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괴물’로 가득한 세상, 그래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
[영화, 좋아하세요?] ‘괴물’로 가득한 세상, 그래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
  • 이준범
  • 승인 2024.0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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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괴물을 찾기 시작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이상해 보인다. 홀로 미나토(구로카와 소야)를 키우는 사오리(안도 사쿠라)도 비슷하게 느낀다. 집에서 혼자 자른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의 머리카락, 미나토의 보온병에 담긴 흙, ‘돼지 뇌를 이식한 사람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는 미나토의 질문, 달리는 차에서 갑자기 뛰어내리는 미나토의 모습 등 모두 평범한 일이 아니다. 혹시 미나토가 괴물인 것 아닐까.

호리 선생(나가야마 에이타)에게 폭행당했다는 미나토의 고백 이후 찾아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장과 교사들은 마치 누군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말과 행동에 영혼이 없다. 사과하는 도중 사탕을 꺼내먹는 호리 선생도 정상은 아닌 듯 보인다. 사오리는 이들이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세상은 생각보다 괴물로 가득한 것 아닐까. 이토록 괴이한 학교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 이질적인 풍경으로 비친다.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진짜로 찾을지도 몰라 괴물

미스터리가 점점 커지는 사오리의 첫 번째 이야기 이후, 호리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걸스바가 있는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 첫 장면부터 태풍이 몰아치는 날 미나토가 실종된 시점까지. 같은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 된다. 목표는 ‘괴물 찾기’에서 ‘진실 찾기’로 바뀐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폭력 선생으로 몰린 호리 선생이 결백하다는 진실이 드러나면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직접 찾아내야 한다.

확신의 함정에 빠진 사오리처럼, 호리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주변에 떠도는 근거 없는 말들은 어느새 사실이 돼 그를 추락시킨다. 추락하는 호리는 무력하다. 가까웠던 사람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다. 결국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끼던 금붕어를 버리려다가 다시 발길을 돌린 그 순간, 호리는 진실을 알아챈 듯 눈동자가 커진다. 그리고 곧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지막은 괴물로 의심받았던 미나토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이 모든 건 미나토와 같은 반 친구 요리(히라키 요우타)의 특별한 비밀에서 시작됐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 거짓은 빠르게 사실이 됐다. 단순하고 쉬운 진실에 맥이 빠지는 것도 잠시. 목표는 다시 ‘주제 찾기’로 바뀐다. 몇 가지 새로운 궁금한 점이 생긴다. 그래서 영화가 이야기 하려는 건 무엇인가, 왜 굳이 같은 이야기를 세 명의 시점으로 보여줘야 했는가, 이 이야기는 결국 어디에 닿는가.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각자 다른 결함이 존재한다. 사오리는 미나토에게 평범한 삶을 강요하는 인물이다. 아들이 아주 평범한 삶을 살도록 하는 걸 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처럼 여기는 엄마다. 바닥에 차선을 따라 등교하는 미나토에게 농담처럼 던지는 ‘선을 넘으면 지옥간다’는 미신은 사오리의 무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 아닐까. 사오리는 미나토가 괴물이 아니길 바란다. 아니, 괴물이 아니어야 한다. 정작 자신이 미나토를 숨 막히게 하는 괴물일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다.

호리는 아이들에게 성별다운 모습을 강요한다. 매스게임을 하다가 넘어져도 “남자답게 일어나야지”라고 말하고, 미술 시간에 다퉈도 서로 손을 잡고 “남자답게 화해하라”고 요구한다. 선생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 믿는 호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호리는 집에서 키우는 금붕어 중 뒤집힌 금붕어를 특히 아낀다. 병을 가져서 뒤집혀 있을 뿐, 다른 금붕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끼는 금붕어에 대해선 잘 알지만, 정작 반 아이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미나토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여긴다. 엄마인 사오리가 원하는 평범한 삶, 남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남들에게 찾아오는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 믿는다. 평범한 삶을 살려면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뇌가 돼지의 뇌일지 모른다는 망상도 한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는 미나토가 도망칠 공간은 요리와 함께 꾸민 버려진 열차뿐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끊긴 철로를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괴물일지 모르는 자신이 그곳에선 존재해도 되는 것처럼 느낀다. 정작 자신이 괴물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라는 사실은 모른다.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그렇게 생명의 불씨가 이어진다

‘괴물’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과거에 사망한 아버지 이야기, 사고로 사망한 교장의 손녀딸, 직접 묻어주는 죽은 고양이처럼 직접적인 죽음부터 건물 화재 사건, 자살을 연상시키는 옥상 장면 등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몇몇 인물들은 죽음을 향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에서 쫓겨나 사회적인 죽임을 당한 호리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후 욕조에 누워있는 요리, 차에서 뛰어내리는 미나토의 모습을 보면 이들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괴물’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내는 생명력을 이야기하는 영화에 가깝다. 아들이 괴물일까 전전긍긍하던 사오리는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학교에 여러 차례 찾아가 책임을 묻는다. 죽음에 가까이 갔던 호리는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 태풍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시종일관 별말이 없던 교장은 학교 음악실에서 온 힘을 다해 호른을 불며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낸다. 위기의 순간에 가만히 멈춰 있는 인물은 없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맞춰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괴물’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건 아이들이다. 미나토는 실의에 빠진 요리를 이끌고 열차 밖으로 있는 힘껏 뛰어간다. 뛰어가면서 미나토는 다시 태어나는 대신 계속 살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요리에게 전한다. 이 장면은 함께 신발 한 짝씩 나눠 신고 한 발 뛰기를 하거나, 장난감을 만들어 함께 수풀을 뛰어다니던 이전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이전 장면들이 힘든 현실에서 잠시 숨 쉴 틈을 마련한 임시 대피소에 가까웠다면, 이들이 마지막 달리는 장면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언뜻 현실이 아닌 환상의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영화는 있는 힘껏 따라붙어 이들의 모습을 끈질기게 카메라에 담는다. 마치 그것만이 괴물로 가득한 이 세계의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응원하겠다는 것처럼.

이준범 쿠키뉴스 기자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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