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 시대, 국가적 계통투자비 절감을 위한 지역단위 마이크로그리드 구상
분산에너지 시대, 국가적 계통투자비 절감을 위한 지역단위 마이크로그리드 구상
  • 김승완
  • 승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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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발전설비든 크게 만들면 평균 발전단가가 하락하는 규모의 경제가 성립한다. 이에 전통적인 전력시스템은 수요지에서 먼 곳이라도 대규모 부지 확보에 용이한 곳에 대형 발전소를건설하고, 송배전선로의 적기 건설을 통해 이들이 생산한 전력을 수송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구축돼 왔다. 

최근에는 이런 전통적인 접근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 발전설비의 규모의 경제가 깨졌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적 시스템의 전제에 해당하는 송배전선로의 적기 건설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송배전설비에 대한 지역수용성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절차의 증가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송배전선로를 건설할 확률을 낮추고 수반되는 비용을증가시키고 있다. 만약, 특정구간 계통 건설의 사회적 합의가 지연돼 건설기간이 무한정 늘어나버린다면 수학적으로 이 구간의 송전투자비는 무한대로 볼 수 있다.

작은 규모로 인해 발전단가가 비싸더라도 지역 내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분산에너지 개념을 통해 최대한 계통투자를 회피하려는 전략이 부각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도시와 공장이 소비하는 모든 전력을 분산에너지로만 충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역 내 수요-공급의 불일치를 줄이고, 조금이나마 계통투자에 들어가는 국가적 비용과 노력을 줄여보자는 시도, 이것이 분산에너지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본고에서는 이런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의 계통구성 방향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상상해보고자 한다.

진정한 의미의 분산에너지란? : 규모보단 위치가 중요하다

분산에너지의 정의

‘전기사업법’ 제2조의 21에서는 분산형전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전기사업법 제2조의21] “분산형전원이란 전력수요 지역 인근에 설치하여 송전선로의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하(40MW)의 발전설비로서 산업통상자원부령으로 정하는 것을 한다.”

또한 최근 제정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서도 제2조의 1에서 다음과 같이 분산에너지를 정의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2조의1] “분산에너지1)란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ㆍ지역 또는 인근지역에서 공급하거나 생산하는 에너지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에너지말한다.” 1) 분산에너지는 전기사업법에서 정의하는 분산형전원을 포함하여 에너지저장장치, 전기자동차, 섹터커플링 설비 등 다양한 자원들을 좀 더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두 정의 조항에서 알 수 있듯 분산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와 ‘송전선로의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요지 인근의 위치’의 두 조건을 모두 갖춰야만 한다. 만약 어떤 소규모 전원이수요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송전선로의 건설을 추가적으로 유도한다면 이는 분산에너지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 : 초기 보급엔 성공적, 부작용 방지는 아쉬운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MW 이하 소규모 신재생발전 전력망 접속보장 정책’을 발표하며, 한국전력공사가 소규모 신재생발전사업자의 확정접속계약(Firm Connection)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공용전력망 보강비용에 대한 면제혜택을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소규모 분산에너지의 연계로 인한 접속설비 비용은 사업자가 지불하지만, 공용전력망의 보강비용은 전체소비자들이 분담하는 방식을 전제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이런 인센티브에 힘입어 당시 분산에너지 중 가장 균등화발전단가(LCOE,Levelized Cost of Energy)가 낮고 기술성숙도가 높은 태양광발전 중심으로 분산에너지의 계통접속이 확대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한편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정부출범 첫 해 주요 어젠다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3020이행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해당 계획의 실행을 위해 산업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 달성 목표를 설정하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보급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됐던 ‘1MW 이하 소규모 신·재생발전 전력망 접속보장 정책’에 더해, 태양광발전 형태의 분산에너지에 대한 REC 가중치 혜택 등이 부여됐고 이는 초기 재생에너지의 보급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1MW 이하 소규모 신재생발전 전력망 접속보장 정책’의 존재로 인해 공용 전력망 보강으로 인한 비용부담 체계에서 빗겨나 있었고 결과적으로 계통포화에 대한 고려나 추가 비용부담에 대한 우려없이, 일사량이 좋고 토지비용이 낮아 사업성이 좋은 지역 위주로 태양광발전 설비 투자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배전단에 접속하는 소규모 신·재생에너지(연료전지 포함)는 총 보급량의 약 40% 가까이 호남지역 광주, 전남, 전북)에 집중되어 있으며, 정작 에너지소비가 많은 수도권지역(서울, 인천, 경기)에는 보급량의 10% 이하만 존재하고 있다. 그간 보급한 신·재생에너지들이 설비규모가 작지만 수요지와 멀리 떨어진 입지에 몰려있기 때문에, 송전선로 증설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가 증설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급된 재생에너지의 상당수는 분산에너지라고 부르기에 어색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정은 이러한 기존 정책의 부작용을 바로잡고 진정한 의미의 분산에너지 투자를 통해 비용-효율적 계통투자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계통 투자비 경감에 기여하는 지역단위 수요-공급 균형

지역 내 수요-공급 조정을 통한 연계선로 융통조류 경감의 중요성

계통의 투자 결정은 신뢰도 규정의 준수와 안정도 유지, 선로손실, 비용 등을 고려한 복잡한 계통해석을 바탕으로 이뤄져 비전공자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다만, 대한민국을수도권, 영동권, 중부권, 호남권, 영남권 및 제주로 크게 구분하면 <그림2>와 같은 권역별 전력수요와 해당 권역의 발전설비 전망에 따라서 지역 내 수요-공급의 불일치 정도를 파악할 수 있고, 지역 간 융통이 필요한 조류의 연중 최댓값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계산된 지역 간 융통조류의 값이 결국 지역과 지역을 잇는 대규모 송전선로의 투자 수요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지역 내 수요-공급의 불일치 정도를 최소화해 지역 간 연계선로의 융통조류를 경감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히 대규모 송전선로의 투자수요가 사라지거나 이연(Deferral)되어 단기적인 계통 투자 없이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단위 수요-공급 균형의 효과성

필자는 지난 수년 간 최적으로 미래의 송전선로를 투자해나가는 송전망확충모형(Transmission Expansion Planning Model)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개발한 모델을 바탕으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여러 가지 정보들을 활용해서 미래를 전망해보면 지역단위로 수요-공급 균형을 조정해주는 정책의 효과성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수도권에는 수요가 몰려있고 호남지역에는 발전원이 몰려있는 지역적인 수요-공급 불일치를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를 대조군으로 하고, 임의로 지역단위 수요-공급 불일치를 경감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정책을 적용한 실험군을 비교했을 때의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다. 

상세한 모의 설정에 따라 값이 달라질 수 있지만, 총수요와 발전량은 동일하게 한 채 지역단위 수요-공급 균형을 위해 재생에너지의 입지나 대규모 수요의 입지를 조정하는 다양한 경우를 실험해보면, 대략적으로 9차 계획기간 동안 대조군 대비 수조원의 비용저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제10차 장기 송변전계획을 발표하며 언급한 향후 56조 5,000억원의 계통투자비 중 상당한 양의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계통투자비 절감을 위한 미래 계통구조 : 마이크로그리드가 모인 마이크로그리드

분산에너지 보급 가속화와 다양한 마이크로그리드 유형의 출현

지역 내의 수요-공급의 불일치를 조정하려면 어떤 수단들이 있을까? 건물 지붕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 이동형 배터리 역할을 하는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와 같은 수단들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지붕 태양광의 경제성에 대한 우려가 항시 존재했지만, 지난 5월 16일부터 적용되는 인상된 전기요금과 높은 여름철 계시별 요율 등을 고려하면 한전 요금과 지붕형 태양광 간의 역전은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전기자동차의 보급도 우리의 과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13조의 내용과 같이 향후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 등이 부여되고, 제23조와 같이 대규모 부하에 대한 전력계통영향평가가 시행된다면, 다양한 규모의 신규 건축물은 자연스레 에너지자립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13조의 1]
①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고 에너지공급의 안정을 증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이하 “의무설치자”라 한다)에게 해당 사업의 실시 또는 시설의 설치 전에 에너지사용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분산에너지로 사용하도록 분산에너지 설비 설치계획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분산에너지 설비 설치계획서를 제출하여야 하는 지역(이하 이 조에서 “설치의무지역”이라 한다)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
②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의무설치자가 설치하여야 하는 분산에너지 설비 설치량(이하 “의무설치량”이라 한다) 및 설치의무지역을 지역별ㆍ연도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23조]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지정ㆍ고시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 지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이하 “계통영향사업자”라 한다)는 전력계통영향 평가를 실시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즉, 빠르게 개선되는 분산에너지의 경제성과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의 조합은 도시 내에도 주택 마이크로그리드, 마을 마이크로그리드, 도심 마이크로그리드 등 다양한 단위의 마이크로그리 들의 출현을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를 상당부분 차지하는 산업단지나 산업용 부하들도 높은 전기요금의 회피와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의 준수를 위해 계통에 연계되어 있지만 일정부분 에너지자급자족이 가능한 대규모 마이크로그리드로의 진화를 택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이크로그리드가 모여서 만드는 지역단위 마이크로그리드

아래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하나의 변전소는 다양한 규모의 마이크로그리드들이 모인 더 큰 규모의 지역단위의 마이크로그리드 형태로 구성되기 시작할것이다. 경제적인 흐름과 법률의 제정이 이와 같은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소규모 마이크로그리드는 배전설비의 효율적 투자에 기여할 것이며, 변전소 규모의 지역단위 마이크로그리드는지역 간 연계 송전선로의 투자를 회피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절감한 투자비는 서남해 해상풍력이나 동해안 원전 등과 같이 대규모 저탄소 발전원들이 생산한 전력을 직접수도권으로 수송하는 HVDC 등에 집중해 투자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분산에너지 시대에는 자기 지역내 부하는 자기 지역의 분산에너지로 최대한 해결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이 차츰 실현되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대규모 송배전설비의 건설을 최소화하면서도 탄소중립 목표를 단계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가장 비용-효율적인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승완 충남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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