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엔드게임은 없다
기후위기에 엔드게임은 없다
  • 이윤희
  • 승인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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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

❶ IPCC보다 더 엄중한 경고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 정책보고서

지난해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를 비롯해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미래는 그보다 더 암울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IPCC는 기후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 위험과 영향을 과학적, 기술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기상학자, 해양학자, 빙하 전문가 등 약 3,00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 산하 정부 간 협의체다. 1997년 교토의정 서를 비롯하여 2015년 파리기후협약 등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정부 간 협상은 IPCC에서 제공하는 평가보 고서에 근거한다. 단적인 예로 2014년 ‘제5차 평가보고서’에서는 현 추세대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2100년에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3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간의’ 탄소순환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이를 포함할 경우 2100년경에는 약 5도 상승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IPCC의 최근 보고서인 1.5도 평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2040년 1.5도 상승도 지극히 보수적인 수치로 2030년 이미 1.5도 상승을 넘어 2045년에는 2도 상승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와 함께 바라본 2050년의 미래상에 대해 보고서는 작정한 듯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극한 기상현상, 생물다양성 파괴로 현재 수십 억 명이 살고 있는 도시와 지역에선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지구 육지의 35%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는데 서아프리카, 남미 열대지방, 중동,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은 인위적으로라도 시원한 인프라를 제공할 수 없다. 결국 이 곳에 사는 10억 명의 사람들은 집과 터전을 잃고 기후난민이 된다. 게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가 물에 잠기는 도시나 국가로 언급된 곳들은 남태평양의 작은 도서 국가만이 아니다.

인도 뭄바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이 중국 텐진과 광저우, 홍콩, 태국 방콕, 베트남 호찌민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 선진국도 예외만은 아닌 것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네덜란드, 미국, 남
아시아 등 전세계 해안 도시들도 범람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보고서의 몇몇 내용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우선 실‘ 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다르다.

2017-2018년 호주 상원의회는 기후변화가 호주의 국가 안보에 미칠 위협을 연구한 결과, 기후변화는 ‘현재 실존하는 국가 안보 위기’라고 진단했다. 보통 안보 위기라는 말은 전쟁, 테러 혹은 그에 준하는 대형 재난재해와 함께 쓰인다.

호주는 기후변화를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파괴하는 안보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묵시록적 분위기는 시종일관 이어진다. 보고서는 ‘인류 문명과 근대 사회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10년이며 그 시간 동안 전 세계는 2차 세계대전 때와 같은 전시 태세를 갖추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끝맺는다.

보고서의 추천사를 쓴 호주국립대학교 코랄벨 스쿨 전략방어연구센터의 명예교수인 크리스 배리(Chirs Barrie)는 호주 기후변화에 관한 글로벌 군사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한데 그는 “핵전쟁 이후 인류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기후변화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몇몇 기후학자들은 결국 인류는 기후변화를 막지 못할 것이므로 현재의 연구에 힘을 쏟기보다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한다는 언급까지있다. 기술적, 과학적 사실만을 담은 기존의 기후변화 분석서 등에서는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이런 개인적인 고민까지 담은 이유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최후의 경보를 울려야하기 때문이다.

IPCC와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의 전망 중 어떤 연구가 더 타당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명백한 사실은 산업화 이후 인류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후 시스템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기후위기가 한두 차례의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것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도 아니라는 게 아닐까.

❷ 2018년의 그레타 툰베리
    1992년의 세 번 스즈키

올 초부터 국내 언론에서도 화제가 된 스웨덴 10대 청소년이 있다. 바로 학생들의 기후파업을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 쓰인 팻말을 들고 파업에 들어갔다. 같은해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당신들은 당신의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아이들의 눈앞에서 미래를 훔쳐가고 있다”는 따끔한 일침에 기성세대들은 더 이상 “학생이니 일단 학교로 돌아가 본분에 충실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툰베리의 기후파업은 큰 반향을 일으켜 어른들의 반성과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과연 그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 정말 변화가 일어날지 일각에선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미래 세대 스스로 어른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 것은 툰베리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담에서 캐나다에서 온 세번 스즈키 역시 각국 대표들을 향해 “우리는 여러분의 아이들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할지 결정하고 있습니다 … (중략) … 우리가 당신들의 우선순위에 있기나 한 건가요? … (중략) … 제발 여러분의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후 26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킬링곡선은 달라진 것이 없다.

❸ 기후변화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뤄질까

‘당신은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나 언론이 실시한 일반 시민들의 환경 · 기후변화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종종 보게 된다. 최근에도 세계일보와 공공의 창이 공동으로 수행한 ‘기후변화 인식조사’ 결과 중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각 주체별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57.1%가 ‘나 자신’은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한 반면 ‘우리 국민 개개인’ 즉 타인은 28.7%만 그렇다고 답했다. 71.3%의 응답자가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기후행동에 대해서는 환경단체(51.8%)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응답자의 85.2%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조금 심각34.4%, 매우 심각 50.8%)고 했지만 이들 중 정작 ‘기후변화’를 1년 내 해결해야 할 사회과제 우선순위로 꼽은 이들은8.1%에 그쳤다. 1위는 역시 경제성장(27.8%)이며 10년 내 해결해야 할 1순위 과제로 꼽혔다. 기후변화는 3위다. 30년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 목록에서야 기후변화는 2위에 올라있다.

이번 조사결과에 일반 시민들이 타인에게 기후변화의 책임과 역할을 전가하고 있다는 한탄보다는 다른 의문이 앞선다. 기후변화가 30년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것, 30년 후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 그저 믿고 싶은 것일까. 자원고갈의 위기를 이야기할 때 ‘30년 전에도 석유고갈 기한은 50년이었고 지금도 50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이제까지 그랬듯 기후변화 역시 눈부신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결국은 해결할 것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도 늦었으니 당장 행동해달라’는 툰베리와 다른 수많은 학생들의 기후파업은 결국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❹ 기후위기에 엔드게임은 없다

최근 기상학 분야 국제학술지 ‘기후변화’에 실린 연구 결과 역시 기후변화 직접행동에 대한 착잡함을 갖게 한다. 미국 듀크대 환경대학과 콜로라도 덴버대 공공정책학과 공동연구팀은 2013년 9월 엄청난 홍수 피해를 겪은 콜로라도주 6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오래 지속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직접행동에 나선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직접 피해뿐아니라 가까운 지역사회 내 혹은 이웃의 피해를 목격한 경우에도 기후변화 심각성에 대한 인식 정도는 높아졌다.

기후변화가 정치적 쟁점이 되어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다수 존재하는 미국이지만 이러한 결과는 정치적 성향과도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련의 연구 결과에 대해 연구진들은 “믿지 않았는데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는 말로 설명했다.

기후변화 심각성에 대한 인지 수준이 높아졌을뿐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직간접적인 피해를 겪은 후’라는 전제가 달가울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결국 한두 번은 겪어봐야 한다는 걸까. 그러기엔 기후변화의 칼날은 늘 가장 먼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얼마 전 상당 기간 극장가를 점령했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는 지구 뿐 아니라 우주의 종말 직전 1400만분의 1로 전 우주 생명체를 구한다.

우리도 결국은 최후의 한판 승부로 기후위기, 기후비상사태, 기후붕괴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다. 영화에서도 최후의 승리를 맞기 전엔 지구 생명체의 50%가 소멸되는 대상실의 시대를 겪었고 승리 후에도 상흔은 깊게 남았다.

새끼가 죽는 줄도 모르고 플라스틱 찌꺼기를 먹이는 알바트로스, 선진국에서 배출한 쓰레기섬에서 살아가는 제3세계 아이들, 청장년층 사망까지 불러온 ‘살인폭염’ 등 기후변화의 상흔은 이미 우리 주변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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