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생의 길
에너지, 공생의 길
  • 김나영
  • 승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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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공공재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말로 기피시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다 에너지가 기피시설이 되었을까. 필수시설들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야말로 개발도상국가 시절에는 성장하기에 바빴다. 따라서 건강보다는 성장이 먼저였고 사람보다는 산업이 먼저였다. 그렇다 보니 폐해가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아파서 죽어가는데도 산업의 발달이라는 미명아래 묵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속된 말로 이제 먹고 살만해졌다.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국가의 목표 아래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속속 나오고 있다. 매우 반길만한 이야기다. 국민의 주권, 목소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국가가 정직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시해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그동안 쌓인 게 많은 탓이겠지만 우리도 이제 현실을 이성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도는 쌓이지 않았을까. 온라인 속 수많은 정보 중 어떤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할 만큼 우리는 많은 지식을 쌓아왔다. 충분히 전과 후를 유추해 사실여부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보다 손쉽게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음에도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는 ‘취사 선택적 정보습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보를 골고루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습득함으로써 편향된 정보를 단단히 고착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하는 건 소용 없는 일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미 우리는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의무는 있지만 공급을 덜 받아도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에서는 일주일동안 통신이 끊기고 전기가 끊겨도 그 불편을 고스란히 국민이 감수한다.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네덜란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네덜란드 에너지 정책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논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외부와 연락이 두절됐다. 현지 코디네이터의 말로는 전기공급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필자가 이 사태를 겪으면 느낀 것은 공공재를 대하는 시민 의식이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2011년도에 한 시간 가량 전기공급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고작 한시간이었지만 산업의 피해에 대한 추산이 쏟아졌다. 우리나라가 제조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마치 나라가 없어진 것 같은 절망감 가득한 뉴스들이 나오면서 전력당국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가득했다.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기계도 실수는 할 수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실수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대비책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서 중앙집중형 전력공급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분산형전원에 대한 이슈가 급부상했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전국에 분포돼 있는 비상발전기와 특히 지역 내에서 열과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집단에너지시설 건설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게 됐다.

우리나라 전력공급 시스템이 대형발전기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형이기 때문에 발전기 하나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 산업과 가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분산형에너지는 에너지수요지에 공급시설을 설치, 운영함으로써 열과 전기가 가정 또는 사업장에 전달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공급망 역시 최소화함으로써 유지보수가 보다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지역 내 에너지공급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곳곳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소각장 설치 역시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배출해 땅속에 매립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매립으로 인한 지질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고 그로 인한 메탄가스 등 환경오염 물질 배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아울러 수백년간 매립을 해도 분해가 되지 않는 화학물질들은 우리에게 매우 골치아픈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부분의 나라들은 매립보다는 소각을 선택하고 있다. 소각을 통한 에너지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각을 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유해물질들인데 이 또한 현재 해소가 가능할만큼 기술력이 발달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일정 온도 이상 소각열을 올리게 될 경우 공기 중에 노출될 수 있는 오염물질까지 태울 수 있다고 한다. 기술력이 그만큼 성장해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에너지공급사는 이러한 고가의 기술력을 국내로 들여오고자 하였지만 당시 국민 정서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이를 바라보는 정부 역시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무산된 바 있다.

에너지라는 공공재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는 아직도 갈길이 먼 것 같다. 꼭 필요하고 공급은 반드시 단 1초도 끊어져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를 위해서 내 삶의 어떠한 손해도 감수할 수 없는 게 지금 우리의 실정이다.
시설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는 것인가. 내 눈앞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새로운 시설물이 생긴다는 것은 어떠한 측면에서든 없던 물질이 생성되게 되어 있다. 에너지시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 지금도 많은 에너지공급사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덴마크의 코펜힐 열병합발전소는 주민친화적 발전소로 매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에 이러한 형태의 발전소가 생긴다면 주민들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에너지와의 공생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조금씩 정서가 바뀌고 있는 만큼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는 조금 더 성숙해진 주민의식을 기대해 본다.

김나영 서울에너지공사 건설기획부 과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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