부 기자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올리지 않도록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최종적으론 그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

195개국 대표가 지난 2015년 12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한 기후변화협정, 이른바 파리 협약이다. 과학계는 앞서 치열한 논의 끝에 ‘원유와 석탄, 가스를 활용한 현 탄소 중심의 산업 구조가 이어진다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 전 세계는 파리협정을 통해 탄소중립이 지키면 좋은 ‘착한 일’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규정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은 제품을 판매할 수 없는 시대가 가까워진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올해 10월부터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 2021년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을 통해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기로 했다. 2018 년 7억 2,760만톤(t)이던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4억 3,660만t까지 줄여야 한다.

전력산업계가 마주한 ‘미션 임파서블’

산업계, 특히 전력산업계는 전례 없는 ‘미션 임파서블’과 맞닥뜨렸다. 전환, 즉 발전 부문에서도 2018~2030년 사이 탄소 배출량을 2억 2,696 만t에서 1억 4,590만t까지 36% 줄여야 한다. 전기차 보급 확산 등으로 늘어날 전동화 수요까지 고려하면 기존 발전 방식을 탈(脫)탄소하면서 발전량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 탄소중립의 흐름이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가 음모론 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론 옳고 그름을 떠나 이행을 위한 방법론을 고민할 때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가 올 1월 확정한 제10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에 이 같은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2018년 41.9%이던 석탄 화력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19.7%까지 줄여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 전량도 26.8%에서 22.9%로 역시 축소해야 한다. 이를 원자력과 태양광·풍력·바이오 같은 신·재생에너지, 수소·암모니아 혼소 발전으로 대체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8년 6.2%에서 2022년 9%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에너지전환을 핵심 정책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도 그 비중을 2.8%포인트(p) 올리는 데 4년이 걸린 것이다. 2030년 목표치인 21.6%를 맞추려면 남은 8년 동안 12.6%p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제 막 실증 단계에 있는 수소·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2027년부턴 기존 화력발전소에 실제 적용해야 한다. 원자력발전 역시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을 마련해야 하는, 40년 동안 해결 못한 선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거세지는 재생에너지 주도 탄소중립 이행 요구

우리는 다른 나라와는 또 다른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한국은 반도체나 철강, 석유화학 같은 탄소 다배출 제조산업이 발달해 있는데, 국제사회는 하필 한국이 취약한 재생에너지 주도의 탄소중립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탄소중립 수단에 대한 국제규범, 비즈니스 기준은 아직 굳어지지 않았고 앞으로 어디로 튈 지 모르지만, 현 시점에선 재생에너지가 대세이고, 한국 산업계는 대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RE100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민간 기후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위원회는 지난 2014년 기업이 2050년 이전까지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약속을 하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10월 기준 426개사가 참여하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급성장했다. 구글, 애플, BMW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속속 참여했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 국내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글로벌 굴지 기업이 참여해 협력 기업에도 RE100 이행을 위한 조건을 맞춰줄 것을 요구하다보니 원치 않더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RE100을 이행하려 해도 그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비중이 9%에 불과하다. 이를 사려도 발전량 자체가 충분치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땅이 넓은 미국이나 중국, 호주에 비해 태양광·풍력을 하는 여건이 불리하다. 유럽과 달리 전력계통이 고립된 사실상의 섬 국가인 탓에 재생에너지 같은 경직성 전원 확대에 따른 계통 유연화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취재 중 만난 한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답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제안한 새 기준, 무탄소에너지

그래서 나온 개념이 무탄소에너지(CFE, Carbon Free Energy)다.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과 수소·암모니아 같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원을 탄소중립을 위해 활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엔 에너지원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같은 곳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해 활용하거나 저장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on and Storage) 개념도 포함한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1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달 무탄소 연합(CFA, Carbon Free Alliance)을 공식 출범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하이닉스, 한국전력공사, 대한상공회의소 등 20개 기업·단체가 참여했고 곧 20여곳이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다. CFA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세계적 권위자인 이회성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의장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 국내외 확산에 나선다.

정부도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CFE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내년 상반기 중 CFE에 대한 구체적 개념과 인증 제도를 만들고 내후년 국제표준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출범 예정이던 CFA를 소개하며 많은 정부·기업의 관심을 당부하는 등 국제사회 동참 노력도 시작했다.

CFE가 아예 없던 개념은 아니다. 2021년 출범한 24/7 CFE가 있다. 일찌감치 RE100을 달성한 구글, 그리고 두 국제기구 UN에너지와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 에너지’(Sustainable Energy for All)는 RE100만으론 탄소중립에 충분히 기여할 수 없다는 결론 아래 주 7일, 하루 24시간 내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무탄소 에너지원 생산 전력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 한국수력 원자력 등 133개사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저장이 어려워 실시간 수요-공급을 맞춰야 하는 전기 에너지의 특성상 아무나 이행할 수 없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미국에도 유사 개념이 있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등 탄소중립을 위한 신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시행하며 그 지원 대상을 ‘청정 에너지’(clean energy)로 규정했는데, CFE의 개념과 유사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형태로 출발하게 될 CFE도 이 기준과 대단히 흡사한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CFE에 대한 의구심 씻고 시너지 고민해야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탄소 중립이란 거대 담론을 마주한 가운데 이를 수행하는 방법론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CFE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탈(脫) 탈원전 정책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전 정부의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부정하고 원전산업을 키우고자 CFE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의구심이 있다. 기업에 당장 급한 건 이미 국제적으로 확산한 RE100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인데, 이를 회피하고자 다른 개념을 꺼내든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정치인, 미디어도 정부가 RE100을 대체하기 위해 CFE 국제 확산에 나섰다는 식으로 이 같은 의심을 부추긴다.

다만, 정치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보면 RE100과 24/7 CFE, CFE 모두 결코 탄소중립이란 지상과제에서 동떨어진 게 아니다. 모든 수단이 명확한 장점과 한계를 가지는 상호 보완적 존재로 볼 필요가 있다.

RE100은 전 산업계에 걸쳐 주요 탄소중립 수단인 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탄소중립 의무를 직접 이행하는 대신 돈으로 해결하는 우회로가 많다. 실제 많은 기업이 RE100 이행 수단으로 녹색 프리미엄 요금을 내거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기업들이 비용을 덜 들이려고 노력하는 요인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우리 삶에서 필수 요소인 철강이나 석유화학, 시멘트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탈탄소화할 수단이 될 순 없다. 재생에너지는 생산량이 불규칙한 특성상 수소·암모니아 같은 획기적 저장 수단 개발 없이는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

24/7 CFE도 마찬가지다. 탄소중립에는 이상적 목표이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많은 기업, 특히 개발도상국 기업의 참여 유인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24/7 CFE와 CFE 모두 주요 수단이 될 원전이 현 시점에선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대형 사고 우려와 방폐물 처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인류가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고 현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탄소중립 사회에 진입하려면, 어쨌든 인류의 모든 지혜를 모아 가능한 모든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RE100과 24/7 CFE, 앞으로 나올 CFE 모두 탄소 중립 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이뤄지기 전까진 완벽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탄소중립 수단으로서 시너지를 내야 한다.

탄소중립은 우리 인류의 생존이 걸린, 거스를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진보-보수를 떠난 문제다. 정부와 정치권도 이제 대중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RE100과 CFE를 대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을 멈춰야 한다.

산업계, 특히 전력산업계는 지금도 탄소중립이란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지는 못할지언정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여야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RE100을 위해서도, CFE를 위해서도, 국내 재생에너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김형욱 이데일리 경제정책부 기자 keaj@kea.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