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삶, 진정한 멘토를 찾다
아낌없이 주는 삶, 진정한 멘토를 찾다
  • 강제윤
  • 승인 2023.0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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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김장하)

지난 4월 28일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교양 작품상에 MBC 경남의 다큐 <어른 김장하>가 선정됐다. 사상 최초로 지역 지상파 방송사 작품이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것이다. 열악한 여건의 지역 방송국 작품이 지상파 3사의 연예 대상보다 권위 있는 이 상을 받은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어른 김장하>에 상이 주어진 것은 단지 작품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김장하 선생의 기부 인생에 대한 헌정의 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김장하 선생은 1984년 진주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학교법인 남성학숙)한 뒤 1991년 국가에 헌납했다. 당시 학교법인의 자산 가치는 100억원. 명신학원의 자산은 부동산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을 땅값으로 환산하면 현재 가치는 물경 2,000억원 이상이다. 당시 그런 막대한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헌납하고도 선생은 수많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가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생의 기부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선생이 전 재산을 들여서 설립한 명신고등학교 재단을 8년만에 국가에 헌납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것은 학교가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다는 신념과 자신의 재산이 세상의 병든 이들에게약을 팔아서 생긴 것이니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제 개인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김장하 이사장 퇴임사 중)

선생은 명신고 헌납 이후에도 한약방을 하며 재산이 모이는 족족 사회에 환원했다. 학교를 떠난 뒤에도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학생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하며 후학들을 길러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도 김장하 장학생 중 한 명이었다. 문 헌법재판관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김장하 선생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의 일화도 감동적이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선생은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진주오광대보존회 후원회장,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남명학연구 후원회장 등을 맡아 기부와 후원을 하며 시민운동과 지역사회, 진주문화, 경상국립대학교 등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내일을 여는 집’ 설립과 진주신문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단체에도 아낌없이 후원했다. 알려지지 않은후원도 부지기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2000년에 사재를 털어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을 2021년 해산하며 남은 35억원의 재단 기금을 경상대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온전한 빈손이 된 것이다.

진주 밖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김장하 선생의 삶은 <어른 김장하>를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다큐의 인터뷰어인 김주완 기자가 쓴 김장하 선생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를 통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줬으면 그만이지>는 다큐가 담지 못한 세밀한 내용까지 다 담고 있어 김장하 정신을 배워나가기 더없이 좋은 책이다.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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